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에세이

사랑받고 싶은 우리 자화상…김원근의 조각 [박현주 아트에세이 ㉘]

험상궂은 얼굴이다.굵은 눈썹. 날카로운 눈빛. 꽃무늬 셔츠에 굵은 금목걸이.처음엔 조폭 같다고 했다. 흉물스럽다는 말도 들었다.그런데 오래 바라보면 표정이 달라진다.위협하는 얼굴이 아니다.어딘가 쓸쓸하고, 조금은 무심하고, 오래 기다린 사람 같다.김원근의 조각은 첫인상과 끝인상이 다르다.가까이 다가갈수록 거칠음은 사라지고, 사람만 남는다.그의 조각은 성자가 아니라 우리다.조각가 김원근도 그랬다.돌공장에서 일했고, 가구를 배달했..

2026.07.11 00:01:00

환각을 그리는 사람…화가 이근민 [박현주 아트에세이 ㉗]

우리는 병을 고치려 한다.이름을 붙이고, 진단하고, 정상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하지만 모든 병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어떤 상처는 몸보다 마음에 오래 남고,어떤 기억은 눈을 감아도 끝내 지워지지 않는다.화가 이근민은 환각을 보았다.피와 살, 장기와 근육, 형태를 잃은 몸들.세상은 그것을 병이라 불렀다.그는 그것을 그림으로 옮겼다.환각은 숨겨야 할 증상이 아니라, 그려야 할 언어가 되었다.붉은 화면은 낯설다. 아프다. 불편하..

2026.07.04 00:01:00

깨달음은 앉아 있는가, 걸어가는가 [박현주 아트에세이 ㉖]

그는 생각을 마친 사람처럼 걸어간다.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어메이징 타일랜드'에서 만난 수코타이 시대의 '걷는 부처'다.오른발을 살짝 들어 올린 자세는 멈춤과 이동 사이, 그 찰나의 시간을 붙잡고 있다.옷자락은 바람을 머금은 듯 몸을 따라 흐른다.청동으로 만들었는데도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마치 지금 막 어디론가 향해 가는 사람 같다.우리는 부처를 생각하는 존재로 기억한다.국립중앙박물관의 반가사유상처럼.한쪽 다리를 올리고 턱을 괸 채 침묵 속에 앉아 있는 모습. ..

2026.06.27 00:01:00

호크니는 왜 수영장을 그렸을까 [박현주 아트에세이 ㉕]

1964년, 영국 청년 데이비드 호크니는 로스앤젤레스로 갔다.비와 안개, 회색 하늘에 익숙했던 그에게 캘리포니아의 햇빛은 거의 충격에 가까웠다.하늘은 파랬고, 야자수는 높았으며, 수영장은 어디에나 있었다.그리고 그때부터 그는 평생 물을 그리기 시작했다.이상한 일이다.수영장은 사각형이다.집도 사각형이다.야자수도 가만히 서 있다.그런데 물만 움직인다.물은 형태가 없다.빛에 따라 달라지고, 바람에 따라 흔들리고, 사람이 뛰어들면 산산이 부서진다.호크..

2026.06.20 00:01:00

색은 멈추지 않는다…다시 열린 이두식의 '축제' [박현주 아트에세이 ㉔]

죽음 이후에도, 색은 멈추지 않는다. 붉은색이 먼저 터진다. 그 위로 초록이 얹히고, 노랑이 번진다. 검은 선들이 지나가며 화면을 붙잡는다. 형태는 없다. 그런데 멈추지 않는다. 쏟아진다.이두식의 그림은 늘 그랬다. 무언가 끝난 자리 같고,막 시작된 장면 같기도 한 곳. 그 정리되지 않은 생명력,그래서 축제다.오방색은 한 번 터지고 나면캔버스 안에 갇히지 않는다. 보는 순간마다 다시 흔들리고, 다시 번지고, 다시 살아난다. 그의 축제는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현재형의 감각이다..

2026.04.18 01:01:00

사랑을 알아 참 다행이다[박현주 아트에세이 ㉓]

지리산 화엄사. 그는 그곳에서 마음을 다루는 법을 배웠다. 중학교 1학년, 아무 설명 없이 절에 맡겨진 아이. 아버지는 말했다. “정원씨, 잘 지내요.” 한 달을 울었다. 버려졌다고 믿었다. 그의 출가는 두 번이었다. 몸으로 한 번, 그리고 마음으로 한 번. 스물여덟. “그때 마음이 출가했습니다.” 울음이 많던 소년이 꽃스님이 되었다.용서는 상대를 향한 행위가 아니다. 나를 묶고 있던 마음을 풀어주는 일이다. 용서하지 않는 동안 우리는 상대가 아니라 미움 속에 갇힌 자기 자신과 함..

2026.04.11 01:01:00

시간을 견디는 몸…김상유, 무해한 힘[박현주 아트에세이 ㉒]

누각 위에 사람이 앉아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 쉽게 다가갈 수 없다. 김상유의 그림은 늘 이 거리에서 시작된다. 초록은 비현실적으로 맑고 건물은 단단하게 고정돼 있다. 그 안에 앉은 사람은 움직일 생각이 없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장면.1990년작 '대산루'. 경북 상주의 누각이다. 2층 구조의 건물 위, 그는 한 사람을 앉혀놓는다. 움직이지 않는 사람. 말하지 않는 사람. 그러나 가장 멀리 가 있는 사람. 이 연작은 한때 조용히 잊혀졌다. 그러나 시간이 흐..

2026.04.04 11:08:44

역사는 체험된다…서용선의 ‘단종’ [박현주 아트에세이 ㉑]

빠른 물살에 떠내려가는 몸. 얼굴은 사라지고, 손만 남는다. 그리고 그 곁으로 거침없이 헤엄치는 한 사람. 단종의 시신을 거두는 자, 엄흥도. 권력은 죽은 몸을 버리지만 인간은 끝내 그것을 외면하지 않는다. “여기 강물에 단종이 빠져 죽었다는군.” 1986년 여름, 영월 서강. 강물은 조용히 흐르고 있었고, 그 위로 한 소년의 몸이 가라앉고 있었다. 왕이었으나 아무것도 지킬 수 없었던 존재. 그날, 화가 서용선의 내부에서는 하나의 이미지가 태어났다. 드로잉은 빠르다. 생각보다 먼저 ..

2026.03.28 01:01:00

찬란한 허무함…데이미언 허스트 '다이아몬드 해골’ [박현주 아트에세이 ⑳]

죽음은 이렇게까지 아름다워질 수 있는가.이건 신의 사랑인가, 인간의 집착인가.유리 케이스 안, 해골 하나가 빛난다. 백금 위에 촘촘히 박힌 다이아몬드가 빛을 쪼갠다. 눈은 그 반짝임에 붙들린다. 잠시, 우리는 그것을 보석처럼 바라본다.그러나 오래 보면 이내 알게 된다. 그 안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이 해골은 죽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덮는다. 반짝임은 공포를 가리고, 가격은 질문을 밀어낸다.죽음은 더 이상 사유가 아니라 전시되는 이미지가 된다.우리는 그것을 소..

2026.03.21 01:01:00

봄은 꽃이 아니라 사랑이다 [박현주 아트에세이 ⑲]

꽃이 먼저 피는 것은 아니다. 사랑이 먼저 피어난다.마르크 샤갈의 그림을 보면 그렇다.국내 미술품 경매 최고가를 기록한 샤갈의 ‘꽃다발’(94억)도 그렇다.푸른 화면. 흐드러진 꽃다발. 그리고 공중에 떠 있는 연인.꽃은 아래에서 피고 사랑은 그 위로 올라간다.샤갈이 평생 사랑한 여인, 벨라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그는 이렇게 썼다. “그녀의 눈동자를 처음 본 순간 내 삶의 모든 색이 달라졌다.”샤갈의 그림에서 연인들이 공중에 떠 있는 이유도 어쩌면 그 사랑..

2026.03.14 01:01:00

봄은 달력으로 오지 않는다 [박현주 아트에세이 ⑱]

봄은 달력으로 오지 않는다.어느 날 문득 나무 한 그루가 먼저 알아차린다.아직 바람은 차갑고 사람들은 코트를 벗지 못했지만 가지 끝에서는 이미 꽃이 열린다.빈센트 반 고흐의 ‘꽃피는 아몬드나무’는 바로 그 순간의 그림이다.짙은 파란 하늘 아래 메마른 가지들이 가볍게 뻗어 있고 그 위에 흰 꽃들이 조용히 피어 있다.잎도 나지 않은 가지. 겨울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는 나무.그러나 그 위에서 생명은 이미 시작되었다.1890년 2월 고흐의 동생 테오에게 아들이 태어..

2026.03.07 00:01:00

존재는 마찰에서 생긴다…엄정순, ‘보푸라기 회화’[박현주 아트에세이 ⑰]

보푸라기는 마찰의 흔적이다.옷감이 닳을 때 생겨나는 작은 덩어리. 정돈된 표면에서 밀려난 잔여물. 그러나 그것은 결함이 아니다. 어딘가와 맞닿았다는 증거다.마찰이 없으면 보푸라기도 없다. 스침이 없으면 흔적도 없다. 완벽하게 매끈한 표면은 아직 아무것도 만나지 않은 상태일지도 모른다.마찰은 관계를 만든다. 관계는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흔적은 존재를 드러낸다.우리는 스스로를 하나의 중심, 단단한 덩어리로 믿지만 실은 끊임없이 닳고 긁히며 생성되는 느슨한 표면에 가깝다...

2026.02.28 01:01:00

AI 시대, 나는 누구인가…권순철 ‘얼굴’· ‘넋’ [박현주 아트에세이 ⑯]

우리는 지금 얼굴을 쉽게 고친다. 주름은 지워지고, 표정은 합성된다. AI는 더 나은 버전의 나를 몇 초 만에 만들어낸다.매끈한 이미지가 넘쳐난다. 진짜와 가짜의 경계는 흐려진다.그럴수록 권순철의 화면은 거칠다.물감은 두껍게 쌓이고, 다시 긁히며 균열을 드러낸다. 형상은 해체되고, 얼굴은 무너진다.그의 신작 ‘넋’에서 남아 있는 것은 인물이 아니다. 물감의 덩어리, 존재의 잔존, 시간이 눌러 만든 압력이다.두터운 마티에르는 살처럼 들러붙고, 덧칠의 흔적은 신체의 움직..

2026.02.14 01:01:00

이것은 얼굴인가, 도끼인가…최종태 ‘Face’ [박현주 아트에세이 ⑮]

도끼처럼 생긴 얼굴 앞에 섰다. 사람의 얼굴이라 부르기엔 납작하고, 조각이라 말하기엔 지나치게 침묵했다.날은 가로로 뻗고 목은 가늘게 떨어진다. 베기 위해 태어난 형상 같지만 이 얼굴은 아무것도 베지 않는다. 다만 서 있을 뿐이다.이것은 얼굴인가, 도구인가. 인간인가, 시대의 잔해인가. 질문은 끝내 답을 얻지 못한다. 이 얼굴은 설명을 거부하고 침묵을 선택한다.구순을 넘긴 최종태는 이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조각이란, 모르는 것이다.”설명은 거기서 멈춘다. ..

2026.02.07 01:01:00

“권력은 결국 무늬에 불과하다"…까치도와 더피, 호피[박현주 아트에세이 ⑭]

민화는 조선의 ‘전통 회화’가 아니다. 민중이 세계를 이해하고, 웃고, 비틀고, 끝내 살아내기 위해 만들어낸 가장 즉흥적이고 대담한 시각 언어였다.까치호랑이에서 권력은 무너진다.정확히 말하면, 웃음 속으로 미끄러진다.왕의 상징이던 호랑이는더 이상 위에서 내려다보지 않는다.웅크린 몸, 둥근 눈, 어딘가 어색한 비례.위엄 대신 당황이 있고, 공포 대신 망설임이 있다.그 앞에서 까치는 울어댄다.작고 가벼운 존재가,가장 큰 존재를 향해 먼저 소리를 낸다. 이 장면은 ..

2026.01.31 01:01:00

'세필'이라는 노동, 김홍주 수행 미학 [박현주 아트에세이 ⑬]

수만 번의 선. 빠르지 않다. 서두르지도 않는다.김홍주의 회화 앞에 서면 나는 오래된 질문을 되뇐다.그림은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혹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아도 되는가.가까이 다가가면 화면은 해체된다.연필과 볼펜, 아크릴 물감. 수천 개의 선이 겹치고 스치며 질감이 된다.한 발짝 물러서면 선들은 하나의 덩어리로 응결된다.의미를 읽기 전에 감각이 먼저 도착한다.김홍주는 말한다. 자신은 그림에 명확한 메시지를 담지 않는다고.그러나 그의 화면에는 설명 ..

2026.01.24 01: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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