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에서

활 끝에서 피어난 빛…양인모, 소리를 '보게' 만들다 [객석에서]

바이올린의 선율과 빛이 만나면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와 미디어아트 그룹 김치앤칩스는 쉽게 떠올리기 어려운 이 질문을 하나의 공연으로 구현했다. 빛은 단순한 무대장치를 넘어 음악과 공간을 새롭게 인식하게 하는 또 하나의 악기가 됐다.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 GS아트센터에서 열린 '양인모 X 김치앤칩스' 공연에서 두 아티스트는 클래식 공연의 문법을 뒤집는 무대를 선보였다. 선율과 빛의 조우를 통해 익숙한 공연장을 새로운 감각의 공간으로 재해석했다. 암전된 무대 위에는 단상 하나와 루프 ..

2026.07.02 08:00:00

칼 대신 춤을 택한 세자…예악정치 그린 창극 '효명' [객석에서]

"춤은 내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담은 나의 기록이다. 내 영혼이 가장 자유로워지는 순간이다. 춤을 추면 어디든 갈 수 있고 어떤 꽃이든 피울 수 있다. 나를 비난하는 사람을 품을 수 있고 아부하는 사람도 안을 수 있다." 23일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개막한 국립창극단 '효명'에서 이 대사는 단순한 예술가의 독백으로 머물지 않는다. 세도정치로 왕권이 흔들리던 시대, 춤과 예악으로 질서를 바로 세우려 했던 효명세자의 정치적 고민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사도세자의 증손자인 ..

2026.06.27 09:34:43

위대한 작곡가의 초상 뒤에 숨겨진 한 인간…뮤지컬 '베토벤' [객석에서]

"뭔가 잘못됐어 내 숨이 멈춘 것 같아 답답하고 먹먹한 소음뿐…나의 음악을 내 삶의 이유를 빼앗길 수 없어."(넘버 '뭔가 잘못됐어' 중)재연으로 돌아온 뮤지컬 '베토벤'은 초연에서 중심축을 이뤘던 사랑 서사를 걷어내고, 청력을 잃어가는 예술가의 고독과 집념에 집중한다.청력을 잃어가는 루드비히 반 베토벤은 "이 지독한 꿈에서 깨어나게 해달라"며 절규한다. 삶의 이유이자 전부인 음악을 빼앗길 수 없다는 외침은 위대한 작곡가가 아닌 두려움과 불안에 흔들리는 한 인간의 모습이다. 지난 9일 개막한 '베토벤'은 청..

2026.06.25 09:00:00

혐오의 합창, 한 인간을 무너뜨리다…오페라 '피터 그라임스' [객석에서]

한 인간을 향한 공동체의 의심은 어디까지 정당할 수 있을까. 집단의 시선은 언제부터 개인에게 폭력이 되는가.한 개인을 둘러싼 공동체의 집단 폭력은 한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린다. 사건의 진실 여부보다 편견과 혐오가 앞서고, 누군가를 향한 멸시와 비하가 일상의 재미처럼 소비된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과 조작된 여론이 한 사람을 파괴하는 모습은 오늘날에도 낯설지 않다. 영국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1913~1976)의 오페라 '피터 그라임스'는 마녀사냥의 타깃이 된 한 인물의 비극적인 서사를 그린다. 작품은 영국 시..

2026.06.20 13:00:00

사직의 질서, 종묘의 생동…예악으로 읽는 조선의 통치 [객석에서]

"드오!" 음악의 시작을 알리는 집사악사의 외침에 이어 축(祝)이 세 차례 울리자 피리와 대금, 거문고와 가야금 등 향악기가 일제히 소리를 냈다. 붉은 관복을 입은 무용수 64명은 가로세로 8명씩 정연하게 늘어서 일무(佾舞)를 선보였다. 앞줄은 목검을, 뒷줄은 목창을 들고 무무(武舞)를 추며 조상들의 공덕을 기렸다. 12일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열린 국립국악원 대표공연 '종묘·사직 - 왕의 제단, 백성의 땅'은 조선의 국가 제례 음악인 종묘제례악과 사직제례악을 한 무대에서 비교해 볼 수 있는 자리였다. ..

2026.06.15 14:08:04

몸으로 펼쳐낸 수묵화, 미디어아트로 피어난 도원경…국립무용단 '몽유도원무'[객석에서]

무대 위 화폭처럼 드리운 천막에 노란 조명이 스며든다. 그 너머로 어른거리는 무용수들의 실루엣은 꿈틀거리며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마치 젖은 화선지 위로 번져나가는 먹물 같다. 스크린 위로 투사된 먹물 질감의 미디어아트와 무용수들의 몸짓이 만들어낸 입체적인 수묵화가 무대 위에서 완벽하게 오버랩된다.11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국립무용단의 '몽유도원무' 프레스콜이 열렸다. 2022년 초연 당시 "전통과 현대의 만남을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호평을 받았던 이 작품은 2024년 재연에 이어 올해 세 번째 ..

2026.06.11 21:21:34

"도망가지 말고, 살아가요"…체호프의 한국적 변주 '반야 아재'[객석에서]

"나도 한땐 재능 있고 의욕이 넘쳤는데. 제대로만 했다면, 만해 한용운만큼은 했을 텐데…."'바냐 아저씨'가 아니라 '반야 아재'다. 러시아의 대문호 안톤 체호프의 고전이 130여 년을 지나 한국에서 새로 태어났다. 지난 22일 개막한 국립극단의 연극 '반야 아재'는 체호프의 대표작을 1930년대 말 일제강점기의 조선으로 옮긴 작품이다. 조광화 연출은 원작의 이야기를 일제강점기라는 배경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내 인물들의 욕망과 좌절을 풀어 놓는다. 원작의 '바냐'의 이름은 이번 무대에서 박이보로 바뀌었다. 그..

2026.05.23 21:10:12

토슈즈 벗고 대나무 숲으로…비움의 미학'인 더 뱀부 포레스트' [객석에서]

높이 솟아오른 대나무 숲. 그 앞에 서 있던 한 여성 무용수가 강인함의 상징인 토슈즈를 벗어 떨어뜨리더니, 숨을 깊게 내쉰다. 잇따라 숨을 뱉어내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느리지만 유려하게 흘러간다. 이들의 무거운 호흡 위로 거문고 줄을 튕기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극장을 휘감던 긴장감을 차분하게 덜어낸다.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서울시발레단의 창작발레 신작 '인더 뱀부 포레스트(In the bamboo forest)' 프레스콜이 열렸다. 토슈즈를 신고 화려한 기교로 파드되(2인무)를 추던 발레리..

2026.05.15 12:46:37

이서진의 냉소적 바냐, 고아성의 단단한 소냐…연극 '바냐 삼촌'[객석에서]

"너무 억울해서 밤에 잠도 안 와. 밤새 침대에서 천장을 보면서 내가 그 모든 시간을, 기회를 흘려보냈구나 생각하면 잠을 못 잔다고!"삶을 돌아보는 바냐의 푸념 섞인 절규에는 후회와 미련이 뒤섞여 있다. 연극 '바냐 삼촌'은 그렇게 평범한 인물들이 겪는 상실과 욕망, 후회와 좌절 그럼에도 '계속 살아가야 하는' 삶의 아이러니를 무대 위에 펼쳐놓는다. 지난 7일 개막한 '바냐 삼촌'은 LG아트센터가 2024년 '벚꽃동산', 2025년 '헤다 가블러'에 선보이는 세 번째 제작 연극 시리즈다. 양손프로젝트의 손상..

2026.05.11 15:05:32

임윤찬, 익숙함 대신 '오래 남을' 음악을 택하다 [객석에서]

피아니스트 임윤찬(22)이 2년 만의 국내 리사이틀에서 익숙한 선택 대신 자신이 오래 붙들고 싶은 음악을 꺼내 들었다. 당초 브람스와 슈만으로 구성했던 프로그램을 전면 교체, 슈베르트와 스크랴빈으로 무대를 채웠다. 공연에 앞서 그는 "시간의 흐름을 견디며 오래 기억에 남을 작업을 하고 싶다. 내 안에 숨 쉬고 있는, 지금 내 마음에 있는 곡"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번 리사이틀은 익숙한 명곡의 재현보다 지금 자신이 탐구하고 있는 음악을 밀도 있게 풀어낸 무대였다.6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가진 리사이틀에서 임윤찬이..

2026.05.07 10:24:22

조성진이 빚은 청년 베토벤…샤니 시대 앞둔 뮌헨필과의 재회 [객석에서]

오는 9월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차기 상임지휘자로 취임하는 라하브 샤니에게 이번 내한 공연은 새로운 시작을 미리 선보이는 무대였다. 3년 만에 한국을 찾은 뮌헨필의 일곱 번째 내한 공연에는 조성진이 함께했다. 샤니는 아시아 투어의 대만과 한국 공연 모두 조성진을 협연자로 택했고, 앞서 2022년 객원지휘자로 뮌헨필과 호흡을 맞췄을 당시에도 조성진과 무대에 선 바 있다. 상임지휘자 취임을 앞둔 시점에서 다시 이어진 이 조합은 앞으로의 뱡향을 보여주는 장면처럼 읽혔다. 지난 5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2026.05.06 16:06:27

전통 위에 얹은 현대적 유머와 기예, 살아있는 유희로 되살아난 '광대' [객석에서]

오방신과 백년광대들이 무대 위에 등장하자, 단원들이 혼비백산 흩어지고 순백은 기절한다. "뽀뽀 하지마!" 악몽을 꾼 듯 기겁하며 눈을 뜬 예술단장 순백의 모습에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온다.국립정동극장 예술단의 2026년 정기공연 '광대'가 무대에서 펼쳐졌다. 1902년 협률사의 '소춘대유희'(笑春臺遊戲)를 복원하는 리허설 중 정전이 발생하며 과거의 광대들이 쏟아져 나온다는 설정이다.조선시대 광대는 판소리, 춤, 곡예, 재담을 상황에 맞춰 즉각적으로 만들어내는 전천후 연희자였다. 124년 전 광대의 공연이 세대와 신분..

2026.05.01 13:00:00

박종원이 다시 읽은 '베르테르'…선율·몸짓으로 되살린 사랑 [객석에서]

국립오페라단의 올해 첫 작품 '베르테르'는 익숙한 비극을 오늘의 감정으로 다시 읽어낸 무대다. 이룰 수 없는 사랑에 사로잡힌 한 남자의 파멸이라는 서사는 그대로 두되 연출과 음악, 몸짓의 언어를 더해 사랑이라는 감정의 결을 새롭게 드러낸다.눈길을 끄는 것은 영화감독 박종원의 첫 오페라 연출이다. '구로아리랑',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을 연출한 그는 무대를 제한된 공간에 머물게 두지 않았다. 마스네의 악보를 영화의 콘티처럼 읽어내며 장면의 전환, 시선의 이동, 인물 간 거리감을 입체적으로 구성했다. 제한된 무..

2026.04.25 15:00:00

힘 빼자 폭발한 관능…베자르 제단 위 타오른 김기민의 '볼레로' [객석에서]

어둠 속에서 볼레로 선율이 흐르자 무용수 김기민이 손으로 반원을 그리며 붉은 원형 테이블 위에 올랐다. 반복되는 리듬에 맞춰 하체는 탄력 있게 튕겨 오르고, 상체는 유연하게 흐른다. 절제된 몸짓은 오히려 더 짙은 관능과 에너지를 만들어낸다.23일 서울 강남구 GS아트센터에서 열린 '베자르 발레 로잔(BBL) with 김기민' 프로그램 A의 피날레 '볼레로'에서 김기민은 주역 멜로디로 무대의 중심을 장악했다. 음악과 춤이 분리되지 않은 채 하나로 맞물리며, 그는 자신만의 '멜로디'를 빚어냈다.모리스 라벨의 동명 음악..

2026.04.25 10:00:00

김대진, 차이콥스키의 '음표로 쓴 유서'를 무겁게 읽다 [객석에서]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은 초연 당시만 해도 마지막 악장의 침잠하는 결말 탓에 낯선 작품으로 받아들여졌다. 이후 '비창(Pathétique)'이라는 제목과 함께 비극적 서사가 더해지며 그의 대표작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 2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김대진은 작품의 어둡고 무거운 정서를 밀도 있게 되살렸다. 이날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2025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 - KBS교향악단' 공연은 전(全) 프로그램이 차이콥스키(1840~1893)의 작품으로 구성돼 작곡가 작품세계 전반을 조명했다.한국예술종합..

2026.04.23 16:28:59

거장의 경청, 샛별의 질주…정명훈과 김세현의 차이콥스키 [객석에서]

54년의 세월의 격차는 음악 앞에서 무색했다.클래식 샛별 피아니스트 김세현(19)과 거장 지휘자 정명훈(73)은 세대를 뛰어넘는 호흡으로 하나의 음악을 완성했다.지난 12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정명훈 & 원 코리아 오케스트라' 무대에서 정명훈은 김세현의 연주를 세심하게 받쳐주었고, 김세현은 10대 연주자 특유의 패기와 집중력으로 화답했다.이들이 협연한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정명훈이 젊은 연주자들과 자주 호흡을 맞춰온 대표 레퍼토리다. 과거 조성진과도 여러 차례 협연한 바 있어, 이날 ..

2026.04.13 15:11:05

백조 군무 황홀함과 흑조 유혹 사이에서…'백조의호수'[객석에서]

달빛 아래 무대 위를 수놓은 청초한 백조들의 군무는 황홀경 그 자체다. 24명 무용수들의 정교한 호흡과 우아한 몸짓은 단숨에 객석을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의 세계로 바꿔놓았다. 7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개막한 국립발레단의 '백조의 호수'는 고전 발레의 정수가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줬다. 작품의 서막을 여는 궁전의 성대한 연회 장면이 지나고, 배경이 숲속 호숫가로 전환되는 순간 무대는 낭만주의 발레의 절정을 향해 달린다. 차이콥스키의 유려한 선율 위로 쏟아지는 백조들의 날갯짓은 단순한 움직임이 아니다...

2026.04.09 15:53:47

정교함과 생동감의 균형…블레하츠와 VFCO의 베토벤 [객석에서]

피아노의 트릴(2도 차이 음을 빠르게 전환하는 연주법)이 귀를 간지럽힌다. 군더더기 없는 정제된 선율은 공연장을 맑게 채웠고, 객석은 숨을 죽인 채 그 흐름을 따라갔다. 지난 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2026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 - 베르비에 페스티벌 체임버 오케스트라(VFCO)' 무대는 악단과 피아노가 서로 밀고 당기며 협주의 본질을 드러낸 시간이었다. 반주와 독주의 구분을 넘어, 서로 호흡하고 반응하는 유기적인 대화가 이어졌다.2005년 창단한 VFCO는 스위스 베르비에 페스티벌을 대표하는 악단이..

2026.04.08 14:00:39

사랑과 예술로 살아낸, 너무나 뜨거웠던 그 여자…뮤지컬 '렘피카' [객석에서]

"살면서 목숨보다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나요? 난 두 사람이나 있었어요. 재수가 좋았죠. 그런데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했지 뭐예요? 재수도 더럽게 없지." 캔버스 앞에 앉은 노인의 독백으로 막이 오른다. 한 시대를 휘어잡았던, '붓을 든 별난 여자'의 이야기가 무대 위에 올랐다. 지난달 21일 개막한 뮤지컬 '렘피카'는 실존 화가 타마라 드 렘피카의 삶과 예술, 그리고 사랑을 무대 위에서 강렬하게 펼쳐보인다. 20세기 초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한 렘피카는 아르데코 양식의 초상화로 시대를 풍미한 화가다. 날카로운..

2026.04.05 14:00:00

츠베덴이 빚은 '거대한 낭만'…서울시향 브루크너 4번 [객석에서]

호른이 정적을 조심스레 깨고, 플루트와 클라리넷, 오보에가 그 흐름을 이어받다. 이어 현악이 선율을 또렷하게 쌓아올리며 찬찬한 일출의 순간을 펼쳐냈다. 지난 2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서울시립교향악단 정기공연에서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은 금관의 웅장한 울림과 현악의 섬세한 셈여림을 정교하게 조율하며 브루크너의 거대한 낭만을 구현했다. 서울시향이 지난 1월 스위스 지휘자 필리프 조르당과 브루크너의 교향곡 제1번을 선보였다면, 이번에는 츠베덴과 교향곡 4번 '낭만적'을 무대에 올리며 브루크너 탐구를 이어갔..

2026.04.03 15: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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