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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 기다리다 포기"…'적격자' 알려주는 AI 개발

등록 2026/09/02 09:37:52

임상시험 적격 대상자 검토하는 AI 자체 개발

전자의무기록·검사결과 분석…특허권도 확보

[서울=뉴시스] 서울성모병원 혈액병원 다발골수종센터 연구팀. 왼쪽부터 민창기 교수, 박성수 교수, 이정연 교수, 변성규 교수. (사진= 서울성모병원 제공)

[서울=뉴시스] 서울성모병원 혈액병원 다발골수종센터 연구팀. 왼쪽부터 민창기 교수, 박성수 교수, 이정연 교수, 변성규 교수. (사진= 서울성모병원 제공)

[서울=뉴시스] 류난영 기자 = 골수의 형질세포가 악성으로 증식하는 난치성 혈액암인 다발골수종은 재발이 잦아 신약 개발과 임상시험이 가장 활발한 혈액암 중 하나로 꼽힌다.

환자 입장에서는 임상시험 참여 자체가 중요한 치료 기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의료진이 일일히 임상시험 배제 기준 등을 확인해 적격성 검토를 하는 데만 2주 넘는 시간이 걸린다. 이 때문에 임상시험에 참여할 수 있는 환자도 서류 검토에 걸리는 시간 때문에 임상을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자료 검토에 소요되는 시간 때문에 치료 시기를 놓치거나, 예후가 나쁜 환자의 경우 자료 검토가 끝나기 전에 사망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국내 연구진이 임상시험에 참여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는 환자를 수 초 만에 찾아내는 인공지능(AI)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2일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성모병원 혈액병원 연구팀은 인공지능을 활용해 임상시험에 참여할 수 있는 다발골수종 환자를 자동으로 선별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임상연구 코디네이터(CRC)가 2주에 걸쳐 수기로 하던 적격성 검토를 수십 초로 줄인 것이다. 연구팀은 다발골수종 임상시험 대상자 선별을 자동화한 해당 소프트웨어를 특허 출원하고 프로그램 저작권 등록까지 마쳤다.

이 소프트웨어는 외부 예산이나 타 부서의 지원 없이 박성수 혈액내과 교수 주도로 오직 의료진들의 참여로만 제작된 점이 특징이다. 지난 4월 개발에 착수해 약 2개월 만에 실제 업무에 쓸 수 있는 수준으로 완성됐으며, 현재 다발골수종센터에 도입돼 실제로 임상시험 대상자 선별에 쓰이고 있다.

 다발골수종은 연간 약 2000명 이상이 새롭게 진단받고 있으며, 고령 인구 증가와 함께 발병률이 꾸준히 늘고 있다. 재발과 불응이 반복되는 특성 탓에 신약 개발과 임상시험이 가장 활발한 혈액암 중 하나로 환자에겐 임상 참여가 치료 기회가 될 수 있다.

문제는 그 기회를 붙잡기까지의 과정이다. 지금까지는 담당 교수가 등록 대상 임상시험을 공지하면, 코디네이터가 환자 한 명 한 명의 전자의무기록을 일일이 확인해 등록·배제 기준과 대조해야 했다. 이 검토에만 통상 2주가 걸렸고, 선별을 통과한 환자 명단을 표준화된 형식으로 공유할 방법도 마땅치 않았다.

 기준 자체도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최근 임상시험은 이전에 받은 치료 횟수, 특정 약제에 대한 불응성, 조혈모세포이식 경험, 이전 치료 종료 후 지난 기간 같은 치료 이력 조건과, 신장·간 기능이나 혈액 수치, 감염 여부 같은 실시간 검사 조건을 동시에 요구한다.

하나의 임상시험 안에서도 환자군(코호트)별로 기준이 다른 경우가 많아, 사람이 손으로 판단하다 보면 오류나 누락이 생기기 쉽다는 구조적 문제가 존재했다.

 연구팀이 개발한 소프트웨어는 이 과정을 세 단계로 자동화했다. 먼저 병원 내의 전자의무기록을 정리해 환자별 데이터베이스(레지스트리)를 만든다. 흩어져 있던 처방 기록을 약제 단위로 나눠서 그동안 몇 번의 치료를 받았는지, 어떤 약제군에 반응하지 않았는지, 조혈모세포이식을 받았는지를 자동으로 정리해 둔다. 사람이 진료 기록을 뒤적이며 확인하던 정보를 컴퓨터가 미리 정돈해 놓는 셈이다.

 다음으로 임상시험 문서를 읽는다. 사람이 쓴 복잡한 문장으로 돼 있는 임상시험 참여·제외 기준을, 대규모 언어모델이 읽고 컴퓨터가 비교할 수 있는 형태의 표로 바꾼다. 하나의 임상시험 안에 서로 다른 기준을 가진 여러 환자군이 있으면 이를 자동으로 구분해서, 환자가 어느 군에 해당하는지까지 알려준다.

 마지막으로 환자의 최신 검사 결과를 대조한다. 종양 수치, 신장·간 기능, 혈액 수치, 감염 여부 등을 임상시험이 요구하는 수치 기준과 하나씩 맞춰 본다. 여기에 다발골수종이라는 질환에 특화된 판단 규칙도 담았다.

프로테아좀억제제·면역조절제·항CD38 항체 등 여러 계열의 약제 중 어떤 조합에 반응하지 않는 환자인지를 이중·삼중 불응이라는 임상적 정의에 맞춰 자동으로 계산하도록 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의사가 머릿속으로 하던 판단을, 컴퓨터가 따라야 할 규칙으로 옮겨 놓았다.

 이 소프트웨어의 또 다른 특징은, 확인할 검사 결과가 아직 없는 환자를 곧바로 '참여 불가'로 처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보류'로 따로 분류해 데이터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참여할 수 있었던 환자가 걸러지는 일을 막았다. 나중에 검사를 받아 값이 채워지면 곧바로 다시 판정할 수 있다. 반대로 이미 사망한 환자는 어떤 경우에도 참여 가능 목록에 포함되지 않도록 항상 자동으로 제외했고, 날짜를 잘못 입력하는 등의 오류에 대한 안전장치도 마련했다.

 선별 결과는 참여 가능·보류·참여 불가의 세 갈래로 정리되고, 환자별로 어떤 기준을 충족했고 어떤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는지가 근거와 함께 제시된다. 결과는 요약문과 엑셀 파일로도 만들어져, 그동안 별다른 방법이 없었던 스크리닝 통과 환자 명단 공유도 정해진 형식으로 할 수 있게 됐다.

 실제 운영 결과, 수천 명 규모의 환자 데이터베이스 전체를 한꺼번에 훑는 데 수십 초, 환자 한 명을 자세히 판정하는 데는 몇 초가 걸렸다. 연구팀은 핵심 로직에 대해 800건 이상의 검증 테스트를 진행했으며, 임상적 정확도에 대한 검증 연구를 별도로 진행하고 있다.

 다발골수종센터에서는 개발 후 지금까지 해당 소프트웨어에 18개 임상시험의 기준을 등록해 운영해온 결과,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는 입장이다. 특히 새로운 임상시험이 열리면 관련 문서를 넣는 것만으로 대상 목록에 추가할 수 있는 만큼, 의료진 편의 뿐 아니라 오류감소와 시간 절감 모두에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다.

민창기 혈액병원 혈액내과 교수는 "다발골수종은 신약이 가장 빠르게 도입되는 혈액암이지만, 그 기회를 환자에게 연결하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손과 시간에 기대어 왔다"며 "이번 소프트웨어는 오랜 기간 축적해온 다발골수종 환자 레지스트리라는 자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박성수 혈액병원 다발골수종센터장은 "이제까지는 임상시험에 참여할 수 있는 환자가 서류 검토에 걸리는 시간 때문에 소중한 기회를 놓치는 일이 적지 않았지만, 인공지능이 1차 후보군을 즉시 추려주면 연구 인력은 환자 상담과 등록 절차에 집중할 수 있어 결과적으로 더 많은 환자에게 신약 치료 기회가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는 이 소프트웨어의 판정이 실제 임상 현장에서 얼마나 정확한지를 검증하는 연구에 집중할 계획으로, 궁극적인 목표는 선별 속도 자체가 아니라 참여할 수 있는 환자가 한 명도 빠짐없이 기회를 안내받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향후 적용 범위를 다른 혈액암으로 넓힌다는 계획이다.

서울성모병원 혈액병원 다발골수종센터에서 지난 2010~2021년 치료받은 다발골수종 환자 1291명의 중앙 생존기간은 80.5개월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국내 전체 다발골수종 환자의 중앙 생존기간(52.8개월)보다 약 1.5배 긴 것으로 나타났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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