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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절판본…열린 미술관은 무엇으로 신뢰를 지킬까[박현주 아트클럽]

등록 2026/08/01 10:54:57

수정 2026/08/01 11:02:24

유영국 전시 절판본 분실 "돌려달라" 공지

마틴 파 사진책 열람이 던진 같은 질문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서울시립미술관 본관에서 한국 추상 미술의 선구자 유영국 탄생 110주년기념전이 열리고 있다. 2026.05.18.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서울시립미술관 본관에서 한국 추상 미술의 선구자 유영국 탄생 110주년기념전이 열리고 있다. 2026.05.18.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서울시립미술관이 지금도 한 권의 책을 기다리고 있다.

유영국 탄생 110주년 회고전 '유영국: 산은 내 안에 있다' 전시장에 열람용으로 비치했던 절판본 『유영국: 삶과 창조의 지평』(오광수)이 전시 기간 중 사라졌다.

외부 기관에서 어렵게 빌려온, 재발행도 불가능한 절판본이었다.

최근 미술관은 안내문을 통해 "가져가신 분은 꼭 돌려주시기 바란다"고 호소했고, 관계자는 "다들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사라진 것은 책 한 권이지만, 이 사건은 참여형 미술관이 안고 있는 새로운 과제를 드러냈다. 최근 미술관은 작품을 바라보는 공간에서 작품을 경험하는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기록을 읽고, 작품을 만지고, 전시장에 오래 머무는 시간까지 전시의 일부가 되는 시대다.

서울시립미술관 안내문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시립미술관 안내문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서울시립사진미술관 '마틴 파: We Are Martin Parr' 전시장에 마련된 포토북 열람 공간. 가구 브랜드 알소(Arso)가 협찬한 소파에 앉아 마틴 파의 사진책을 자유롭게 펼쳐볼 수 있도록 꾸몄다.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서울시립사진미술관 '마틴 파: We Are Martin Parr' 전시장에 마련된 포토북 열람 공간. 가구 브랜드 알소(Arso)가 협찬한 소파에 앉아 마틴 파의 사진책을 자유롭게 펼쳐볼 수 있도록 꾸몄다. *재판매 및 DB 금지

지난달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에서 열린 마틴 파 전시는 사진집 90권을 자유롭게 펼쳐 읽을 수 있도록 구성했다. 당시 손현정 학예연구사는 "분실 위험도 있었지만 책을 직접 보여주는 것 자체가 전시의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위험을 알면서도 자유 열람 방식을 선택한 이유는 분명했다.

책을 읽는 경험 자체가 전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여와 개방은 새로운 책임도 함께 요구한다. 지난 4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에서는 관람객이 직접 만질 수 있도록 설치한 고사리 작가의 작품 '건져올린 돌' 일부가 전시 도중 사라졌다. 이번에는 절판본이다. 대상은 달랐지만 두 사건은 같은 질문을 던진다. 열린 미술관은 무엇으로 신뢰를 지킬 것인가.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서울시립사진미술관  현대 사진의 거장 마틴 파(Martin Parr)의 대규모 회고전 전경.  2026.07.15.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서울시립사진미술관  현대 사진의 거장 마틴 파(Martin Parr)의 대규모 회고전 전경.  2026.07.15. [email protected]

귀한 책을 누구나 펼쳐볼 수 있도록 한 것은 위험을 감수한 선택이었다. 그 선택은 운영의 허점이었을까, 아니면 포기할 수 없는 전시 철학이었을까. 미술관은 원래 사람을 믿는 공간이다. 관람객 모두를 잠재적 범죄자로 전제하지 않는다. 그 신뢰 위에서 우리는 작품을 보고, 책을 읽고, 예술을 경험한다.

물론 신뢰는 관리의 반대말이 아니다. 절판본처럼 대체 불가능한 자료라면 복제본을 활용하거나, 원본은 관리자가 있는 열람 공간에서 공개하는 방식도 검토할 수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역시 관람객 증가에 맞춰 안전관리 인력을 추가 배치하고, 자유 열람 도서와 전시물 관리 교육을 강화했다고 밝혔다. 참여형 전시의 취지를 유지하면서도 운영을 보완하려는 움직임이다.

이 고민은 이제 한 미술관만의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 미술관은 더 많이 열릴 것이다. 작품을 만지고, 기록을 읽고, 공간에 오래 머무는 전시는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미술관이 고민해야 할 것은 얼마나 개방할 것인가가 아니라 그 개방을 어떻게 오래 지켜낼 것인가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이것은 개념미술이 (아니)다' 전시장 입구. 2026.06.18.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이것은 개념미술이 (아니)다' 전시장 입구. 2026.06.18. [email protected]

좋은 전시는 관람객을 신뢰한다.

좋은 운영은 그 신뢰를 오래 지켜낸다.

그 믿음은 제도 위에서 더 오래 살아남는다.

신뢰와 무방비는 같은 말이 아니다.

사라진 것은 절판본 한 권이었다. 그러나 미술관이 끝까지 지켜야 하는 것은 열린 미술관을 가능하게 하는 신뢰의 방식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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