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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장 찍어도 눈치 안 봐요"…사진만 찍고 헤어지는 청년들

등록 2026/08/29 09:00:00

수정 2026/08/29 09:09:27

"눈치 안 보고 수백 장"…당근마켓 모이는 청년들

사진만 찍고 흩어져…목적 달성 후 일상으로

관계 부담 줄이고 필요한 부분만 취해

[서울=뉴시스]고선영 수습기자=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 위치한 한 카페 계단에서 박모(19)씨가 최모(28)씨의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2026.08.29. sunzero@newsis.com

[서울=뉴시스]고선영 수습기자=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 위치한 한 카페 계단에서 박모(19)씨가 최모(28)씨의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2026.08.29.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고선영 수습 기자 = "친구한테는 수백 장 찍어달라고 못 하는데 여기서는 마음 편하게 찍을 수 있어요."

지난 24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 최모(28)씨는 이같이 말하며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했다. 옆에 있던 박모(19)씨는 최씨의 자세를 고쳐줬다. 턱을 조금 내리고 어깨를 펴고 벽에 기대보라는 구체적인 주문도 이어졌다.

박씨는 사진 수십 장을 찍은 뒤 "마음에 들어요? 더 찍어드릴게요. 여기 진짜 잘 나와요"라고 말했다. 김모(27)씨도 "제 휴대전화로도 찍어서 보내드릴게요"라며 휴대전화를 들었다.

세 사람은 이날 처음 만났다. 온라인 커뮤니티 당근마켓의 모임 게시판에서 '인스타 사진 찍어용!'이라는 모임을 통해 만난 사이다. 이들의 유일한 목적은 서로의 '인생샷'을 찍어주는 것이다. 촬영이 끝나면 각자 일상으로 돌아간다. 사진이라는 공통 관심사를 계기로 친분을 쌓고 정기적으로 만났던 과거의 사진 동호회와는 다른 모습이다.

[서울=뉴시스]고선영 수습기자=당근마켓 모임란에서 '인스타'를 검색한 결과. 인스타 게시용 사진을 서로 찍어주는 모임이 여럿 나온다. 2026.08.29. sunzero@newsis.com

[서울=뉴시스]고선영 수습기자=당근마켓 모임란에서 '인스타'를 검색한 결과. 인스타 게시용 사진을 서로 찍어주는 모임이 여럿 나온다. 2026.08.29. [email protected]

친목 대신 ‘인생샷’…사진 찍고 다시 흩어져

최근 젊은 층 사이에서 인생샷을 건지기 위해 낯선 사람들과 만나는 모임이 생겨나고 있다. 당근마켓 모임 게시판에서 '인스타'를 검색하자 '방금 전 활동', '5분 전 활동'이라는 알림이 뜬 모임 수십 곳이 줄지어 나타났다. 가입자가 1000명이 넘는 모임도 있었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릴 사진을 찍겠다는 목적 하나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다.

음료가 나오자 촬영은 더욱 분주해졌다. 테이블 위에 음료를 어떻게 놓을지부터 고민이 시작됐다. "하나만 놓을까요?", "빨대는 놓을까요, 말까요"라는 대화가 오갔다. 유명 연예인이 찍은 사진을 참고해 같은 구도를 따라 해보기도 했다. 한 장소에서만 15분간 포즈를 바꿔가며 촬영했다.

카페 문 앞에서는 최씨가 익숙한 듯 카메라를 바라보며 웃거나 머리를 넘겼다. 박씨와 김씨는 최씨가 건넨 휴대전화 두 대를 번갈아 들고 셔터를 눌렀다. "조금 더 가까이서 찍어달라"는 요청에 김씨는 허리를 굽혀가며 연신 사진을 찍었다.

카페에서 2시간가량 머문 이들은 다음 장소인 흥인지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전날 '창신동 핫플'을 검색해 찾아둔 곳이었다. 휴대전화에 저장해둔 사진과 눈앞의 풍경을 번갈아 확인하며 원하는 장소를 찾았다.

32도의 무더위 속에서도 촬영은 계속됐다. 휴대전화가 뜨거워져 촬영이 잠시 중단되기도 했지만 최씨는 김씨에게 "더워도 사진을 건지려면 견뎌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최씨가 찍은 사진은 600장이 넘었고, 김씨도 150장가량을 찍었다.

김씨는 이날 모임에 참여한 소감으로 "낯가림이 좀 있는데 극복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씨도 촬영을 마친 뒤 "재밌었다"며 "SNS에 올릴 사진도 몇 장 건졌다"고 했다.

[서울=뉴시스]고선영 수습기자=카페 야외 테라스로 자리를 옮겨 사진 찍기를 이어가는 모습. 박모(19)씨와 최모(28)씨가 김모(27)씨의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2026.08.29. sunzero@newsis.com

[서울=뉴시스]고선영 수습기자=카페 야외 테라스로 자리를 옮겨 사진 찍기를 이어가는 모습. 박모(19)씨와 최모(28)씨가 김모(27)씨의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2026.08.29. [email protected]

사진만 찍고 헤어지는 사이…"친구보다 눈치 안 보여"

이들이 낯선 사람들과 모여 사진을 찍는 가장 큰 이유는 눈치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최씨는 "친구들은 놀러 온 것일 텐데 오늘처럼 수백 장 넘게 찍어달라고 하기는 미안하다"고 말했다.

반면 이런 모임에서는 다르다. 사진을 찍고, 고르고, 다시 찍는 일 자체가 처음부터 약속된 일이기 때문이다.

사진 촬영이라는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에 굳이 상대와 어색한 대화를 이어갈 필요도 없다. 대화 도중 각자 휴대전화만 들여다보며 방금 찍은 사진을 고르는 행동도 이곳에서는 '비(非)매너'가 아니다.

표정이나 포즈를 자연스럽게 연출할 수 있다는 점도 이 모임의 장점이다. 최씨는 "친구들 앞에서는 자연스럽게 포즈나 표정을 짓는 게 어색하지만 여기서는 편하다"며 "멤버들은 어떻게 찍어야 예쁘게 나오는지 구도를 잘 안다"고 했다.

이날 촬영에서도 전문가 못지않은 피드백이 이어졌다. 김씨는 "왼쪽과 오른쪽 카메라 가이드 선을 맞춰달라"고 요청했고, 박씨는 팔의 위치부터 시선까지 하나씩 잡아줬다.

이들은 비슷한 모임에도 여러 곳 가입해 있다. 박씨는 관련 모임 10곳 이상에 가입했고 최씨와 김씨도 각각 2곳에 가입한 상태다. 한 모임에 소속돼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기보다 그때그때 필요한 사진과 일정에 따라 여러 모임을 오가는 것이다. 카페뿐 아니라 전시회와 팝업스토어 등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기도 한다.

[서울=뉴시스]고선영 수습기자=당근마켓 모임 '인스타용 사진 찍어용!'에 최근 올라온 모임 일정. 성수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자는 설명이 있다. 2026.08.29. sunzero@newsis.com

[서울=뉴시스]고선영 수습기자=당근마켓 모임 '인스타용 사진 찍어용!'에 최근 올라온 모임 일정. 성수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자는 설명이 있다. 2026.08.29. [email protected]

계기는 달라도 목적은 같아…'조립식 소속감'

모임에 참여한 계기는 저마다 달랐다. 유튜브 MCN(멀티채널네트워크)에서 마케팅을 담당하는 박씨는 업무 차원에서 모임을 만들었다. 협찬받은 제품을 촬영할 일이 많은데 혼자 찍기보다 멤버들과 함께 촬영하는 것이 유리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히는 연습을 하기 위해 3주 전부터 모임에 나오기 시작했다. AI(인공지능) 개발자 취업을 준비하는 김씨는 자신의 증명사진을 보고 "너무 로봇 같고 어색했다"며 "고치고 싶어서 연습할 겸 참여했다"고 했다. 이날이 세 번째 참석이었다.

김씨는 "확실히 도움이 된다. 모임 초반과 후반의 표정이 다르다"고 말했다. 실제 사진에서도 촬영 후반부로 갈수록 한층 자연스러워진 그의 표정이 눈에 띄었다.

최씨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키우기 위해 모임에 가입했다. 인플루언서로 성장한 친구를 보며 자신도 SNS 활동을 부업으로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처음 참석한 뒤 벌써 15번 넘게 모임에 참여했다.

최씨는 "팔로워 2000명만 돼도 티셔츠 하나 받고, 카페에 가면 음료 한 잔이라도 받지 않느냐"며 "본업까지는 아니더라도 부업으로 계정을 키우고 싶다"고 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러한 만남을 두고 "조립하듯 내가 원할 때 만들고 또 해체하는 '조립식 소속감'"이라고 설명했다.

구 교수는 "오랫동안 지속되는 관계는 아니지만 필요할 때 새로운 관계나 모임을 만들었다가 해체하는 방식"이라며 "의무나 부담 없이 만나 취향을 공유하고 서로 힘을 불어넣어줄 수 있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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