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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단둥 방문, 中 6·25 참전기념일 계기?…중공군 참전이후 첫 전투까지

등록 2026/10/24 17:54:55

 [서울=뉴시스] 김일성과 박헌영이 1950년 10월 1일 마오쩌둥에게 보낸 참전을 요청하는 편지.  중국 단둥 항미원조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다.2026.10.24.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김일성과 박헌영이 1950년 10월 1일 마오쩌둥에게 보낸 참전을 요청하는 편지.  중국 단둥 항미원조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다.2026.10.24.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구자룡 기자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4일 열흘전 개통한 신압록강대교를 통해 단둥에 도착했다고 통일부가 밝혔다.

당국자는 “김 위원장의 방중은 중국이 한국전쟁 참전을 기념하는 날인 10월 25일을 계기로 방문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신압록강대교 개통을 계기로 중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려는 뜻도 있다는 분석이지만 김 위원장의 방중 날짜가 ‘항미원조(抗美援朝)’를 구실로 참전한 중공군의 참전 기념일을 하루 앞두고 이뤄졌다는 점이 주목된다.

북한군의 우크라이나 전쟁 파병을 계기로 북한과 러시아가 군사적 결속을 다지는 가운데 중러 혈맹의 상징인 항미원조전쟁(6·25)을 계기로 중국을 방문한 속내와 그의 방중을 맞은 중국의 의도 등이 관심이다.

 

김 위원장의 중공군 참전 기념일과 무관치 않은 듯한 단둥 방문은 중공군의 참전과 왜 이 날을 참전일로 정했는지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북한군이 1950년 6월 25일 기습 남침한 뒤 파죽지세로 낙동강까지 남하한 북한 인민군은 그해 9월 15일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돼 밀려 올라갔다.

한국군이 38선을 넘어 북진해 국군의 날로 잡은 그해 10월 1일. 김일성과 박헌영은 마오쩌둥에게 중공군의 참전을 간절히 요청하는 편지를 보낸다.

김일성은 편지에서 “적들이 오늘 우리가 처한 엄중하고 위급한 형편을 이용하여 38도선을 침공하게 되는 때에는 우리 자체의 힘으로는 위기를 극복할 가능성이 없습니다. 적군이 38도선 이북을 침공하게 될 때에는 약속한 바와 같이 중국 인민군의 직접 출동이 절대로 필요하게 됩니다”고 적었다.

김정은이 방문한 단둥의 항미원조기념관에는 김일성과 박헌영이 연명으로 마오에게 보낸 긴급 파병 요청 편지가 전시되어 있다.

박헌영은 이 편지를 직접 들고 베이징으로 달려갔다. 이날 스탈린도 마오에게 참전을 강력히 요구하는 전문을 보냈다.

[서울=뉴시스] 중국 랴오닝성 단둥의 항미원조기념관의 기념비. 전쟁에서 지원했던 역사를 잊지 말라는 듯 북한쪽을 바라보고 있다. 2026.10.24.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중국 랴오닝성 단둥의 항미원조기념관의 기념비. 전쟁에서 지원했던 역사를 잊지 말라는 듯 북한쪽을 바라보고 있다. 2026.10.24. *재판매 및 DB 금지

이 편지를 기념관에 전시하고 있는 것은 북한에 “이런 요청을 받고 도와준 것을 잊지 말라”고 환기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기념관 자리는 중공군 13병단의 포병 지휘소가 있던 곳이다.

1일 김일성의 편지와 스탈린의 전문을 받은 마오는 이튿날 베이징 중난하이에서 공산당 정치국 확대회의를 소집했다.

마오는 참전을 주장했으나 다수가 반대하자 마오는 “당분간 참전할 수 없다”는 뜻을 모스크바에 보내야 했다.

마오의 전문을 받은 스탈린은 5일 “중소의 연합세력은 미국보다 강하다”며 참전을 독려했다. 중공이 참전을 머뭇거리면 북한에 파견한 소련 인원을 철수할 수도 있음을 내비치며 강온 양면 전술을 구사했다.

파병 의지가 있었던 마오가 꺼낸 카드는 중공군 사령관으로 지명된 펑더화이였다.

지방에서 마오의 긴급한 부름을 받고 올라온 펑은 “미국은 호랑이다. 결국은 사람을 잡아먹을 것이다. 언제가 잡아야 한다면 빨리 잡는 것이 좋다”며 마오의 파병 의지를 적극 뒷받침했다.

[서울=뉴시스] 중국 단둥의 ‘끊어진 압록강 다리’위에 설치된 중공군의 ‘1950년 10월 19일’ 도강 날짜를 알리는 대형 석조 달력.2026.10.24.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중국 단둥의 ‘끊어진 압록강 다리’위에 설치된 중공군의 ‘1950년 10월 19일’ 도강 날짜를 알리는 대형 석조 달력.2026.10.24. *재판매 및 DB 금지

마오는 18일 공산당 정치국 회의에서 파병 명령을 전달하고 단둥에 도착해 준비하고 있던 중공군은 19일 압록강을 넘었다.

지금은 관광지가 된 단둥의 ‘끊어진 압록강 다리(鴨綠江斷橋)’ 위에는 펑더화이가 중공군을 이끌고 도강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조각과 함께 대형 석조 달력이 전시되어 있다.

‘1950년 10월 19일 ‘중국인민지원군 사령원(관)’ 펑더화이가 압록강 대교를 건너 북한으로 들어갔다’고 새겼다.

중공군이 압록강을 넘기 시작한 것은 19일 이전에도 있었다는 기록이 적지 않다.

다만 ‘공식 압록강 도강’일은 19일로 중공군은 25일 박천-운산-온정리-희천을 연하는 선까지 진출해 1차 공세를 시작하고 미군과 운산에서 첫 교전을 벌였다. 이날을 중국은 공식 참전일로 기념하는 것이다.

인천상륙작전과 서울수복, 38선 돌파와 국군 6사단의 압록강 도달 등 거침없이 북진했던 전세는 중공군 참전 이후 전환점을 맞았다.

6·25 당시 김일성의 간청으로 중공군이 참전한 날을 되새기는 날을 계기로 한 김정은 위원장의 단둥 방문이 한반도 및 동북아 정세에 어떤 나비효과를 가져올지 예의 주시해야 할 상황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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