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에서

백조 군무 황홀함과 흑조 유혹 사이에서…'백조의호수'[객석에서]

달빛 아래 무대 위를 수놓은 청초한 백조들의 군무는 황홀경 그 자체다. 24명 무용수들의 정교한 호흡과 우아한 몸짓은 단숨에 객석을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의 세계로 바꿔놓았다. 7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개막한 국립발레단의 '백조의 호수'는 고전 발레의 정수가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줬다. 작품의 서막을 여는 궁전의 성대한 연회 장면이 지나고, 배경이 숲속 호숫가로 전환되는 순간 무대는 낭만주의 발레의 절정을 향해 달린다. 차이콥스키의 유려한 선율 위로 쏟아지는 백조들의 날갯짓은 단순한 움직임이 아니다...

2026.04.09 15:53:47

정교함과 생동감의 균형…블레하츠와 VFCO의 베토벤 [객석에서]

피아노의 트릴(2도 차이 음을 빠르게 전환하는 연주법)이 귀를 간지럽힌다. 군더더기 없는 정제된 선율은 공연장을 맑게 채웠고, 객석은 숨을 죽인 채 그 흐름을 따라갔다. 지난 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2026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 - 베르비에 페스티벌 체임버 오케스트라(VFCO)' 무대는 악단과 피아노가 서로 밀고 당기며 협주의 본질을 드러낸 시간이었다. 반주와 독주의 구분을 넘어, 서로 호흡하고 반응하는 유기적인 대화가 이어졌다.2005년 창단한 VFCO는 스위스 베르비에 페스티벌을 대표하는 악단이..

2026.04.08 14:00:39

사랑과 예술로 살아낸, 너무나 뜨거웠던 그 여자…뮤지컬 '렘피카' [객석에서]

"살면서 목숨보다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나요? 난 두 사람이나 있었어요. 재수가 좋았죠. 그런데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했지 뭐예요? 재수도 더럽게 없지." 캔버스 앞에 앉은 노인의 독백으로 막이 오른다. 한 시대를 휘어잡았던, '붓을 든 별난 여자'의 이야기가 무대 위에 올랐다. 지난달 21일 개막한 뮤지컬 '렘피카'는 실존 화가 타마라 드 렘피카의 삶과 예술, 그리고 사랑을 무대 위에서 강렬하게 펼쳐보인다. 20세기 초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한 렘피카는 아르데코 양식의 초상화로 시대를 풍미한 화가다. 날카로운..

2026.04.05 14:00:00

츠베덴이 빚은 '거대한 낭만'…서울시향 브루크너 4번 [객석에서]

호른이 정적을 조심스레 깨고, 플루트와 클라리넷, 오보에가 그 흐름을 이어받다. 이어 현악이 선율을 또렷하게 쌓아올리며 찬찬한 일출의 순간을 펼쳐냈다. 지난 2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서울시립교향악단 정기공연에서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은 금관의 웅장한 울림과 현악의 섬세한 셈여림을 정교하게 조율하며 브루크너의 거대한 낭만을 구현했다. 서울시향이 지난 1월 스위스 지휘자 필리프 조르당과 브루크너의 교향곡 제1번을 선보였다면, 이번에는 츠베덴과 교향곡 4번 '낭만적'을 무대에 올리며 브루크너 탐구를 이어갔..

2026.04.03 15:21:28

봄밤 팡파르로 연 교향악축제…국립심포니, 말러로 화려한 개막 [객석에서]

봄바람에 벚꽃이 휘날리듯 현의 울림이 서서히 번지고, 트럼펫이 팡파르를 울리며 입장한다. 축제의 막이 올랐다.지난 1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2026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 개막 공연에서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는 말러 교향곡 제1번으로 첫 무대를 장식했다.예술감독 로베르토 아바도는 특유의 극음악적 해석으로 말러의 서사와 생동감을 끌어올렸다. 현악이 유려하게 흐르는 사이 관악과 타악이 겹겹이 쌓이며 무대는 한 편의 드라마처럼 전개됐다. 관악이 뻐꾸기 울음소리를 연상시키는 대목에서는 전원의 정서가 살아나며 ..

2026.04.02 14:19:52

먹구름 뚫은 조성진의 타건…통영에 봄이 내렸다 [객석에서]

낮게 가라앉은 우중충한 통영의 하늘. 조성진의 타건이 시작되는 순간, 공연장에는 먹구름을 뚫고 쏟아지는 정오의 햇살 같은 선율이 가득 찼다. 30일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열린 '2026 통영국제음악제' 조성진 피아노 리사이틀은 공연장을 단번에 벚꽃이 만개한 봄의 기운으로 물들였다. 이날 조성진은 건반 위에서 '춤'을 그려냈다. 바흐, 쇤베르크, 슈만, 쇼팽으로 이어진 레퍼토리는 시대를 가로지르면서도 '춤'이라는 하나의 축을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연결됐다.공연 전반부는 바로크 시대의 음악을 전면에 배치해 화려하고 역동..

2026.03.31 00:36:42

손열음, 여백으로 풀어낸 버르토크…BBC심포니 시벨리우스로 응집·폭발 [객석에서]

고요에서 시작된 한 음이 깊이 꽂혔다.피아니스트 손열음은 힘을 덜어낸 해석으로 버르토크를 풀어냈고, 섬세한 터치로 음와 음 사이의 여백을 살려냈다. 지난 25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사카리 오라모 &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 with 손열음' 공연은 과시보다 절제를 택한 협연이었다. 1930년에 창단한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창단 100주년을 앞두고 13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사카리 오라모가 이끄는 악단은 이번 무대에서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첫 협연을 선보였다.협연곡은 버르토크의..

2026.03.26 16:37:34

문근영의 낯선 얼굴, 위로와 격려로 그린 성장…연극 '오펀스'[객석에서]

때로는 거창한 말보다 가만히 건네는 위로 한마디가 사람을 바꾼다. 곁에서 어깨를 토닥이고, 말없이 손을 내미는 일. 연극 '오펀스'는 바로 그런 작은 다정함이 한 사람을 어떻게 다시 살아가게 하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지난 10일 개막한 '오펀스'는 상처입은 세 인물이 서로의 결핍을 비추고 보듬으며 가족이 되어 가는 과정을 그린다. 부모없이 살아온 형제 트릿과 필립, 그리고 우연히 그들 곁으로 들어온 중년 남성 해롤드가 부딪치고 흔들리며 조금씩 변해가는 이야기다. 트릿은 강도질로 생계를 이어가며 바깥 세상의..

2026.03.23 09:00:00

꿈틀대는 생명력과 에너지…춤의 무한한 가능성 보여준 '재키'[객석에서]

남녀 구분 없이 피부에 밀착된 살구색 레오타드를 입은 무용수들이 무대 위에서 절제된 동작으로 군무를 춘다. 16명의 무용수들이 몸을 동시에 구부렸다 펴거나 꺾는 동작을 반복하는 모습은 마치 팔·다리가 여러 개인 거대한 외계 생명체가 걸어 나오는 장면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생명체'는 계속 모습을 바꾸고 예측 불가한 움직임을 보여준다.18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서울시발레단의 '재키(Jakie)' 공연이 펼쳐졌다.샤론 에얄과 가이 베하르가 공동 안무한 이 작품은 2023년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NDT)에서 초연..

2026.03.20 16:32:36

황금기에 예견한 절망, 절도 있는 비극 …서울시향 말러 6번 [객석에서]

완벽해 보이는 삶 속에서도 비극은 예고 없이 스며든다. 구스타프 말러는 인생의 황금기였던 시절, 오히려 가장 처절한 운명을 예감했고, 이를 교향곡 6번 '비극적'에 담았다. 그 비극은 거대한 나무망치의 '운명의 타격’으로 모습을 드러낸다.지난 19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서울시립교향악단의 말러 교향곡 6번 공연은 이 비극의 서사를 정면으로 밀어붙인 무대였다. 검은색 의상으로 등장한 얍 판 츠베덴 서울시향 음악감독은 절도 있는 지휘로 거대한 서사를 단단하게 쌓아 올렸다. 말러 교향곡 6번은 그의 작품 가..

2026.03.20 15:42:18

양인모 카덴차로 이끈 베토벤 유일의 바이올린 협주곡 [객석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는 자신만의카덴차로 베토벤을 밀고 나갔다. 화려함에 머물지 않고, 구조와 호흡까지 설계된 해석이었다. 지난 17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양인모 &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오케스트라'에서 양인모는 국내 무대 처음으로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했다. 지휘는 2024년부터 악단을 이끌고 있는 로베르트 곤잘레스-몬하스가 맡았다.이 곡은 베토벤이 남긴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이자, 장르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모차르트 협주곡의 형식을 계승한 만큼, 모차르트 해석에 강점을 지닌 악..

2026.03.18 15:16:16

"안녕, 나의 아름다운 미완성"…과거와 마주선 지춘성의 '삼매경' [객석에서]

초로의 배우가 젊은 날의 자신과 다시 마주 선다."난 네가 되지 못했던 것 같아…난 실패한 거야." 30년이 넘는 세월 자신을 괴롭혀온 미완의 연기에 대한 후회가 무대 위로 되살아난다. 몇십 년째 같은 이야기냐는 핀잔에도 그는 그 기억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연극 '삼매경'은 1939년 초연한 함세덕의 희곡 '동승'을 이철희 연출이 재창작한 작품이다. 지난해 한국연극평론가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연극 베스트3'에 이름을 올렸다. 원작 '동승'이 자신을 두고 떠난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동자승의 이야..

2026.03.17 16:55:33

어둠에서 빛으로…정명훈·KBS교향악단이 그린 말러 5번 [객석에서]

장송 행진으로 문을 열고 사랑의 서정으로 나아가는 말러의 여정이 무대에 펼쳐졌다. KBS교향악단은 13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마스터즈 시리즈 I’에서 정명훈의 지휘로 말러의 가곡과 교향곡 5번을 연주했다. 1부에서5번 이전 시기 가곡으로 특유의 정서를 먼저 들려준 뒤, 5번으로 이어지는 구성은 말러 음악의 변천을 자연스럽게 펼쳐보였다.이번 공연은 정명훈이 KBS교향악단 제10대 음악감독으로 선임된 이후 첫 말러를 선보이는 자리였다. 정명훈은 지난해 말러 1번(3월)과 2번(2월) 등 오케..

2026.03.14 14:32:56

아흔의 신구, 웃음 속 욕망을 비추다…연극 '불란서 금고'[객석에서]

"북벽 장춘이라고 했다." 막이 오르면 은행 지하 금고 앞에 모인 다섯 인물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 중 맹인이 우화를 들려준다. "깎아내린 듯 가파른 절벽, 가장 높은 봉우리가 북벽이었고 그 위에 오른 자가 모든 걸 가져갔다. 북벽에 오르면 아래 세상이 훤히 보였고, 구름도 발아래 있으니 두려울 것이 없었지." 북벽은 곧 인간이 끝내 오르고 싶어하는 욕망의 꼭대기다. 어느 은행 지하 비밀 금고를 털기위해 한밤중에 모여든 인물들의 출발점이다. 지난 7일 개막한 '불란서 금고-북벽에 오를 자 누구더냐'는..

2026.03.12 17:25:42

신예 김서현·거장 뮐러 쇼트…브람스로 나눈 깊은 음악 대화 [객석에서]

신예와 거장이 만났을 때, 무대는 단순한 협연을 넘어 한 편의 대화가 된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서현과 첼리스트 다니엘 뮐러 쇼트가 서울 무대에서 보여준 브람스는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지난 11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쾰른 방송(WDR)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에서 김서현과 쇼트가 협연자로 나섰다. 포디움에는 라트비아 출신 지휘자 안드리스 포가가 올라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다. 2008년생 김서현은 2023년 스위스 티보르 바르가 국제 콩쿠르에서 당시 14세의 나이로 최연소 우승을 차지하며 주목받은 연주자다. ..

2026.03.12 14:17:58

"어리석은 칼잡이의 말로"…웃음과 광기 뒤엉킨 연극 '칼로막베스'[객석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 칼을 들었지만, 결국 그 칼끝은 자신을 향한다. 연극 '칼로막베스'는 권력을 향한 욕망이 어떻게 파국으로 이어지는지를 코믹하면서도 서늘하게 풀어낸다. 웃음과 광기가 뒤엉킨 무대는 관객을 정신없이 몰아붙이면서도, 결국 인간 욕망의 비극을 또렷하게 드러낸다. 지난달 27일 개막한 '칼로막베스는' 셰익스피어의 '맥베드'를 고선웅 연출이 액션 무협활극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극단 마방진이 창단 20주년을 맞아 펼치는 연극 퍼레이드의 첫 번째 작품으로, 초연 이후 16년 만에 다시 관객을 만나..

2026.03.04 16:25:17

금기를 넘은 사랑의 대가…뮤지컬 '안나 카레니나' [객석에서]

눈보라가 휘날리는 기차역. 연인은 서로를 향해 다가서고, 애틋하고 애절한 눈빛은 어딘가 위태로워 보인다.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는 치명적인 사랑이 감당해야 할 균열과 파멸을 응시한다. 지난달 20일 개막한 '안나 카레니나'는 19세기 후반 러시아 귀족 사회를 배경으로 사랑과 결혼, 가족 문제를 다룬 톨스토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겉보기에 완벽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던 안나는 젊은 장교 브론스키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남편과 아들을 뒤로하고 선택한 사랑. 그러나 사회는 냉혹했고, 브론스키의 성공과 달..

2026.03.01 10:00:00

더 화려하게, 더 애틋하게…뮤지컬 '은밀하게 위대하게' [객석에서]

시작부터 화려한 액션이 눈을 사로잡는다. 강렬한 퍼포먼스로 문을 연 이야기는 이내 웃음을 거쳐 묵직한 드라마로 나아간다. 웃음과 비극, 첩보와 청춘이 뒤섞인 액션 뮤지컬의 매력이 한층 선명해졌다. 액션 뮤지컬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보다 업그레이드된 퍼포먼스로 돌아왔다. 지난달 30일 개막한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HUN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2013년 영화로도 제작돼 700만 관객을 동원하며 대중성을 입증했다. 작품은 북한 남파 특수공작 5446 부대의 엘리트 요원 원류환, 리해랑, 리해진이..

2026.02.22 10:00:00

길고 어두운 밤을 지나는 이들에게…뮤지컬 '긴긴밤'[객석에서]

"길고 긴 밤 보내고 나면 길고 긴 밤 또 찾아오겠지. 살아남는 건 너무 힘들지만 포기할 수 없어. 너를 바다에 데려갈 날까지"(넘버 '살아남는 건') 지구상 마지막 남은 흰바위코뿔소 노든과 버려진 알에서 태어난 어린 펭귄은 서로를 의지하며 끝없이 걷는다. 아직 한 번도 본 적 없는 푸른 지평선을 찾아서. 루리 작가의 동명 동화를 무대로 옮긴 뮤지컬 '긴긴밤'은 바다로 가는 여정을 통해 상실 이후에도 계속되는 삶의 의미를 묻는다.이야기는 펭귄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나는 펭귄이다. 나는 이름이 없..

2026.02.16 14:00:00

루간스키, 서울시향과 7년 만의 재회…서정을 빚어내다 [객석에서]

'러시아 피아니즘의 상징' 니콜라이 루간스키(54)가 7년 만에 다시 만난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함께 보다 서정적인 쇼팽을 들려줬다. 2019년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에서 폭발적 에너지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면, 이번에는 피아노 본연의 음색과 섬세함에 무게를 뒀다. 지난 12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2026 서울시향 니콜라이 루간스키의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무대 포디움에는 '음향의 마술사'로 불리는 프랑스 출신 지휘자 뤼도비크 모를로가 섰다. 루간스키과 악단이 택한 곡은 쇼핑이 스무 살 무렵 작곡..

2026.02.14 1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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