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에서

왕의 얼굴 벗은 최수종, 운명 앞의 인간을 그리다…연극 '오이디푸스 [객석에서]

운명을 피하려는 인간의 몸부림은 결국 운명 앞에서 멈춰 섰다. 9년 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온 최수종은 '오이디푸스'에서 절대 권력을 지닌 군주가 아니라, 운명 앞에서 끝내 무너질 수밖에 없는 한 인간을 묵직하게 그려낸다.지난 4일 개막한 서재형 연출의 연극 '오이디푸스'는 인간의 운명과 진실, 선택의 아이러니를 파고드는 작품이다. 고대 그리스 비극의 정수로 꼽히는 소포클레스의 원작을 바탕으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혼인해 자식을 낳을 것"이라는 신탁을 받은 오이디푸스의 비극을 무대 위에 펼쳐낸다.이야기..

2026.07.14 07:00:00

400년 전 고전이 다시 묻는다…정의는 누구의 것인가 [객석에서]

"자비도, 정의도 그대들의 것이고, 신마저 그대들의 것이라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탐욕스러운 악인의 대명사로 기억돼 온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 그의 한탄스런 독백은 법과 정의, 차별과 복수의 문제를 오늘의 시선으로 다시 묻는다.지난 8일 막을 올린 '베니스의 상인'은 오경택 연출이 각색과 연출을 맡아 원작 속 샤일록을 새롭게 조명한다. 익숙한 희극의 외피를 유지하면서도 그 이면에 숨겨진 비극성을 전면으로 끌어올린다.작품은 16세기 계약과 법이 지배하는 도시 베니스와 사랑과 낭만의 공간 벨몬트를 오가..

2026.07.12 12:00:00

"인생 뭐 있나"…객석도 춤추게 한 립제이의 '몽중유희' [객석에서]

"얼씨구!"장구 장단을 몸짓으로 풀어낸 세계적인 왁킹 댄서 립제이의 춤사위에 객석 곳곳에서 추임새가 터져 나왔다. 20대 청년부터 백발의 노년층까지 관객들은 어깨를 들썩이며 리듬을 탔다. 9일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열린 여우락 페스티벌 '몽중유희'는 공연을 보는 데 그치지 않고 함께 어우러지는 '판'을 만들었다.무대는 프롤로그 '몽문(夢門)'으로 현실과 꿈의 경계를 열며 시작됐다. 작곡가 겸 가야금 연주가 박동석은 전통 장단을 전자음악(EDM) 사운드와 결합해 공연의 흐름을 이끌었다.이어 휘몰이 장단을 ..

2026.07.11 12:00:00

내 안의 세포들이 전하는 응원…뮤지컬 '유미의 세포들' [객석에서]

사랑 세포와 감성 세포, 이성 세포, 응큼 세포까지. 머릿속 세포들이 힘차게 '맷돌'을 굴린다. 주인공 유미를 위해 머리를 맞대고, 때로는 용기를 낸다. 판타지적 상상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마침내 무대 위에서 펼쳐진다. 지난달 30일 개막한 뮤지컬 '유미의 세포들'은 이동건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원작 웹툰은 글로벌 누적 조회수 35억 뷰를 기록한 화제작이다. 드라마와 애니메이션 영화로도 제작됐다. 뮤지컬 '유미의 세포들'은 웅이와 연애 중인 평범한 직장인 유미(티파니 영·김예원 분)의 이야기를 ..

2026.07.07 08:00:00

활 끝에서 피어난 빛…양인모, 소리를 '보게' 만들다 [객석에서]

바이올린의 선율과 빛이 만나면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와 미디어아트 그룹 김치앤칩스는 쉽게 떠올리기 어려운 이 질문을 하나의 공연으로 구현했다. 빛은 단순한 무대장치를 넘어 음악과 공간을 새롭게 인식하게 하는 또 하나의 악기가 됐다.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 GS아트센터에서 열린 '양인모 X 김치앤칩스' 공연에서 두 아티스트는 클래식 공연의 문법을 뒤집는 무대를 선보였다. 선율과 빛의 조우를 통해 익숙한 공연장을 새로운 감각의 공간으로 재해석했다. 암전된 무대 위에는 단상 하나와 루프 ..

2026.07.02 08:00:00

칼 대신 춤을 택한 세자…예악정치 그린 창극 '효명' [객석에서]

"춤은 내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담은 나의 기록이다. 내 영혼이 가장 자유로워지는 순간이다. 춤을 추면 어디든 갈 수 있고 어떤 꽃이든 피울 수 있다. 나를 비난하는 사람을 품을 수 있고 아부하는 사람도 안을 수 있다." 23일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개막한 국립창극단 '효명'에서 이 대사는 단순한 예술가의 독백으로 머물지 않는다. 세도정치로 왕권이 흔들리던 시대, 춤과 예악으로 질서를 바로 세우려 했던 효명세자의 정치적 고민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사도세자의 증손자인 ..

2026.06.27 09:34:43

위대한 작곡가의 초상 뒤에 숨겨진 한 인간…뮤지컬 '베토벤' [객석에서]

"뭔가 잘못됐어 내 숨이 멈춘 것 같아 답답하고 먹먹한 소음뿐…나의 음악을 내 삶의 이유를 빼앗길 수 없어."(넘버 '뭔가 잘못됐어' 중)재연으로 돌아온 뮤지컬 '베토벤'은 초연에서 중심축을 이뤘던 사랑 서사를 걷어내고, 청력을 잃어가는 예술가의 고독과 집념에 집중한다.청력을 잃어가는 루드비히 반 베토벤은 "이 지독한 꿈에서 깨어나게 해달라"며 절규한다. 삶의 이유이자 전부인 음악을 빼앗길 수 없다는 외침은 위대한 작곡가가 아닌 두려움과 불안에 흔들리는 한 인간의 모습이다. 지난 9일 개막한 '베토벤'은 청..

2026.06.25 09:00:00

혐오의 합창, 한 인간을 무너뜨리다…오페라 '피터 그라임스' [객석에서]

한 인간을 향한 공동체의 의심은 어디까지 정당할 수 있을까. 집단의 시선은 언제부터 개인에게 폭력이 되는가.한 개인을 둘러싼 공동체의 집단 폭력은 한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린다. 사건의 진실 여부보다 편견과 혐오가 앞서고, 누군가를 향한 멸시와 비하가 일상의 재미처럼 소비된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과 조작된 여론이 한 사람을 파괴하는 모습은 오늘날에도 낯설지 않다. 영국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1913~1976)의 오페라 '피터 그라임스'는 마녀사냥의 타깃이 된 한 인물의 비극적인 서사를 그린다. 작품은 영국 시..

2026.06.20 13:00:00

사직의 질서, 종묘의 생동…예악으로 읽는 조선의 통치 [객석에서]

"드오!" 음악의 시작을 알리는 집사악사의 외침에 이어 축(祝)이 세 차례 울리자 피리와 대금, 거문고와 가야금 등 향악기가 일제히 소리를 냈다. 붉은 관복을 입은 무용수 64명은 가로세로 8명씩 정연하게 늘어서 일무(佾舞)를 선보였다. 앞줄은 목검을, 뒷줄은 목창을 들고 무무(武舞)를 추며 조상들의 공덕을 기렸다. 12일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열린 국립국악원 대표공연 '종묘·사직 - 왕의 제단, 백성의 땅'은 조선의 국가 제례 음악인 종묘제례악과 사직제례악을 한 무대에서 비교해 볼 수 있는 자리였다. ..

2026.06.15 14:08:04

몸으로 펼쳐낸 수묵화, 미디어아트로 피어난 도원경…국립무용단 '몽유도원무'[객석에서]

무대 위 화폭처럼 드리운 천막에 노란 조명이 스며든다. 그 너머로 어른거리는 무용수들의 실루엣은 꿈틀거리며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마치 젖은 화선지 위로 번져나가는 먹물 같다. 스크린 위로 투사된 먹물 질감의 미디어아트와 무용수들의 몸짓이 만들어낸 입체적인 수묵화가 무대 위에서 완벽하게 오버랩된다.11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국립무용단의 '몽유도원무' 프레스콜이 열렸다. 2022년 초연 당시 "전통과 현대의 만남을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호평을 받았던 이 작품은 2024년 재연에 이어 올해 세 번째 ..

2026.06.11 21:21:34

"도망가지 말고, 살아가요"…체호프의 한국적 변주 '반야 아재'[객석에서]

"나도 한땐 재능 있고 의욕이 넘쳤는데. 제대로만 했다면, 만해 한용운만큼은 했을 텐데…."'바냐 아저씨'가 아니라 '반야 아재'다. 러시아의 대문호 안톤 체호프의 고전이 130여 년을 지나 한국에서 새로 태어났다. 지난 22일 개막한 국립극단의 연극 '반야 아재'는 체호프의 대표작을 1930년대 말 일제강점기의 조선으로 옮긴 작품이다. 조광화 연출은 원작의 이야기를 일제강점기라는 배경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내 인물들의 욕망과 좌절을 풀어 놓는다. 원작의 '바냐'의 이름은 이번 무대에서 박이보로 바뀌었다. 그..

2026.05.23 21:10:12

토슈즈 벗고 대나무 숲으로…비움의 미학'인 더 뱀부 포레스트' [객석에서]

높이 솟아오른 대나무 숲. 그 앞에 서 있던 한 여성 무용수가 강인함의 상징인 토슈즈를 벗어 떨어뜨리더니, 숨을 깊게 내쉰다. 잇따라 숨을 뱉어내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느리지만 유려하게 흘러간다. 이들의 무거운 호흡 위로 거문고 줄을 튕기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극장을 휘감던 긴장감을 차분하게 덜어낸다.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서울시발레단의 창작발레 신작 '인더 뱀부 포레스트(In the bamboo forest)' 프레스콜이 열렸다. 토슈즈를 신고 화려한 기교로 파드되(2인무)를 추던 발레리..

2026.05.15 12:46:37

이서진의 냉소적 바냐, 고아성의 단단한 소냐…연극 '바냐 삼촌'[객석에서]

"너무 억울해서 밤에 잠도 안 와. 밤새 침대에서 천장을 보면서 내가 그 모든 시간을, 기회를 흘려보냈구나 생각하면 잠을 못 잔다고!"삶을 돌아보는 바냐의 푸념 섞인 절규에는 후회와 미련이 뒤섞여 있다. 연극 '바냐 삼촌'은 그렇게 평범한 인물들이 겪는 상실과 욕망, 후회와 좌절 그럼에도 '계속 살아가야 하는' 삶의 아이러니를 무대 위에 펼쳐놓는다. 지난 7일 개막한 '바냐 삼촌'은 LG아트센터가 2024년 '벚꽃동산', 2025년 '헤다 가블러'에 선보이는 세 번째 제작 연극 시리즈다. 양손프로젝트의 손상..

2026.05.11 15:05:32

임윤찬, 익숙함 대신 '오래 남을' 음악을 택하다 [객석에서]

피아니스트 임윤찬(22)이 2년 만의 국내 리사이틀에서 익숙한 선택 대신 자신이 오래 붙들고 싶은 음악을 꺼내 들었다. 당초 브람스와 슈만으로 구성했던 프로그램을 전면 교체, 슈베르트와 스크랴빈으로 무대를 채웠다. 공연에 앞서 그는 "시간의 흐름을 견디며 오래 기억에 남을 작업을 하고 싶다. 내 안에 숨 쉬고 있는, 지금 내 마음에 있는 곡"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번 리사이틀은 익숙한 명곡의 재현보다 지금 자신이 탐구하고 있는 음악을 밀도 있게 풀어낸 무대였다.6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가진 리사이틀에서 임윤찬이..

2026.05.07 10:24:22

조성진이 빚은 청년 베토벤…샤니 시대 앞둔 뮌헨필과의 재회 [객석에서]

오는 9월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차기 상임지휘자로 취임하는 라하브 샤니에게 이번 내한 공연은 새로운 시작을 미리 선보이는 무대였다. 3년 만에 한국을 찾은 뮌헨필의 일곱 번째 내한 공연에는 조성진이 함께했다. 샤니는 아시아 투어의 대만과 한국 공연 모두 조성진을 협연자로 택했고, 앞서 2022년 객원지휘자로 뮌헨필과 호흡을 맞췄을 당시에도 조성진과 무대에 선 바 있다. 상임지휘자 취임을 앞둔 시점에서 다시 이어진 이 조합은 앞으로의 뱡향을 보여주는 장면처럼 읽혔다. 지난 5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2026.05.06 16:06:27

전통 위에 얹은 현대적 유머와 기예, 살아있는 유희로 되살아난 '광대' [객석에서]

오방신과 백년광대들이 무대 위에 등장하자, 단원들이 혼비백산 흩어지고 순백은 기절한다. "뽀뽀 하지마!" 악몽을 꾼 듯 기겁하며 눈을 뜬 예술단장 순백의 모습에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온다.국립정동극장 예술단의 2026년 정기공연 '광대'가 무대에서 펼쳐졌다. 1902년 협률사의 '소춘대유희'(笑春臺遊戲)를 복원하는 리허설 중 정전이 발생하며 과거의 광대들이 쏟아져 나온다는 설정이다.조선시대 광대는 판소리, 춤, 곡예, 재담을 상황에 맞춰 즉각적으로 만들어내는 전천후 연희자였다. 124년 전 광대의 공연이 세대와 신분..

2026.05.01 13:00:00

박종원이 다시 읽은 '베르테르'…선율·몸짓으로 되살린 사랑 [객석에서]

국립오페라단의 올해 첫 작품 '베르테르'는 익숙한 비극을 오늘의 감정으로 다시 읽어낸 무대다. 이룰 수 없는 사랑에 사로잡힌 한 남자의 파멸이라는 서사는 그대로 두되 연출과 음악, 몸짓의 언어를 더해 사랑이라는 감정의 결을 새롭게 드러낸다.눈길을 끄는 것은 영화감독 박종원의 첫 오페라 연출이다. '구로아리랑',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을 연출한 그는 무대를 제한된 공간에 머물게 두지 않았다. 마스네의 악보를 영화의 콘티처럼 읽어내며 장면의 전환, 시선의 이동, 인물 간 거리감을 입체적으로 구성했다. 제한된 무..

2026.04.25 15:00:00

힘 빼자 폭발한 관능…베자르 제단 위 타오른 김기민의 '볼레로' [객석에서]

어둠 속에서 볼레로 선율이 흐르자 무용수 김기민이 손으로 반원을 그리며 붉은 원형 테이블 위에 올랐다. 반복되는 리듬에 맞춰 하체는 탄력 있게 튕겨 오르고, 상체는 유연하게 흐른다. 절제된 몸짓은 오히려 더 짙은 관능과 에너지를 만들어낸다.23일 서울 강남구 GS아트센터에서 열린 '베자르 발레 로잔(BBL) with 김기민' 프로그램 A의 피날레 '볼레로'에서 김기민은 주역 멜로디로 무대의 중심을 장악했다. 음악과 춤이 분리되지 않은 채 하나로 맞물리며, 그는 자신만의 '멜로디'를 빚어냈다.모리스 라벨의 동명 음악..

2026.04.25 10:00:00

김대진, 차이콥스키의 '음표로 쓴 유서'를 무겁게 읽다 [객석에서]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은 초연 당시만 해도 마지막 악장의 침잠하는 결말 탓에 낯선 작품으로 받아들여졌다. 이후 '비창(Pathétique)'이라는 제목과 함께 비극적 서사가 더해지며 그의 대표작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 2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김대진은 작품의 어둡고 무거운 정서를 밀도 있게 되살렸다. 이날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2025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 - KBS교향악단' 공연은 전(全) 프로그램이 차이콥스키(1840~1893)의 작품으로 구성돼 작곡가 작품세계 전반을 조명했다.한국예술종합..

2026.04.23 16:28:59

거장의 경청, 샛별의 질주…정명훈과 김세현의 차이콥스키 [객석에서]

54년의 세월의 격차는 음악 앞에서 무색했다.클래식 샛별 피아니스트 김세현(19)과 거장 지휘자 정명훈(73)은 세대를 뛰어넘는 호흡으로 하나의 음악을 완성했다.지난 12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정명훈 & 원 코리아 오케스트라' 무대에서 정명훈은 김세현의 연주를 세심하게 받쳐주었고, 김세현은 10대 연주자 특유의 패기와 집중력으로 화답했다.이들이 협연한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정명훈이 젊은 연주자들과 자주 호흡을 맞춰온 대표 레퍼토리다. 과거 조성진과도 여러 차례 협연한 바 있어, 이날 ..

2026.04.13 15: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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