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폰에서 갤럭시 S26까지 이어진 단말기 잔혹사와 승전보
애니콜·스타텍 추억 넘어 온디바이스 AI 시대로…미래 '앰비언트 컴퓨팅' 주권 조준
[서울=뉴시스]윤현성 기자 = 지난 1996년 대한민국이 세계 최초로 성공한 CDMA(코드분할다중접속) 상용화는 우리 주머니 속의 풍경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30년 전 둔탁한 무전기를 연상케 했던 이른바 '벽돌폰'에서 시작된 여정은 이제 사용자의 의도를 먼저 읽어내는 인공지능(AI) 비서로까지 이어지며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의 위상을 상징하고 있다.
CDMA 기술의 등장은 단순히 통화 방식의 디지털 전환을 넘어, 단말기 설계의 패러다임까지 뿌리째 뒤흔들었다. 1세대 아날로그(AMPS) 방식 시절, 휴대폰은 무거운 배터리와 거대한 안테나를 감당해야 하는 '장비'에 가까웠다.
'부의 상징' 벽돌폰과 시장을 흔든 '메기' 스타택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삼성전자가 내놓은 국내 최초 휴대폰 'SH-100'은 무게만 700g을 훌쩍 넘겨 '벽돌폰'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당시 휴대폰 가격은 차 한 대 값에 육박해 일부 부유층이나 기업가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다.본격적인 휴대폰 대중화의 신호탄이 바로 1996년 1월 CDMA 상용화와 함께 터져 나왔다. 디지털 신호 처리 기술이 도입되면서 단말기 소형화와 경량화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이때 등장해 국내 시장을 뒤흔든 '메기'가 바로 모토로라의 '스타택(StarTAC)'이다. 세계 최초의 폴더폰이자 글로벌 시장에서 6000만대 이상 팔려나간 스타택은 휴대폰을 현재의 용어 그대로 ‘휴대기기'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 88g이라는 가벼운 무게와 디자인을 적용한 것. 특히 전용 케이스와 함께 허리춤에 차고 다닐 수 있었던 스타택의 개폐음은 당시 전문직 종사자들 사이에서 부의 상징이자 독보적인 감성 아이콘으로 통했다.외산 폰의 파상공세 속에서 국내 기업들은 '기술 주권'을 지키기 위해 사활을 걸었다. 삼성전자는 CDMA 상용화 전부터 ‘한국 지형에 강하다'는 슬로건을 앞세운 애니콜 'SH-770'을 통해 품질 신뢰도를 높였고, 이후 2000년대 초반 '조약돌폰(SGH-T100)'과 '벤츠폰(SGH-E700)' 등 세련된 디자인의 단말기를 잇따라 성공시키며 '텐밀리언셀러(1000만대 판매)' 신화를 썼다. 업계에서는 이 시기를 거치며 휴대폰이 단순한 통신 수단을 넘어 개인의 개성을 표현하는 패션 아이템이자 명품의 영역으로 진입했다고 보고 있다.이처럼 CDMA를 기반으로 한 통신 속도의 진화는 단말기의 기능적 폭발을 불러왔다. 64화음 벨소리에서 시작된 멀티미디어 혁명은 카메라 폰, MP3 폰, 그리고 지상파 DMB를 시청할 수 있는 '가로본능폰' 같은 파격적인 폼팩터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LG전자의 '싸이언(CYON)' 역시 초콜릿폰, 프라다폰 등을 통해 프리미엄 시장에서 입지를 굳히며 단말기 르네상스 시대를 함께 이끌었다. 당시 한국의 휴대폰은 '월드 퍼스트' 수식어를 독점하며 전 세계 트렌드를 주도했다.'아이폰 쇼크'를 넘어 글로벌 맹주가 된 갤럭시
이후 2000년대 후반 찾아온 '스마트폰 쇼크’가 다시 한번 판을 흔들었다. 2009년 말 아이폰의 국내 상륙은 기존 피처폰 생태계를 순식간에 재편했다. 물리 버튼이 사라진 전면 터치스크린과 무궁무진한 '앱 생태계'는 휴대폰을 '손안의 컴퓨터'로 변모시켰다. 삼성전자는 이에 맞서 '갤럭시 S' 시리즈를 출시하며 안드로이드 진영의 맹주로 거듭났고, '갤럭시 노트'를 통해 S펜을 활용한 대화면 패블릿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창출하며 글로벌 시장 점유율 1위를 거머쥐었다.이제는 '보는 폰' 넘어 '생각하는 폰'의 시대
현재 휴대폰 혁신의 정점은 '온디바이스 AI'가 찍고 있다. 재작년 갤럭시 S24 시리즈가 최초의 AI 폰으로 등장한 이후 올해 공개된 갤럭시 S26 시리즈까지 최신 스마트폰은 서버 연결 없이도 기기 자체에서 실시간 통번역, 지능형 사진 편집, 복잡한 정보 요약 등을 수행한다. 30년 전 음성 통화 품질 개선을 위해 고군분투하던 기기가 이제는 사용자의 비서 역할을 수행하는 지능형 단말로 진화한 셈이다. 갤럭시 Z시리즈로 대표되는 폴더블 기술 역시 '접는 폰'의 시대를 열며 폼팩터 혁신을 지속하고 있다.업계에서는 CDMA 상용화 이후 30년 동안 이어진 단말기의 변천사가 결국 한국 ICT 산업의 생존 기록이자 승전보와도 같다고 보고 있다. 단순히 기기를 만드는 제조 역량을 넘어 통신 규격의 변화를 단말기에 즉각 반영하고,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창출해내는 혁신성이 오늘날의 'K-모바일' 지위를 만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향후 30년은 물리적인 형태의 한계를 넘어서는 시기가 될 전망이다. AI가 기기 곳곳에 녹아들어 하드웨어의 형태에 구애받지 않는 '앰비언트 컴퓨팅(Ambient Computing)' 환경이 구축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30년 전 CDMA의 도전 정신은 이제 AI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가는 한국 ICT 산업이 돌아봐야 할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