박현주 아트클럽

'돌의 틈에서 빛으로'…알록달록 돌아온 박은선, '치유의 공간'

알알이 매달려 기둥을 이룬 구슬이 색색의 빛을 낸다. 멀리서 보면 알사탕처럼 가볍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묵직하다. 대리석이다. 단단하지만 그 안의 온도는 달라졌다.“그때 가족이 곁에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일인지 깨달았어요.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건 결국 작품뿐이었죠.”코로나19로 세상이 멈췄던 시기, 조각가 박은선은 이탈리아 피에트라산타의 집에 머물며 가족과 함께 ‘멈춘 시간’을 보냈다.그는 절망의 시대 속에서 희망을 전하기 위해 돌에 빛을 심기 시작했다.‘무한 기둥–확산(Colonna Infin..

2025.11.11 16:54:15

‘조용한 진실의 표면’…변웅필 ‘아무렇지 않은 날들’ [박현주 아트클럽]

하루의 빛이 물감 위로 스며든다. 붓은 천천히 움직이고, 공기마저 멈춘다.서울 삼청동 호리아트스페이스에 걸린 변웅필의 신작들은 조용하지만 고도의 집중으로 빚어진 시간의 표면이다.그는 스스로를 “특별할 것 없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 말한다. 하지만 그의 그림은 결코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다.그 안에는 수천 번의 호흡, 끝없는 반복, 그리고 ‘거짓말하지 않는 회화’에 대한 단단한 신념이 스며 있다.◆선의 통제, 면의 고요 “선을 남기는 선이 면화(面化)되는 거예요. 얇은 면이 선처럼 보이..

2025.11.06 15:26:25

아트바젤·프리즈 사막 위의 미술전쟁…오일머니를 컬처머니로[박현주 아트클럽]

홍콩이 지고, 서울이 뜨자 이제 세계 미술의 무대는 사막으로 옮겨가고 있다.세계 양대 아트페어, 아트바젤(Art Basel)과 프리즈(Frieze)가 잇따라 중동 진출을 공식화하면서, ‘사막 위의 미술전쟁’이 예고됐다.아트바젤은 지난 5월 카타르스포츠투자청(QSI) 등과 파트너십을 맺고, 내년 2월 카타르 도하 문화지구 ‘므쉐이렙(M7)’에서 ‘아트바젤 도하(Art Basel Doha)’를 출범한다고 밝혔다.이어 5개월 뒤인 10월 13일, 프리즈는 아부다비 문화관광부(DCT Abu Dhabi)와 손..

2025.10.14 09:30:24

‘슬픈 전설’ 천경자, ‘찬란한 전설’ 첫 페이지 열었다 [박현주 아트클럽]

다시, '천경자'다.한국화 거장 천경자(1924~2015) 작고 10주기를 맞아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서울미술관 특별기획전 '내 슬픈 전설의 101페이지'가 '위작 논란'의 그림자를 넘어, 진짜 천경자의 얼굴을 마주하게 한다. 2006년 갤러리현대 '내 생애 아름다운 82페이지' 이후 20년 만에 열리는 최대 규모 회고전이다.23일 서울시 부암동 서울미술관에서 만난 안병광 유니온약품 회장은 “이번 전시는 정말 쉽지 않았다. 생전 ‘고약한 화가’라는 소리를 들었던 천경자가 지금도 여전히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

2025.09.23 16:18:17

1000억 대 프리즈 vs 8만 명 키아프…두 서울 아트페어의 명암[박현주 아트클럽]

아트페어는 미술품을 모아놓고 세계 각국 갤러리들이 벌이는 전쟁터다. 자본주의의 최전선, 그 판은 결국 상위 2%가 좌우한다. ‘얼마에 팔렸나’라는 머니게임은 파워 작가를 거느린 메가 갤러리들의 잔치다. 그들은 가만히 앉아 있지 않는다. 자신 있게 판매 리스트를 내걸고, 동시에 작가를 알리는 데도 게으르지 않다.서울은 지난 4~5일간 두 얼굴을 보여줬다. 프리즈 서울은 사상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미국 작가 마크 브래드포드의 작품이 약 62억 원에 판매됐고, 현장에는 오바마 전 대통령의 딸 말리아가 직접 찾아와 응원하는..

2025.09.08 09:13:41

김수자, 거울과 보따리 한국적 초현실로…SK 선혜원 개방 첫 전시

‘보따리 작가’ 김수자(68)가 10년 만에 서울로 돌아와 한옥에서 ‘호흡’한다.1968년 SK그룹 창업주 사저였던 전통 한옥 선혜원(鮮慧院)이 문을 열고 첫 전시로 김수자를 초대해 ‘선혜원 아트 프로젝트 1.0’을 선보인다. 포도뮤지엄(총괄디렉터 김희영)이 기획한 이번 전시는 세계적으로 활동해온 김수자의 작품이 한국 전통 건축물에 설치되는 첫 사례이자, 그의 서울 복귀전이다. 지난 7월 프랑스 문화예술 공로 훈장 ‘오피시에’를 수훈한 김수자는 회화와 바느질, 설치, 퍼포먼스,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

2025.09.02 20:38:17

분홍빛 ‘강령: 영혼의 기술’…오컬트인가, 인식의 실험인가[박현주 아트클럽]

서울시립미술관 중앙홀에 들어서자, 관객을 맞는 것은 거대한 도상의 충격이다. 18세기 유럽에서 마녀를 요괴이자 악마를 출산하는 존재로 그려낸 그림(요하나 헤드바 재현작)이 벽면을 채운다. 말의 다리를 가진 여성의 괴기한 신체, 불길처럼 치솟은 머리와 기괴한 표정은 단숨에 시선을 붙든다. 최은주 관장은 “당대 여성에 대한 차별의 기록”이라며, 일부 작품에는 ‘보호자 동반’ 표시를 붙였다고 설명했다.25일 개막한 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강령: 영혼의 기술'은 누군가의 표현대로 “귀신을 불러들이는 전시”다. 제목부..

2025.08.25 15:36:42

“성급한 컬렉터를 노린다”…미술 사기 매뉴얼[박현주 아트클럽]

미술 시장은 화려하다. 그러나 그 뒤편에는 어떤 덫이 숨어 있을까?“싸게 준다”는 말은 달콤하지만, 그 순간부터 이미 사기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진짜 좋은 그림은 가격을 깎지 않는다는 말처럼, 미술품 거래 세계에서 ‘싼 게 비지떡’이라는 속담은 어쩌면 가장 냉정한 진실이다.국제 미술 플랫폼 아트시(Artsy)가 최근 발표한 '5 Art Scams Every Art Buyer Should Know-and How to Avoid Them'은 미술 시장에 만연한 사기 유형 다섯 가지를 조목조목 짚으며, 수집가들이 반..

2025.08.22 01:00:00

작가와 갤러리 50:50?…불문율의 그림자 [박현주 아트클럽]

“작품을 만든 이는 작가인데, 왜 절반밖에 가져가지 못하는가.”수십 년간 미술 시장을 지탱해온 ‘50:50 룰’. 작가와 갤러리가 판매 대금을 똑같이 나누는 불문율이 흔들리고 있다.논쟁은 미국에서 먼저 불붙었다. 그리고 그 불씨는 한국 시장에도 질문을 던진다. 과연 이 분배 구조는 여전히 정당한가.8월은 늘 뉴욕 미술계가 숨 고르는 달이지만, 올해의 정적은 유난히 무겁다. 미국 아트딜러협회(ADAA)의 대표 행사 The Art Show가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페어는 단순한 거래의 장을 넘어, ..

2025.08.18 09:50:16

포도뮤지엄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김희영 “사랑은 혁명적 에너지”

천장에서 내려온 철근 구조물 속, 1.6톤의 콘크리트 덩어리가 공중에 매달려 있다.모나 하툼(Mona Hatoum)의 'Remains to be Seen'은 전시 첫 장면부터 관객을 압도한다. 붕괴 직전의 건축 잔해 같으면서도, 그 사이를 지나치는 순간 마치 우주를 떠도는 작은 운석처럼 초현실적인 세계로 끌어들인다.제주 서귀포 포도뮤지엄이 9일 개막한 특별전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We, Such Fragile Beings)은 '와우'로 시작해 ‘우와’로 끝나는 감동의 여정을 선사한다. ..

2025.08.10 08:00:00

韓 현대미술, 한한령 넘다…박종규, 광동미술관 ‘외국인 생존 작가’ 첫 전시

“박종규는 동양 철학의 허무와 서양 정보 논리의 이진 체계를 시각 언어로 통합해온 작가입니다.”중국 광저우 광동미술관 왕샤오창(王绍强) 관장은 박 작가를 ‘시각철학의 실천자’라 칭하며, 이번 전시를 “기술과 신체, 기억과 시간, 현실과 가상이 교차하는 시대에, 사라진 듯 보이지만 여전히 현존하는 존재들을 다시 감각하는 자리”라고 평가했다.5일 광동미술관에서 개막한 박종규(59)의 개인전 '비트의 유령들'은 단순한 해외 초대전이 아니다.광동미술관 개관 이래, 외국인 생존 작가로서는 최초로 바이에탄관 2층 ..

2025.08.05 16:45:14

박남희 관장 “AI 시대, 백남준은 이미 예언자였다”[박현주 아트클럽]

“진짜 AI는 인간을 닮아야 해요. 백남준은 이미 거기까지 본 사람이죠.”기술이 인간을 대체하려는 듯 밀려드는 시대, 박남희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은 오히려 ‘감각’과 ‘상상’을 호출한다. 개관 17주년을 맞은 지금, 그는 인지도와 물리적 한계를 넘어 미래로 도약하기 위해 ‘연결과 확장’이라는 백남준의 정신을 동시대적으로 실천하고 있다.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날, 경기도 용인 백남준아트센터에서 박남희 관장을 만났다. 부임 2년 차인 관장은 취임 직후부터 아트센터의 물리적·인지적 한계를 냉정하게 짚었다.“서울에..

2025.08.03 13:41:47

또 외국인 감독…한국 비엔날레 리더십의 ‘불편한’ 공식 [박현주 아트클럽]

“언제까지 한국의 비엔날레에서 한국 큐레이터들은 역차별을 받아야 하죠?”익숙하면서도 아픈 질문이다. 모 미술비평가의 이 물음은, 국제적 위상을 자랑하는 한국의 비엔날레에서 정작 한국인 큐레이터는 배제되는 현실을 다시 꺼내 묻는다.최근 부산비엔날레가 2026년 전시감독으로 아말 칼라프(Amal Khalaf)와 에블린 사이먼스(Evelyn Simons)라는 두 해외 큐레이터를 선정했다. 조직위는 이들이 “사회적 실천과 도시문화, 지역성과 예술 간 관계를 탐구해온 역량 있는 감독”이라며, 여성 큐레이터 듀오이자 중동..

2025.07.29 09:45:37

윤범모·유홍준 70대 문화기관장의 귀환…경륜인가, 회귀인가[박현주 아트클럽]

최근 문화계에 익숙한 이름 두 사람이 다시 공공문화기관의 수장 자리에 올랐다.윤범모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이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에,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가 국립중앙박물관장에 임명됐다.두 사람 모두 70대 중후반. 문화행정의 경험과 상징성을 갖춘 이들의 귀환은 문화계에 경륜과 안정감을 더할 수 있을까. 아아니면 세대교체의 시계를 거꾸로 되돌리는 신호일까.광주비엔날레를 이끌게 된 윤범모(74) 대표는 민중미술 연구를 기반으로 오랜 시간 미술사학자로 활동해왔다.1995년 비엔날레 창설 당시 특별전 큐레..

2025.07.21 09:50:27

'살아있는 조각의 현장' 세렝게티 공존의 미학 [박현주 아트클럽]

세렝게티는 살아있는 조각의 현장이다.7월 14일 밤, 세렝게티 국립공원의 텐티드 롯지 천막 숙소.동물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에 뒤척이다가 맞은 새벽. 그리고 오전 8시, 사파리 짚차에 올라 세렝게티에 들어서는 순간, 관광객은 더 이상 관광객이 아니다.거대한 야생의 무대에 발을 딛는 그 찰나, 우리는 ‘탐험가’가 된다. 탐험은 곧 발견의 전율로 이어지고, 발견은 본능을 깨운다.인간은 환호하지만, 동물들은 무심하다. 코끼리도, 기린도, 얼룩말도, 오직 자신에게 집중한다. 이곳에선 모두가 자..

2025.07.15 01:44:08

안토니 곰리 GROUND, 나를 비추는 조각의 방 [박현주 아트클럽]

“판테온이 닫힌 무덤이라면, GROUND는 열려 있는 무덤이자 생명의 장입니다.”영국 조각가 안토니 곰리의 말이다.강원도 원주, 뮤지엄 SAN.플라워 가든 아래로 천천히 이어지는 길 끝에, 땅속 깊이 묻힌 거대한 돔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직경 25미터, 높이 7.2미터. 콘크리트로 빚은 이 원형의 공간은 무덤 같지만, 그 안엔 생명이 숨 쉰다.지난달 문을 연 ‘GROUND’는 곰리의 세계 최초 상설관이다.건축가 안도 타다오와 협력해 만든 이 장소는 빛과 철, 침묵과 바람, 시간..

2025.07.03 10:39:18

‘영희보다 무서운’ 오징어게임3…‘기호’로 다시 쓴 디스토피아 [박현주 아트클럽]

승자는 죽었고, 돈은 살아남았다.'오징어게임3'은 ‘성기훈의 저항’조차 체계 안에 봉합해 버리는 자본주의의 절대 권력을 드러낸다.선함은 남았지만, 구조는 바뀌지 않았다.주인공 성기훈은 태어난 생명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죽음의 유산은 살아남은 자가 아닌, 새로 태어나 살아나갈 자에게 전해진다.그러나 이 결말은 단순한 감동 서사가 아니다.자본주의가 설계한 욕망의 기계 안에 ‘양심’이라는 기능이 어떻게 탑재되는지를 목격하게 된다.게임의 승자는 사라졌지만, 피 묻은 456억 ..

2025.06.30 16:37:18

‘대법원 조각’ 엄태정, 87세에 말하다…“조각은 세계를 건립하는 일”[박현주 아트클럽]

“예술(조각)이 세워지는 것은 하나의 세계를 장소 위에 건립하는 것이다.”조각가 엄태정(87·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의 13번째 개인전 '세계는 세계화한다'가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18일 개막한다. 1970년대 대표작부터 신작 조각, 회화, 드로잉까지 총 27점이 소개되는 이번 전시는, 조각이라는 매체를 통해 존재와 세계를 탐구해온 작가의 철학적 사유를 집약한다. 전시 제목은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개념에서 따왔다. 세계는 단일하고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인간과 사물, 장소와 시간이 관계를 맺으며 드..

2025.06.18 01:01:00

제임스 터렐, 17년 만의 귀환…“빛은 제게 일용할 양식입니다”

“저는 결국 한 사람의 예술가일 뿐입니다. 제가 하려는 일은 단 하나, 한 조각의 빛을 전달하는 것입니다.”‘빛의 조형가’로 불리는 미국 작가 제임스 터렐이 서울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연다. 11일 페이스갤러리 서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빛의 사제’라는 별칭답게 철학적이고 구도자적인 면모를 드러냈다.덥수룩한 흰 수염, 낮은 목소리, 그리고 단정한 눈빛. 터렐은 퀘이커교도다. ‘내면의 빛’을 삶의 신조로 여기는 이 전통은 그가 평생 빛을 탐구해온 이유이기도 하다. 면도를 하지 않는 삶의 태도처럼, 그의 작업은..

2025.06.11 15:22:32

정선 '화훼영모화' 부활…21세기 문화보국을 묻다[박현주 아트클럽]

대구 간송미술관에서 '화훼영모화첩'을 마주한 순간, '21세기 문화보국'이란 무엇인가를 곱씹게 된다. 겸재 정선의 손끝에서 피어난 작은 생명들은, 단지 자연을 묘사한 그림이 아니라, 민족의 기억을 되살리는 회화다.조선을 대표하는 화가 겸재 정선(1676∼1759)은 진경산수화의 대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꽃과 동물, 곤충을 소재로 한 화훼영모화에서도 섬세하고 감각적인 필치로 탁월한 작품세계를 보여줬다. 그중 말년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8폭짜리 ‘화훼영모화첩’은 갈대꽃 위의 호랑나비, 가지밭의 두꺼비, 수박을..

2025.06.10 09:5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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