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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스맨' 최항석, 덜어낸 여백으로 껴안은 삶의 애환…'휴먼 스크램블'

등록 2026/07/13 05:00:00

최항석과 부기몬스터의 네 번째 정규 앨범 '휴먼 스크램블' 발매 기념 인터뷰

[서울=뉴시스] 최항석. (사진 = 최항석과 부기몬스터 제공) 2026.07.1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최항석. (사진 = 최항석과 부기몬스터 제공) 2026.07.1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블루스는 덜어냄의 미학이다. 빽빽하게 음표를 채워 넣는 대신 의도된 결핍을 만들고, 그 비어있는 자리에 삶의 애환을 가만히 내려놓는 음악이다. 요컨대 블루스의 본질은 공간감과 여백에 있다. 국내 블루스 신(scene)을 든든하게 지탱하고 있는 밴드 '최항석과 부기몬스터'를 이끄는 최항석의 음악이 각별한 이유는 바로 이 역설적인 물리량의 충돌에서 온다.

그는 무대 위에서 단연 시선을 압도하는 거구의 사내다. 하지만 그의 육중한 체구가 만들어내는 음악의 품은 결코 답답하거나 억압적이지 않다. 오히려 그 커다란 덩치는 세상의 모진 풍파를 막아주는 든든한 방파제가 돼, 음악 속에 더 넓고 안전한 여백을 마련해 둔다. 자신의 신체적 특징을 유머러스하게 관조하며 한국대중음악상 후보에 올랐던 대표곡 '난 뚱뚱해'가 단순한 자조를 넘어 뭉클한 삶의 긍정으로 가닿았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덩치가 큰 블루스맨이 조심스럽게 비워둔 그 여백 안으로 들어가면, 기이하게도 상처가 치유되는 넉넉한 행복감이 밀려온다.

최근 발매된 최항석과 부기몬스터의 네 번째 정규 앨범 '휴먼 스크램블(Human Scramble)'은 그 넉넉한 여백에 타인과의 관계에서 파생되는 절망과 미움, 그리고 기필코 당도하고야 마는 사랑을 채워 넣은 작품이다. 미국 멤피스의 전설적인 '로열 스튜디오'에서 그래미상 수상 프로듀서 부 미첼과 협업해 정통 블루스의 질감을 정교하게 세공하면서도, 판소리를 결합한 '사랑가 블루스'나 일상의 페이소스를 해학적으로 풀어낸 '당뇨병' 등 한국적인 끈끈함을 잃지 않았다.

음악평론가 조일동(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의 상찬은 이 앨범이 지향하는 윤리적 태도를 정확히 짚어낸다. 그는 "매일의 우울함(blue)을 삶을 버티게 하는 힘(blues)으로 바꾸는 마법 같은 앨범"이라며 "세상 풍파 속에서도 하루를 버텨내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블루스로 경배하는 작품"이라고 특기했다.

스스로의 상처를 끌어안는 것을 넘어, 과거 자신이 상처 입혔을지 모를 타인들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사과하며 이번 앨범의 밑그림을 그렸다는 최항석. 삶의 막다른 길조차 새로운 시작의 여백으로 뒤바꾸는 이 넉넉한 블루스맨과 나눈 대화를 여기 전한다. 다음은 그와 주고 받은 일문일답.

-요즘 같은 시대에 정규를 내게 된 과정에 고민이 많으셨을 것 같은데요.

"고민은 없었습니다. 사람은 매년 계속 변해가지 않습니까. 이번 앨범은 제 음악 인생의 '일기'입니다. 3년 동안 쌓아온 일기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정규 앨범으로 계속 낼 생각입니다. 2, 3년에 한 번 정도는 정규 단위의 앨범을 꼭 발매하고 싶습니다."

-이번 앨범은 미국 멤피스의 로열 스튜디오(Royal Studios)에서 작업하셨습니다.

"전에는 백인들이 주로 가는 스튜디오, 즉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앨범을 녹음했던 아덴트(Ardent) 스튜디오에서 녹음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흑인들의 완전한 솔이 살아있는 멤피스 로열 스튜디오에 녹음했어요. 진짜 블루스 아티스트들이 섰던 스튜디오에서 녹음해 너무 행복했습니다. 블루스 회의를 하러, 매년 미국에 가는데요. 현지에는 10년 가까이 우정을 나눈 부기몬스터 미국 멤버들이 있습니다. 릭 쇼트(Rick Short·색소폰), 대니 윌리엄스(Danny Williams·베이스), 페데리코 사무엘(Federico Samuel·드럼)과 같이 꾸준히 공연도 하고 미국 방송도 나갔습니다. 이 좋은 친구들과 녹음할 기회가 생겨 너무 좋았어요. 이 친구들과 함께 미국 투어를 도는 것이 꿈입니다."

-타이틀곡 '막다른 길'은 여러 은유가 담겨 있고 고민도 많이 하신 노래 같습니다.

"원래 길 시리즈의 일환으로 '내리막길'이라는 노래를 만들어 정인 씨와 함께 부르려 했습니다. 정인 씨가 '오르막길'을 냈으니 유머러스하게 '내리막길'을 하려 했던 겁니다. 그런데 윤종신 씨가 '내리막길'을 먼저 발매하셔서, 방향을 틀어 '막다른 길'로 정했습니다. 좋게 올라가다 내리막길로 쭉 떨어지며 끝까지 버티다 다다른 곳이 막다른 길인데, 진짜 끝인 줄 알았더니 그게 새로운 시작이더군요. 다시 돌아 나와 새로 시작할 수 있었던 제 경험들을 가사에 담았습니다."

[서울=뉴시스] 최항석과 부기몬스터. (사진 = 최항석과 부기몬스터 제공) 2026.07.1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최항석과 부기몬스터. (사진 = 최항석과 부기몬스터 제공) 2026.07.1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힘든 상황을 이겨내는 힘이 특유의 위트와 리듬감으로 치환돼 무척 인상 깊습니다. 이번 앨범에선 판소리 '춘향가'를 블루스의 화법으로 부르신 '사랑가 블루스' 역시 인상적이었는데요.

"퓨전 국악이라는 형태를 피하고, 블루스의 색깔 안에 온전히 국악을 담고 싶었습니다. 기원은 블루스 대부 이정선 형님입니다. '항구의 밤'을 부르시며 '블루스는 뽕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트로트와는 다른, 한국인이라면 다 가지고 있는 뽕의 감성이 블루스와 맞닿아 있다는 겁니다. 밴드 두번째달 역시 국악의 원형을 훼손하지 않고 훌륭하게 믹스업을 해냈듯, 저도 미국인이 들으면 그저 정통 블루스인데 한국인이 들으면 판소리 '사랑가'라고 느끼게끔 새롭게 해석해 봤습니다."

-서로를 침범하지 않은 영역에서 공존하며 공간감이 풍성한 음악이 블루스라는 걸 최항석과 부기몬스터 노래를 듣고 깨달았어요. 항석 씨 삶 자체가 블루스의 문헌 같습니다. 앨범 서문격인 '휴먼 스크램블'을 비롯 트랙리스트 배치에도 고민한 흔적이 느껴집니다.

"'휴먼 스크램블'은 앨범 전체를 아우르는 곡입니다. 50대의 일기를 쓰다 보니 인간관계에서 꼬인 부분들이 가장 큰 고통이었습니다. 상처를 주고받은 기억들을 나열했습니다. 예전 사업할 때 직원들에게 스트릭트(strict)하게 굴었던 시절 등 제 삶을 50세가 돼서야 돌아보고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행복과 감사를 노래하다 보니 제 심성도 변하더군요. 제가 상처 줬던 사람들, 피해를 입었을지도 모를 분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먼저 사과했습니다. 흔쾌히 받아준 그분들에게 감사했습니다. 이 앨범은 그 시점에 느낀 사과와 인간사의 희로애락을 담았습니다."

-정인 씨와는 결국 다른 곡('이 노래만 기억하는 얘기')으로 듀엣을 하게 되셨네요. 김건모, 신승훈, 유재하, 변진섭, 이문세 등 우리나라 대표 뮤지션들의 성함이 나오는데 모두 허락을 받으셨다고요. 이 노래는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합정역 LP 바에서 변진섭 형의 MBC 신인가요제 데뷔곡 '우리의 사랑 이야기'를 듣는데, 그 시절 아름다웠던 감정만 오롯이 남고 기억은 다 흐릿해졌더군요. 유재하의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신성우의 '슬픔이 올 때', 신승훈의 '오늘같이 이런 창밖이 좋아', 강수지의 '보랏빛 향기', 김건모의 '넌 친구? 난 연인!' 등 제 마음속에 남은 옛 명곡들을 되짚으며 그 따뜻한 감정만 남았다는 이야기를 썼습니다."

-왜 이 곡의 파트너로 정인 씨를 낙점하셨나요.

"밴드를 하면서 대한민국 3대 여가수인 정인, 거미, 박정현 씨와 듀엣을 하는 게 꿈이었습니다. 지인인 기타리스트 박주원, 그리고 정엽과 술자리에서 정인 씨를 만나 제 꿈을 말하며 적극적으로 낚시 미끼를 던졌고 흔쾌히 불러 주겠다고 하셔서 성사됐습니다."

-'사랑의 늪'의 뉴올리언스 브라스 라인도 기가 막히더라고요.

"이 곡의 브라스 라인은 다 틀어져 있습니다. 자유롭게 뻗어나가는 정통 뉴올리언스 라인입니다. 2024년 밴드 멤버들과 뉴올리언스에 갔을 때 역대 100년 만의 한파가 왔습니다. 늪지대 강물에 강아지가 얼어 죽어 있는 걸 보고 늪에 빠진 세상을 생각했습니다. 우리를 늪에 빠뜨리는 가장 큰 이유가 결국 사랑 아닐까 생각해서 만들게 됐습니다."

[서울=뉴시스] 최항석과 부기몬스터. (사진 = 최항석과 부기몬스터 제공) 2026.07.1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최항석과 부기몬스터. (사진 = 최항석과 부기몬스터 제공) 2026.07.1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항석 씨 음악에는 꽉 찬 소리뿐만 아니라 빈 공간과 여백, 멈춤의 미학이 느껴집니다.

"쉼표도 악보입니다. 빈 공간이 숨을 쉬게 만듭니다. 미국 내슈빌 스털링 사운드(Sterling Sound)의 라이언 스미스(Ryan Smith)와 마스터링 작업을 하는데, 볼륨을 키우려 목소리를 누르는 일명 '코리아 스타일' 대신, 다이내믹 레인지를 넓게 벌리는 '아메리칸 스타일'로 부탁합니다. 볼륨은 타 곡보다 작아도 헤드룸과 음 격차를 넓혀 두어 공간감을 살렸습니다."

-그래서 음악이 껴안는 느낌을 주는 것 같습니다.

"제 앨범의 퀄리티는 라이브와 똑같아야 한다는 철칙이 있어, 베스트 테이크를 짜깁기하기보다는 피치가 좀 나가도 원테이크 라이브 레코딩을 고수합니다. 완성형 스튜디오 퀄리티를 원해 제 방식을 싫어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어릴 적 좋아했던 외국 밴드의 라이브 실황을 보고 실망했던 경험 때문에 라이브 퀄리티를 앨범과 동일하게 맞춥니다."

-항석 씨는 자기 연민 없이 삶을 긍정하는 태도가 윤리적입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개인적으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내 마이너, 소수 장르에 대한 연민을 함부로 갖고 있었는데 그게 오만한 태도 같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습니다. 항석 씨는 국내 인디 신, 마이너 장르에 대해 함부로 판단을 내리지 않을 거 같아요.

"본업을 하며 음악을 병행하는 건 칭찬받을 용기입니다. 직장인 밴드를 폄하하듯 쓰는 건 잘못됐습니다. 미국에선 '위크엔드 밴드(Weekend Band)'라 부르며 존중합니다. 펄 잼(Pearl Jam)은 주유소 직원이었고, 머틀리 크루(Mötley Crüe) 멤버들은 피자 배달부였습니다. 대중의 마음에 가닿는 히트곡을 쓰지 못했을 뿐이지 장르의 잘못이 아닙니다. '도망가자'라는 히트곡을 낸 선우정아 씨가 재즈 기반임에도 큰 사랑을 받듯, 표현 방법이 대중에게 잘 전해진다면 마이너 장르는 없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K-팝 아이돌 위주로만 조명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나요?

"고궁음악회 총감독과 동남아 '코리아 OST 콘서트' 음악 감독을 했습니다. 엑소 첸 같은 K-팝 아이돌도 있었지만 동남아 현지에서 가장 폭발적인 인기를 끈 가수는 김범수였습니다. 1만5000명 아레나가 꽉 찼고 수많은 인파가 '보고 싶다'를 떼창했습니다. 이무진, 헤이즈의 인기도 엄청났습니다. 좋은 음악을 하면 글로벌 무대에서 장르의 국경 없이 통합니다."

-음반이 일기인 만큼, 4집 이후 지금 삶들이 다음 5집에 묻어나겠죠. 차기작에 대한 힌트나 고민이 있다면요.

"제 스스로 모든 걸 다 안고 가기보다, 좋은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시너지가 나는, 남들이 안 해본 새로운 작업을 해보고 싶습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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