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세 이강소의 실험은 계속된다…롯데뮤지엄서 150점 대규모 개인전
등록 2026/08/20 11:02:00

롯데뮤지엄 이강소 개인전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먹선이 화면을 휘젓고, 던져진 흙덩이는 그냥 조각이 됐다. 갈대는 거울 속에서 끝없이 증식한다.
반세기 넘게 우연과 즉흥, 생성과 소멸을 탐구해온 이강소의 실험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롯데뮤지엄이 21일부터 11월 1일까지 펼치는 개인전 '이강소: 일어나고 사라지는(Emergence and Dissolution)'은 회화와 조각, 설치, 판화, 사진, 영상 등 150여 점으로 이강소의 반세기를 펼친다.
최근 국립현대미술관과 대구미술관, 타데우스 로팍 등 국내외에서 굵직한 전시를 이어온 이강소의 작업을 이번에는 매체를 넘나든 '실험'에 초점을 맞춰 펼쳐 보인다. 특히 조각과 판화를 대규모로 구성하고, 화선지와 먹을 사용한 한국화 형식의 신작을 처음 공개한다.

롯데뮤지엄 이강소 개인전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이강소. 타데우스 로팍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1943년생인 이강소는 1970년대 한국 실험미술의 흐름을 이끈 작가다. 1969년 신체제를 시작으로 AG, 에꼴드서울 등에 참여했고 1974년 대구현대미술제 창설에도 나섰다. 회화와 조각, 설치, 퍼포먼스, 판화, 사진, 영상 등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작품을 완성된 결과가 아닌 행위와 시간, 공간과 관계가 만들어내는 과정으로 확장해왔다.
전시는 대표 회화 연작 '청명'을 기반으로 한 LED 신작으로 시작한다. 원작과 같은 크기로 제작한 거대한 화면 위를 검은 붓질이 가로지른다. 맞은편 거울은 이를 다시 반사한다. 실제와 이미지, 실재와 허상의 경계를 탐구해온 작가의 질문을 새로운 매체로 이어간 작업이다.
여러 시기에 제작한 이른바 '던지기 조각' 30여 점도 한자리에서 선보인다.

롯데뮤지엄 이강소 개인전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이강소는 흙을 정해진 형태로 빚는 대신 덩어리를 던진다. 흙이 공중을 지나 바닥에 부딪히는 순간 방향과 속도, 중력이 개입한다. 작가는 이를 통제하지 않는다. 우연히 만들어진 형태를 그대로 작품으로 받아들인다. 조각에는 완성된 형상보다 던지는 몸의 움직임과 그 순간의 시간이 남는다.
신작도 눈길을 끈다. 그동안 캔버스와 아크릴 물감을 중심으로 작업해온 이강소가 화선지와 먹 등 전통 재료를 활용해 '바람이 분다' 연작을 새롭게 제작했다. 한국화 형식으로 실험한 신작을 공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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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이후 이어온 회화도 대규모로 펼쳐진다. '청명', '무제', '섬에서' 등 주요 대형 회화 11점이 전시장을 채운다. 빠르고 절제된 붓질 사이로 오리와 사슴, 배가 나타났다가 희미해진다. 형상은 완전히 고정되지 않고 넓은 여백 속에서 관객의 기억과 감각에 따라 다른 풍경을 만들어낸다.
1970년대 실험미술을 대표하는 작품들도 다시 만난다.
1975년 파리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무제-75031'은 석고 가루 위를 닭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도록 하고 그 발자국을 작품으로 남긴 작업이다.

롯데뮤지엄 이강소 개인전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낙동강변의 갈대를 전시장으로 옮겨온 설치작품 '여백'은 이번 전시에서 새로운 공간으로 펼쳐진다. 양쪽 벽에 설치한 거울이 흰 갈대를 반복해서 반사하면서 실제 공간 너머까지 갈대숲이 이어지는 듯한 풍경을 만든다.
전시 후반에는 지금까지 공개하지 않았던 조각 20여 점을 천으로 덮은 채 선보인다. 실제 작업실에서 조각을 천으로 감싸 보관해온 방식에서 착안한 이른바 '유령조각'이다. 작품을 전시하면서도 완전히 보여주지 않는다. 천 사이로 드러나는 일부 형상을 통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경계를 다시 묻는다.

롯데뮤지엄 이강소 개인전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1973년 첫 개인전에서 선보인 '소멸'도 재현한다. 당시 이강소는 명동화랑에 선술집의 탁자와 의자, 술잔을 옮겨놓고 일주일간 실제 선술집처럼 운영했다. 작가는 뒤로 물러나고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대화하며 만들어내는 시간과 관계가 작품이 됐다.
이번 전시에서는 단순한 재현 대신 한국의 마당 문화에서 착안한 평상을 설치했다. 관객이 자유롭게 머물고 대화하면서 50여 년 전 시작된 '관계의 장'에 다시 참여하도록 했다.
이강소는 "돌아보면 나의 작업을 관통하는 질문은 결국 '예상하지 못한 것을 어떻게 만나는가'였다"며 "관객들이 자신의 경험과 감정에 따라 작품을 자유롭게 바라보고 저마다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롯데뮤지엄 이강소 개인전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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