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에세이

멈추면, 보인다…구자승의 살아있는 정물[박현주 아트에세이 ③]

자두가 빛을 머금은 채 멈춰 있다. 파란 병, 흰 도자기, 나무 박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눈을 뗄 수가 없다. 시간이 멈추는 순간,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빠르게 지나치면 볼 수 없는 색의 떨림, 공기의 결, 작가의 숨. 구자승의 정물은 ‘멈춤의 예술’이다.그의 붓은 단순한 재현을 넘어선다. 사물의 표면을 그리면서도, 그 안의 빛과 그림자. 질감 속에 숨어 있는 시간의 결을 담는다. 썩지 않는 과일, 식지 않는 유리잔의 냉기. 그것은 사라진 생명 대신 남은 온기다.“유한한 오브제..

2025.11.08 01:01:00

차경(借景), 마음이 창이 되는 순간[박현주 아트에세이 ②]

가을의 희원(熙園)은 빛을 잘 안다. 호암미술관 언덕 아래, 루이즈 부르주아 전시로 가득 찬 미술관 뒤편에 조용히 숨 쉬는 정원이 있다. 빛이 머무는 법을, 그리고 물러나는 법을 아는 곳. 햇살은 격자문 사이로 고요히 흘러내리고, 단풍은 스스로 제 색을 찾아 들어온다. 그곳에서는 누군가 풍경을 만들지 않는다.세상이 스스로 걸어 들어올 뿐이다. 나무 한 그루, 기둥 하나, 창살 사이의 틈새까지 모든 것이 프레임이 되고, 그림이 된다. 그림을 그린 이는 없지만 풍경은 언제나 완성돼..

2025.11.03 01:01:00

빨간 새와 함께, 노은님의 빛 [박현주 아트에세이 ①]

빨간 새가 사람을 감싸 안고 있다.새의 몸이 사람의 몸처럼 보이고, 사람의 어깨가 새의 날개처럼 번진다.둘의 경계는 흐려지고, 색은 서로를 품는다.빨강과 검정이 섞이는 그 자리에서, 노은님의 세계가 태어난다.1970년 독일로 건너간 노은님(1946~2022)은 평생 그렇게 ‘경계 없는 삶’을 그려왔다.스물세 살 파독 간호보조원으로 시작한 그의 인생은 붓을 잡는 순간 달라졌다. 병원 회의실에서 우연히 열린 한 번의 개인전이, 함부르크 국립조형예술대의 문을 열었다. 백남준과 ..

2025.11.01 01: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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