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물감도 닦지 않았다…화가의 품위 ‘윤형근의 집’[박현주 아트클럽]

윤형근은 떠났지만, 그의 바닥은 아직 그림을 그리고 있다.바닥에 검은 물감이 그대로다. 닦아내지 않았다. 윤형근(1928~2007)이 작업하며 흘리고 밟고 지나간 흔적이다. 검푸른 물감은 40여 년의 시간을 건너 서울 마포구 서교동 작업실 바닥에 얼룩처럼 남아 있다.검은 물감이 흩뿌려지고 문질러지고 겹쳐졌다. 새집처럼 복원하지 않았..

2026.08.25 16:08:24

사인 남기지 못한 ‘백색 묘법’ 3점 한자리에…박서보미술관 개관

생전 박서보(1931~2023)는 자신의 미술관이 생기면 거대한 백색 ‘묘법’ 세 점을 걸고 싶다고 했다.그 바람이 서울 연희동에서 현실이 됐다. 새로 문을 연 박서보미술관 3층 전시장에는 그가 직접 골랐던 대형 백색 ‘묘법’ 세 점이 벽을 떠나 나란히 서 있다. 미처 사인도 하지 못한 미완의 완성작이다. 사방에서 스며드는 자연광에 따라 ..

2026.08.18 14:13:19

해머링맨 세화미술관에 바젤리츠 왔다…1500억 규모 사후 첫 개인전

“한국 사람들이 제 작업에 놀라거나 흥미를 느낄지 무척 궁금하네요.”독일 현대미술의 거장이자 ‘거꾸로 회화’로 잘 알려진 게오르그 바젤리츠(1938~2026)가 한국 관객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다.20년 만의 한국 개인전을 앞두고 지난 4월 세화미술관이 진행한 영상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작업이 “아시아 문화와는 꽤 거리가 있을 것”..

2026.08.12 15:14:18

“내가 오디세이”…강요배 “그림은 모르는 나를 끄집어내는 일”[박현주 아트클럽]

“자기가 모르는 자기를 끄집어내는 거예요.” '그림이 무엇이냐'고 묻자 화가 강요배(74)가 내놓은 답이다.그는 이제 눈앞의 풍경을 그대로 붙잡으려 하지 않는다. 물감을 묽게 풀어 흘리고, 캔버스를 눕혀 우연히 번지는 흔적까지 받아들인다. 오래 생각하지만 그리는 시간은 짧다. “10분도 길죠. 생생한 맛이 좋아요. 옛날에는 찐득찐득하게 그..

2026.08.11 15:14:43

"팔자 좋은 과수원 화가?"…이대원을 너무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다(종합)

사과꽃이 바람에 흔들리는 듯했다.분홍과 흰 꽃잎은 서로 다른 빛을 머금고, 풀잎은 초록 하나가 아니라 수십 개의 초록으로 살아 움직였다. 검은 벽을 가득 채운 대형 화면은 덕수궁을 하나의 거대한 풍경으로 바꾸었다. 가까이에서는 촘촘한 붓질이 추상처럼 다가오고, 몇 걸음 물러서면 석양이 스며든 우리 산천이 눈앞에 펼쳐진다.우리는 왜 ..

2026.08.05 15:23:18

사라진 절판본…열린 미술관은 무엇으로 신뢰를 지킬까[박현주 아트클럽]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서울시립미술관이 지금도 한 권의 책을 기다리고 있다.유영국 탄생 110주년 회고전 '유영국: 산은 내 안에 있다' 전시장에 열람용으로 비치했던 절판본 『유영국: 삶과 창조의 지평』(오광수)이 전시 기간 중 사라졌다.외부 기관에서 어렵게 빌려온, 재발행도 불가능한 절판본이었다.최근 미술관..

2026.08.01 10:54:57

호크니는 빠지고, 도라에몽은 시작가…미술시장이 보내는 신호 [박현주 아트클럽]

그림이 안 팔린다? 미술시장은 숫자로 움직이지만, 분위기는 사건으로 읽힌다.국내 양대 경매사의 7월 경매는 지금 한국 미술시장의 분위기를 압축적으로 드러냈다.서울옥션에서는 시작가 5억 원에 출품된 데이비드 호크니 작품이 경매 직전 철회됐다. 케이옥션에서는 추정가 3억7000만~8억 원에 나온 블루칩 작가 유영국의 '산'이 출품 목록에서..

2026.07.23 00:01:00

"피규어 작가로만 보지 말아달라"…카우스의 진짜 얼굴[박현주 아트클럽]

카우스(KAWS)를 떠올리면 XX 눈의 캐릭터와 거대한 공공 조형, 아트토이와 패션 협업이 먼저 생각난다. 대중에게는 '피규어 작가' 이미지가 가장 강하다. 2018년 서울 석촌호수에 가로 25m, 세로 28m의 거대한 '컴패니언'을 띄우며 한국에도 '카우스 열풍'을 일으킨 작가다. 하지만 서울 강서구 스페이스K에서 만난 카우스(본명 브라..

2026.07.21 15:17:33

연필선이 만든 산맥…차영석, 화가의 존재를 그리다[박현주 아트클럽]

멀리서는 안개 낀 산맥이다. 한 걸음 다가서면 풍경은 사라지고 짧은 연필선들이 끝없이 겹쳐진다. 화면은 목판화처럼 거친 결을 드러내다가도 용의 비늘이나 물결을 연상시키는 리듬으로 살아 움직인다.그러나 이 거대한 화면 어디에도 산은 없고, 용도 없다. 차영석(50)이 그린 것은 사물이 아니라 자신의 ‘그리기’다.그동안 운동화와 시계, 가..

2026.07.20 14:56:49

귀여움은 위장…미스터(Mr)가 그린 일본의 초상[박현주 아트클럽]

귀여움에 빨려든다.만화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오색찬란한 소녀들이 커다란 눈망울로 관람객을 단숨에 사로잡는다.하지만 오래 바라볼수록 그것은 단순한 귀여움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커다란 눈 안에는 토끼와 하트, 별, 음표, 픽셀 이미지와 게임 아이콘들이 촘촘히 겹쳐져 있다. 어떤 작품에서는 한글 '평화'라는 단..

2026.07.02 17:22:57

칼끝으로 긁어낸 순수…이사라 '원더랜드' 25년[박현주 아트클럽]

"원더랜드에서는 시간이 흐르지 않습니다."1일 서울 인사동 노화랑에서 만난 이사라(46)는 자신의 그림 속 소녀처럼 환하게 웃었다. 40대 중반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천진한 표정이었다.작가도, 작품도 그 세계 안에서는 나이를 먹지 않는 듯했다.그러나 그 천진함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수십 번 덧바..

2026.07.01 14:38:18

눈보다 머리를 흔드는 전시…'이것은 개념미술이 (아니)다'[박현주 아트클럽]

전시장에서는 흥미로운 장면이 반복된다. 관객들은 작품보다 설명문 앞에 더 오래 머문다. 휴대폰 카메라가 향하는 곳도 작품보다 캡션이다. 작품을 본 뒤 다시 설명문으로 돌아가고, 설명문을 읽은 뒤 다시 작품을 바라본다.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18일 개막한 '이것은 개념미술이 (아니)다'는 그런 전시다. 보는 전시라기보다 읽는 전시, 더 정..

2026.06.18 15:23:11

"90년대엔 내가 불멸이라 믿었다"…데이미언 허스트의 고백[박현주 아트클럽]

"90년대에는 내가 불멸이라고 느꼈다. 지금은 아니다."포름알데히드 속 상어와 다이아몬드 해골로 현대미술사를 뒤흔든 데이미언 허스트(60)가 나이 듦과 죽음, 그리고 예술의 의미에 대해 솔직한 고백을 내놓았다.10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만난 허스트는 "지나온 시간이 앞으로 남은 시간보다 많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며 "이제는 죽음..

2026.06.11 00:00:00

반가사유상과 불이(不二)…이종구가 건너간 세계 [박현주 아트클럽]

"예전 같았으면 그걸 그렸죠. 그런데 이미 넘어섰고.”화가 이종구(72)는 잠시 말을 멈췄다. 윤석열 정부 시기 갈등과 계엄 논란, 팔레스타인 전쟁 같은 현실을 말하던 순간이었다. 1980년대 민중미술의 한복판에서 농민과 노동, 시대의 폭력을 그려온 작가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이었다. 싸움을 그리던 화가는 이제 ‘왜 인간은 끝없이 싸우는..

2026.05.20 14:41:36

피카소에서 한국 작가까지…베일벗은 ‘퐁피두센터 한화’[박현주 아트클럽]

서울 여의도에 들어선 ‘퐁피두센터 한화(Centre Pompidou Hanwha)’가 마침내 베일을 벗었다.‘세계적인 미술관의 서울 진출’이라는 상징보다 더 중요한 건, 이 공간이 단순한 해외 미술 수입관이 아니라는 점이다. 약 1000평 규모 전시장 가운데 절반은 파리 퐁피두센터 컬렉션 기반의 근대미술 기획전, 나머지 절반은 동시대 글로..

2026.05.19 17:02:00

전쟁이 할퀸 베니스비엔날레…최빛나 감독 “99개 국가관, 왜 순위 매기나”[박현주 아트클럽]

“‘노(No) 러시아’, ‘집단학살관은 물러나라(No Genocide Pavilion)’, ‘팔레스타인은 세계의 미래다(Palestine is the future of the world)’.” 이탈리아 베네치아 자르디니에서 개막한 제61회 베니스비엔날레는 미술 전시를 넘어 ‘국가’라는 시스템 자체를 되묻는 현장으로 변모했다. ..

2026.05.11 04:13:30

분홍 심장, 푸른 동물…고상우의 공존 미학 [박현주 아트클럽]

푸른 화면 속, 동물들은 우리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다. 우리는 누구의 고통을 외면해 왔는가. 상처 입은 동물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 중심 사회의 폭력을 되묻는 전시가 열린다사비나미술관에서 5월 2일 개막하는 고상우 기획전 ‘스틸 브리딩: 아직 숨 쉬고 있다(Still Breathing)’는 인간의 욕망과 시스템 속에서 밀려난 존재..

2026.04.30 16:35:37

‘농부의 아들’ 이배, 숯으로 쌓은 염원…뮤지엄 산, 첫 한국 작가 조명

“나는 농부의 아들입니다.”숯을 쌓고, 흙을 갈고, 검정을 세운 작가 이배(70)는 이번 전시에서 가장 먼저 자신의 정체성으로 돌아갔다.강원 원주의 뮤지엄 산에서 열린 개인전 ‘En attendant: 기다리며’는 단순한 회고가 아니다.지난 3년간 20여 차례 미술관을 오가며 준비한 이번 전시는 그에게 “나를 다시 확인하는 시간..

2026.04.06 15:30:45

“달항아리는 이제 블루칩이다” [박현주 아트클럽]

완벽하지 않아서 더 완벽하다. 기울어진 균형, 미세한 흔들림, 그리고 비어 있는 중심.18세기 조선 백자 달항아리가 뉴욕에서 다시 한 번 가격의 궤도를 밀어 올렸다. 세계적인 미술품 경매사 크리스티가 24일(현지시간) 진행한 ‘아시아 위크 세일’에서 높이와 지름이 각각 42.5cm에 이르는 대형 달항아리가 318만 달러(한화 약 43억원)에..

2026.03.30 11:11:00

상단으로 이동
로딩중로딩아이콘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