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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인 스님 “죽음 앞 단정함, '잘 살다 간다' 선언"[문화人터뷰]

등록 2026/10/25 07:00:00

호스피스 현장 경험 담은 첫 에세이 '단정한 죽음'

불교 호스피스 영적 돌봄가…생의 마지막 안내서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 영적 돌봄가 능인스님이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2026.10.24.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 영적 돌봄가 능인스님이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2026.10.24.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수지 기자 = "죽음의 과정에서는 몸이 무너지면서 마음도 폭풍처럼 흔들려 고통의 주체를 구분하기조차 힘들어집니다. 이때 단정함은 억지로 틀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서로의 속도에 맞춰 기다려 주고 마음의 걸림돌을 찾아 화해하는 것입니다."

죽음을 앞둔 이에게 단정하라는 말은 가혹하게 들릴 수도 있다. 몸이 무너지고 두려움이 밀려오는 순간에도 흐트러지지 말라는 주문처럼 느껴져서다.

그러나 호스피스 병동에서 환자들의 마지막을 함께하는 능인 스님이 말하는 단정함은 애써 의연한 모습을 만드는 대신 고통 속에 있는 자신을 더 다정하게 바라보는 일이다.

지난 20일 서울 조계사에서 만난 스님은 옷매무새를 가다듬듯 마음에 걸린 것을 살피고, 자신이나 다른 사람과 화해하며, 할 수 있는 만큼 마음을 표현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스님은 빙상 위에서 수없이 넘어지고 훈련한 뒤 비로소 여유롭고 완벽한 연기를 펼치는 피겨 스케이팅 선수 김연아의 모습을 비유로 들었다.

"인생에서 겪는 수많은 고통과 쓰러짐이 연습 과정이었다면, 죽음은 마침내 그 모든 수고로움을 마치고 생의 메달을 따는 비로소 '잘 살다 간다'고 선언하는 순간입니다. 죽음 또한 급하게 서두르지 않고, 내가 내 몸의 주인이 되어 다정하고 친절하게 바라보는 여유가 바로 단정함입니다."

[서울=뉴시스] 단정한 죽음 (사진=불광출판사 제공) 2026.10.2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단정한 죽음 (사진=불광출판사 제공) 2026.10.25.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지난 15일 첫 에세이 '단정한 죽음'(불광출판사)을 펴낸 스님은 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 영적 돌봄가로 활동하고 있다. 울산 울주군 정토마을 자재병원과 암 요양병원에서 환자들을 만나고, 호스피스·완화의료 전문기관 종사자도 교육한다.

스님에게 단정함의 의미를 보여준 것은 병동에서 만난 한 환자였다. 암으로 상태가 악화해 상처를 처치하는 데만 한 시간가량 걸릴 만큼 힘겨운 상황이었다. 말로 의사를 표현하기도 어려웠지만, 환자는 자신을 찾아온 사람에게 미소로 답했다.

스님은 그 모습을 고통을 참아내려는 무리한 노력과는 다르게 받아들였다. 환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타인과 마음을 나누고 있었다. 몸이 크게 아프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삶까지 흐트러졌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단정한 죽음이 모든 환자에게 같은 표정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죽음 앞에서는 몸의 통증과 마음의 괴로움을 구분하기조차 어려워진다. 불안과 두려움이 차례로 찾아오는 대신 한꺼번에 밀려들고, 누군가 곁에 있었으면 하면서도 아무와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겹치기도 한다. 스님은 그런 자신을 탓하지 않고 살피는 태도를 강조했다.

스님 역시 처음부터 자기 마음을 너그럽게 대했던 것은 아니다. 책에는 납득되지 않는 일 앞에서 사람들과 부딪치고, 내면의 화를 다스리지 못했던 시간이 담겼다. 자신을 '꼴통 스님'이라 부를 만큼 거칠었던 시절 절망에 빠져 삶을 놓으려 한 적도 있다. 주변의 손길로 고비를 넘긴 뒤 찾아간 호스피스 현장은 타인뿐 아니라 자신을 다시 이해하는 자리가 됐다.

환자들의 고집과 날 선 말 뒤에는 두려움, 외로움, 미처 표현하지 못한 미안함이 있었다. 그 마음을 헤아리면서 스님은 자신의 과거도 돌아보게 됐다. 스님이 책을 쓴 이유는 "출가 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정리 정돈해서, 둘을 화해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수필은 제 경험과 부족함을 그대로 녹여낼 수 있는 그릇입니다. 호스피스 현장에서 만난 환자들의 고통을 들여다보면서, 오랫동안 저를 괴롭혔던 내면의 상처와 불편함들을 마주하고 보듬을 수 있었죠."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 영적 돌봄가 능인스님이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2026.10.24.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 영적 돌봄가 능인스님이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2026.10.24. [email protected]

책 속 환자들 사연도 겉으로 드러난 행동만으로는 다 읽을 수 없는 마음을 보여준다. 임종을 앞두고도 주식창을 놓지 못했던 가장에게는 남겨질 가족에 대한 걱정이 있었다.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남편을 간병한 아내에게는 아픈 몸으로도 내려놓기 어려운 책임감이 있었다. 스님의 돌봄은 그 사람이 끝까지 붙들고 있는 마음이 무엇인지 살피는 일이었다.

그 시선은 보호자에게도 향한다. 간병이 길어지면 사랑과 책임감 위로 피로, 원망, 죄책감이 쌓인다. 잠시 쉬고 싶다는 생각마저 미안해하는 이들에게 스님은 쉬어도 괜찮다고 말한다. 스님 자신도 노스님을 간병하면서 곁을 오래 지키려면 돌보는 사람에게도 숨을 고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현장에서 느낀 아쉬움은 마음을 돌보는 시점이 너무 늦다는 것이다. 스님은 치료를 이어오다 상태가 크게 나빠진 뒤에야 호스피스를 찾는 환자들을 만났다. 호스피스를 '죽으러 가는 곳'으로 받아들이는 인식 속에서 환자와 가족이 삶을 정리하고 서로 마음을 나눌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스님은 암 진단 직후부터 환자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치료 과정에서 어떤 마음의 어려움을 겪는지 함께 살펴야 한다고 강조한다. 몸을 치료하는 동안에도 환자는 삶의 의미와 가족의 앞날, 자신에게 닥친 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끊임없이 묻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뜻으로 건넨 말이 상처가 되기도 한다. "걱정 마, 나아질 거야", "너보다 더한 사람도 있어"라는 위로는 정작 환자가 털어놓고 싶었던 두려움을 가로막을 수 있다. 스님은 "고통을 서둘러 정리해 주려 하기보다, 그 사람이 어떤 시간을 견디고 있는지 주의를 기울여 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의료진과 환자, 보호자가 함께 활용할 수 있는 '한국형' 완화의료 대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제언을 내놓았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와 유교적 문화 정서는 외국과 완전히 달라요. 감정을 직접 드러내기보다 참거나 돌려 말하는 한국인 특성, 그리고 나이대별로 다르게 찾아오는 삶의 고통을 세심하게 다룰 수 있는 '한국형 완화의료 대화 프로그램'이 필요하죠. 또한 암 진단 초기부터 환자와 가족이 정서적 돌봄 교육을 의무적으로 받고, 서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제도적 세팅이 시급합니다."

자신의 마지막에 관한 생각을 가족에게 알리는 일도 중요하다. 스님은 장례 방식은 이야기하면서도 그에 이르는 과정은 "자식들이 알아서 하겠지"라고 넘기는 이들을 만났다고 했다. 그러나 가족이라고 해서 당사자가 무엇을 바라고 원하지 않는지 모두 알 수는 없다. 스님은 "죽음의 주체는 나"라며 자신의 뜻을 지인이나 가족과 나눌 필요성을 짚었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 영적 돌봄가 능인스님이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2026.10.24.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 영적 돌봄가 능인스님이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2026.10.24. [email protected]

스님은 이승을 '연습장'에 비유했다. 오늘의 말과 행동을 돌아보고, 자신과 타인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연습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삶 전체를 감당하기 벅찬 이에게는 먼 미래보다 지금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함께 찾는 것이 먼저라고 강조했다.

"아침마다 거울을 보듯, 이승에서의 선한 행위와 삶에 대한 진정성은 그대로 저 너머 세상으로 비칩니다. 먼 미래나 전체 인생을 한꺼번에 짊어지려 하지 말고, '오늘 하루치'의 삶을 무사히 살아내는 것부터 시작해 보세요.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지금 이 순간, 내가 혼자가 아니라 온 우주와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며 스스로에게 친절해질 때 우리는 삶에서도, 마지막 이별에서도 단정한 품격을 지켜낼 수 있습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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