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뉴스에서도 뉴시스 언론사 픽

역사는 체험된다…서용선의 ‘단종’ [박현주 아트에세이 ㉑]

등록 2026/03/28 01:01:00

수정 2026/03/28 07:39:27

서용선, 엄흥도, 청룡포 노산군. 1986~1990. 캔버스에 유채 85x70c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용선, 엄흥도, 청룡포 노산군. 1986~1990. 캔버스에 유채 85x70c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빠른 물살에 떠내려가는 몸.

얼굴은 사라지고,

손만 남는다.

그리고 그 곁으로

거침없이 헤엄치는 한 사람.

단종의 시신을 거두는 자, 엄흥도.

권력은 죽은 몸을 버리지만

인간은 끝내 그것을 외면하지 않는다.

서용선, 세조, acrylic on canvas 193.5x259cm, 2010ⓒ아트센터 화이트블럭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용선, 세조, acrylic on canvas 193.5x259cm, 2010ⓒ아트센터 화이트블럭 *재판매 및 DB 금지

“여기 강물에 단종이 빠져 죽었다는군.”

1986년 여름, 영월 서강.

강물은 조용히 흐르고 있었고,

그 위로 한 소년의 몸이 가라앉고 있었다.

왕이었으나

아무것도 지킬 수 없었던 존재.

그날,

화가 서용선의 내부에서는

하나의 이미지가 태어났다.

드로잉은 빠르다.

생각보다 먼저 도착했다.

역사는 재현되지 않는다.

그 대신 체험된다.

서용선, `처형장가는길`480x750cm,Acrylic on Canvas(2014)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용선, `처형장가는길`480x750cm,Acrylic on Canvas(2014) *재판매 및 DB 금지

청령포는 풍경이 아니다.

캔버스 위로 쏟아진 붉은색은 권력의 욕망이고,

그를 휘감는 푸른색은 고립이다.

강은 흐르지만 나갈 수 없고,

산은 열려 있지만 막혀 있다.

자연은 소년왕을 가둔다.

서용선은 사건을 재현하지 않는다.

권력의 욕망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인간의 슬픔을 그린다.

감정의 구조를 그린다.

그래서 그의 단종은

비극의 주인공이 아니라

끝내 보호받지 못한 존재의 형상이다.

서용선 Suh Yongsun, 계유년 Year of the Fowl, 2006, Acrylic on paper, 50 × 66cm (Fram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용선 Suh Yongsun, 계유년 Year of the Fowl, 2006, Acrylic on paper, 50 × 66cm (Framed) *재판매 및 DB 금지

권력은 언제나 이동하고,

개인은 언제나 남겨진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다시 소환한 단종의 서사.

그 반복은 지금도 현재형이다.

서용선의 그림 속 단종은

이야기가 아니다.

상태다.

설명되지 않는다.

그려질 뿐이다.

역사는 지나갔다.

그러나

그 소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의 단종을 보고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글자크기 설정

상단으로 이동
로딩중로딩아이콘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