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벨 위자르 "제주 4·3, 韓 역사지만 보편적 가치 지녀"
등록 2026/10/11 09:13:02
한강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낭독극 '새' 각색
佛 아비뇽 화제작…서울국제공연예술제 공연
델리케 연출 "젊은 세대, 역사 알아줬으면"
![[서울=뉴시스] 지난 7월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 '새' 낭독 공연 무대에 오른 배우 이혜영(왼쪽부터), 한강 작가, 배우 이자벨 위페르. (사진=예술경영지원센터 제공) 2026.10.11.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07/29/NISI20260729_0002199055_web.jpg?rnd=20260729143401)
[서울=뉴시스] 지난 7월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 '새' 낭독 공연 무대에 오른 배우 이혜영(왼쪽부터), 한강 작가, 배우 이자벨 위페르. (사진=예술경영지원센터 제공) 2026.10.11.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조기용 기자 = 새하얀 벽 앞, 새하얀 옷을 입은 두 배우가 무대에 오른다. 보면대(譜面臺) 앞에서 덤덤하게 읽어 내려가는 대사에는 오히려 묵직한 울림이 실린다. 절제된 무대와 목소리만으로 비극의 기억을 되살린다.
지난 7월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선보이며 최대 화제작이 된 낭독극 '새'가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의 주요작으로 국내 관객을 만났다.
낭독극은 아시아 여성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원작으로 한다. 한국 근현대사인 제주 4·3 사건을 소재로 하는 소설의 제1장을 발췌해 낭독극으로 재해석했다.
프랑스 연출가 줄리 델리케가 연출 및 각색하고, 한국 대표 배우 이혜영과 프랑스 국민배우 이자벨 위자르가 각각 소설 속 '인선'과 '경하'를 무대 위에서 연기한다. 이혜영은 한국어로, 위자르는 프랑스어로 낭독한다.
작품은 제주에 사는 인선이 사고로 인해 병원에 입원하게 되며 친구 경하에게 홀로 남겨진 새의 돌봄을 부탁하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경하는 새를 돌보러 가는 과정에서 인선 가족의 기억을 쫓아 제주 4·3 사건을 마주한다.
![[서울=뉴시스] 지난 7월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 '새' 낭독 공연 무대에 오른 배우 이자벨 위페르(왼쪽)과 이혜영. (사진=서울국제공연예술제 제공) 2026.10.11.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금지](https://img1.newsis.com/2026/10/11/NISI20261011_0002259894_web.jpg?rnd=20261011004308)
[서울=뉴시스] 지난 7월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 '새' 낭독 공연 무대에 오른 배우 이자벨 위페르(왼쪽)과 이혜영. (사진=서울국제공연예술제 제공) 2026.10.11.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금지
지난 10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 메리홀에서 국내 첫 공연 이후 연출과 배우들이 기자들과 만나 작품에 참여한 소회를 전했다.
위자르는 "작품은 한국의 역사지만 우리 모두의 역사고, 보편적 가치를 지닌다"며 "작품에서 다루는 이야기 어떤 한 나라와 민족에 국한된 것처럼 보이지만 더 많은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다가가는 진리가 담겼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술가들의 작업을 통해서 우리가 많은 역사의 단면 볼 수 있게 된다"고 했다.
델리케는 올해 아비뇽 페스티벌 초청 언어인 한국어에 따라 소설을 낭독극 형식 연출을 제안받고 지난해 10월 말쯤 제작에 착수했다.
델리케는 "두 인물의 우정에 집중하고, 우정으로 이어지는 관계를 통해 서로의 연약함을 다루려 했다"며 연출 의도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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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작품을 접하기 전까지 제주 4·3 사건을 알지 못했다는 그는 역사적 비극이 공동체 안에서 오랫동안 침묵 속에 묻히는 현상에 주목했다.
델리케는 "어떠한 한 국가나 민족이 전쟁과 같은 끔찍한 일을 겪고 공동체가 함부로 언급 못 하고 침묵하는 것에 대해 고민했다"고 말했다.
연극과 달리 최소한의 무대장치에서 오롯이 배우의 목소리만으로 극은 전개된다. 인물의 감정과 사건을 시각적으로 재현하기보다 목소리와 언어에 집중하도록 한 구성이다.
위자르는 "한강의 독특한 문장을 낭독으로 재현하기에 목소리에 더 집중해서 준비했다"고 말했다.
다만 목소리에만 연기를 국한하지 않았다. 오히려 낭독극이다 보니 연극적인 퍼포먼스에 더 다가가게 됐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위자르는 공연에서 몰입감을 위해 비언어적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이번 공연으로 낭독극에 처음 도전하는 이혜영은 "관객이 있고 배우가 이 앞에서 매일 그 현장에 맞게 새로운 기분으로 뭔가를 하는 것은 연극과 낭독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지난 7월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 '새' 낭독 공연 무대에 오른 배우 이혜영. (사진=서울국제공연예술제 제공) 2026.10.11.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금지](https://img1.newsis.com/2026/10/11/NISI20261011_0002259895_web.jpg?rnd=20261011004351)
[서울=뉴시스] 지난 7월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 '새' 낭독 공연 무대에 오른 배우 이혜영. (사진=서울국제공연예술제 제공) 2026.10.11.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금지
이혜영은 지난 7월 초연 이후 한강 작품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한강만의 문체가 역사를 다르게 보게 됐다고. 그는 "역사의 고통과 트라우마가 있는 소재를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봤다"면서도 "한강 작품처럼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 있었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약 2000석 규모 객석을 보유한 아비뇽 교황청 명예극장에서 한국 공연에 열린 서강대 메리홀은 528석으로, 약 4분의 1 수준이다. 또 야외에서 열린 프랑스 공연과 달리 한국은 밀폐된 공연장이란 점에서도 차이를 이룬다.
무대는 작아졌지만 작품의 감동은 반비례했다. 위자르와 이혜영이 각각 연기한 두 인물 '경하'와 '인선'의 관계는 더욱 긴밀해졌다.
위자르는 "대사 재현이 장소마다 달라진다. 실내에서 공연하니 침묵이나 서로의 말에 더 귀 기울이는 데 집중했다"며 "아비뇽과 달리 자연 요소가 없다 보니 두 인물과 관객과 더 긴밀한 관계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로 간 마음이 오가는 교감이 (아비뇽 공연보다) 더 부각됐을 것"이라고 했다.
"작품의 완성은 관객"이라는 이혜영은 관객과 같은 언어를 호흡하기에 더 몰입됐다고 한다. 그는 "(아비뇽과 달리) 한국어로 대사를 하기에 한국 관객이 더 집중하는 것 같다"며 "오늘 너무 (공연이) 좋았다"며 웃었다.
작품의 핵심은 '눈'(雪)이다. 눈은 곧 비극적인 역사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극단적인 은유로 작용한다. 이날 공연에서 꽃가루가 떨어지는 연출이 돋보였다.
델리케는 연약한 두 인물을 눈으로 표현했다. 그는 "최소한의 방법과 겸허한 마음으로 연약함을 연출하려 했다"며 LED 화면이나 인공눈을 활용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한국 공연은 아비뇽 현지 공연과 가장 큰 차이점은 꿈과 기억으로 전개 흐름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이다.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이 역할을 작품 원작자인 한강 작가가 했다면, 이날 공연에서는 중학교 3학년인 황주현 양이 맡았다. SPAF에 따르면 작품과 연출에 어울리는 인물을 추려 추천했고, 델리케가 최종적으로 결정했다.
![[서울=뉴시스] 제26회 서울국제공연예술제 해외초청작인 한강 소설을 원작으로 한 낭독극 '새' 공연. (사진=서울국제공연예술제 제공) 2026.10.11.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08/13/NISI20260813_0002211627_web.jpg?rnd=20260813105637)
[서울=뉴시스] 제26회 서울국제공연예술제 해외초청작인 한강 소설을 원작으로 한 낭독극 '새' 공연. (사진=서울국제공연예술제 제공) 2026.10.11.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
해당 인물은 비극의 대목을 담담하게 읽어 나가며 우리 사회가 지속해서 기억해야 하는 깨달음을 전달한다.
델리케는 오랜 시간 묻혔던 역사이기에 후대가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을 작품에 녹여냈다. 그는 "한강 대신에 (한국 공연에서는) 마지막 낭독의 역사를 알아줬으면 하는 젊은 세대 중의 한 명에게 맡기고자 했다"며 소녀를 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두 배우의 목소리가 멈춘 뒤에도 작품은 관객에게 질문을 남긴다. 비극을 기억한다는 것은 무엇이며, 침묵 속에 묻힌 역사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일은 어떻게 가능한가. 절제된 무대와 언어가 가진 힘은 공연 이후에도 작품이 마음 속에 머무르게 한다.
작품은 11일 서강대 메리홀에서 한 차례 더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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