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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분노③] "월급 다 월세로"…佛대선·스페인 총선판 흔드나

등록 2026/10/24 06:04:00

마크롱 콘서트 논란·스페인 주거난…집권세력 책임론 부상

68혁명 뒤 드골파 압승·美 닉슨 당선…‘질서 회복’ 표심 주목

[리옹=AP/뉴시스] 2일(현지 시간) 프랑스 리옹에서 열악한 학교 환경에 대한 항의 시위에 참여한 고등학생들이 ‘불공정한 개혁, 분노한 청년!’ 등의 내용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교사 부족, 과밀 학급, 낡은 시설 등 열악한 교육 환경에 거리로 나선 고등학생들의 시위가 격해지고 있다. 2026.10.03.

[리옹=AP/뉴시스] 2일(현지 시간) 프랑스 리옹에서 열악한 학교 환경에 대한 항의 시위에 참여한 고등학생들이 ‘불공정한 개혁, 분노한 청년!’ 등의 내용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교사 부족, 과밀 학급, 낡은 시설 등 열악한 교육 환경에 거리로 나선 고등학생들의 시위가 격해지고 있다. 2026.10.03.

[서울=뉴시스]박영환 기자 = “집을 구합니다. 신장(腎臟)을 팔아서라도 삽니다.”

 지난 3일 스페인 마드리드의 주거권 집회에 등장한 문구다. 치솟는 주거비와 물가, 열악한 교육 환경에 분노한 유럽 청년들이 거리로 나서면서 선거를 앞둔 각국 집권세력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생활고에서 출발한 시위는 파리 등 일부 도시에서 방화·약탈로 번지고, 스페인에서는 조기총선을 촉발하는 등 유럽을 뒤흔들고 있다.

22일(현지시간) AP통신과 영국 가디언 등에 따르면 프랑스·스페인·이탈리아·포르투갈 등에서 교육·주거·공공서비스 개선을 요구하는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스페인에서는 긴급 주거 대책의 의회 부결이 다음 달 29일 조기총선으로 이어졌다. 내년 4월 대선을 치르는 프랑스와 내년 총선을 앞둔 이탈리아에서도 생활고와 정부의 시위 대응이 주요 선거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학생 시위에 노동계와 ‘노란 조끼’ 운동(생활비 부담 등에 항의한 프랑스 시민 시위 운동)까지 가세한 프랑스의 정치권도 격랑에 휩싸였다. 청년 주도 시위는 내년 4월 치러질 프랑스 대선의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연속 세 번째 임기에 도전할 수 없는 가운데, 교육과 생활고에 대한 분노가 집권 10년의 책임을 묻는 여론으로 번지고 있다.

임기 말을 맞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최악의 정치적 위기에 몰렸다. 마크롱 대통령은 시위대의 폭력과 약탈에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으나, 지난 17일 대규모 시위 전날 셀린 디옹 콘서트장에서 사진이 찍히고 폭동 직후 연료 공급 협상을 이유로 해외 출장에 나서면서 민심 이반을 자초했다.가디언은 마크롱 부부를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에 빗대는 비판까지 나왔다고 전했다.

【파리=AP/뉴시스】프랑스 경찰관들이 1일(현지시간) 파리 노동절 시위 현장에서 한 참가자를 몽둥이로 때리며 진압하고 있다. 이날 일부 청년들은 경찰에 화염병을 던지며 폭력시위를 벌였다. 2017.05.02

【파리=AP/뉴시스】프랑스 경찰관들이 1일(현지시간) 파리 노동절 시위 현장에서 한 참가자를 몽둥이로 때리며 진압하고 있다. 이날 일부 청년들은 경찰에 화염병을 던지며 폭력시위를 벌였다. 2017.05.02

차기 대선 주자들은 즉각 현 정부와 거리를 두며 셈법 계산에 들어갔다. 급진좌파 정당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의 대선 주자 장뤼크 멜랑숑은 교육·공공서비스 개선 등 시위대의 요구를 지지하면서도 약탈과 기물 파손을 비판했다. 지난 13일 파리 학생 시위 현장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며 좌파 결집을 시도했다. 그러나 시위가 방화와 약탈로 변질되면서 중도와 우파 진영으로부터 폭력 사태를 부추겼다는 집중포화를 맞아 중도층 표심이 이탈할 위기에 처해 있다.

마크롱 대통령의 잠재적 후계자로 꼽히는 에두아르 필리프 전 총리와 가브리엘 아탈 전 총리 등 범여권 인사들은 폭력을 규탄하며 국가 권위 회복을 외치고 있지만, 현 정부의 국정 실패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해 지지율 확장에 애를 먹고 있다. 이들은 정부의 성과를 계승하면서도 민생과 치안 실패에 대한 책임론을 넘어야 한다. 좌파는 생활고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극우는 시위 현장의 폭력을 막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이들은 양쪽의 공격에 대응하면서 기존 지지층의 이탈을 막고 중도층의 지지도 얻어야 한다.

시위 격화 이후 발표된 각종 여론조사는 극우 진영의 우위를 수치로 입증하고 있다. IFOP가 지난 17~19일 등록유권자 1928명을 조사한 결과, 에두아르 필리프 전 총리를 중도 진영 후보로 가정한 문항에서 극우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은 36%를 기록했다. 멜랑숑은 16.5%, 필리프는 15%였다.  르펜과 조르당 바르델라는 경찰력 확충과 처벌 강화를 앞세우며 거리의 분노를 대선 투표로 연결하려 하고 있다.

스페인에서는 87세 세입자 마리카르멘 아바스칼의 퇴거가 주거 시위에 불을 붙였다. 그는 옛 임대계약의 승계 효력을 놓고 부동산 투자회사 우르바헤스티온과 소송을 벌인 끝에 지난달 23일 퇴거당했다. 세입자단체에 따르면 새 계약으로 제시된 월세는 기존 500유로보다 230% 높은 1650유로였다. 들것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진 그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달 7일 숨졌다.

[파리=AP/뉴시스] 조르당 바르델라 국민연합(RN) 대표(오른쪽)가 24일(현지시각) 마린 르펜 의원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기자회견 후 자리를 뜨고 있다. 2024.06.25.

[파리=AP/뉴시스] 조르당 바르델라 국민연합(RN) 대표(오른쪽)가 24일(현지시각) 마린 르펜 의원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기자회견 후 자리를 뜨고 있다. 2024.06.25.

그의 사연은 비싼 월세 때문에 살 집을 구하기 어려운 청년들의 공감을 샀다. 스페인청년위원회(CJE)가 지난 5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주택 한 채의 평균 월세는 1176유로로, 청년 평균 월급의 98.7%에 해당했다. 취업하고도 부모 집을 떠나기 어려운 청년들과 연금으로 살던 집을 지키려는 고령층에게 주거 문제가 공통의 위협이 된 것이다.

퇴거 이후 마드리드 푸에르타 델 솔 광장에서 시작된 천막 농성은 다른 도시로 확산했다. 정부가 내놓은 퇴거 유예와 임대계약 보호 대책은 지난 2일 의회에서 부결됐다.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사흘 뒤 의회 해산과 11월 29일 조기총선 소집을 발표했다. 주거난이 정권의 명운을 가르는 선거 의제로 옮겨간 셈이다.

GAD3가 ABC 의뢰로 지난 6~8일 유권자 1077명을 조사한 결과, 중도우파 국민당(PP)과 극우 복스의 합계 의석은 198석으로 추정돼 하원 과반인 176석을 넘었다. 산체스 총리는 대책을 막은 야권의 책임을 부각할 수 있지만, 집권 기간 주거난을 해결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피하기 어렵다. 좌파 지지층의 불만이 재결집으로 이어질지, 기권이나 지지 분산으로 나타날지가 변수다.

이 같은 흐름은 이탈리아 등 주변국과 대서양 건너 미국 선거판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물가 상승률이 4.2%까지 치솟은 이탈리아에서는 토리노와 밀라노 등지에서 청년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해 미성년자 등 271명이 체포됐고, 신생 단체인 10·17 운동이 매주 주말 상시 시위를 선언해 조르자 멜로니 총리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베이징=AP/뉴시스]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의 방중이 21일로 50주년을 맞았다. 1972년 2월 21일 닉슨 전 대통령이 베이징에서 마오쩌둥 중국 전 국가주석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2022.02.21

[베이징=AP/뉴시스]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의 방중이 21일로 50주년을 맞았다. 1972년 2월 21일 닉슨 전 대통령이 베이징에서 마오쩌둥 중국 전 국가주석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2022.02.21

조르자 멜로니 총리는 밀라노 소요 이후 병력 추가 배치와 처벌 강화를 추진했다. 강경 대응이 질서 회복으로 평가받으려면 시위의 배경인 생활 문제에도 답해야 한다. 우파 정부 역시 민생 불만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유럽 안팎에서는 지금의 청년 시위를 1968년 프랑스를 시작으로 세상을 바꿨던 68혁명과 비교하는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열악한 교육 환경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이 기폭제가 됐고, 이것이 노동계 파업과 결합하며 기성세대와 국가 권위주의에 대한 전면적인 불신으로 폭발했다는 점은 58년 전과 맞닿아 있다.

다만 정치 전문가들은 시위의 격화와 무질서가 다수 중산층 유권자의 치안 불안을 자극하면서, 결과적으로 르펜 등 강경 우파 세력에게 유리한 정치적 공간을 열어주고 있다고 분석한다. 과거에도 기성 권위에 도전하는 시위가 거셌지만, 유권자들은 오히려 집권 우파에 힘을 실었다. 1968년 5월 혁명 직후인 6월 총선에서 드골파인 공화국민주연합(UDR)은 전체 487석 가운데 293석을 확보하며 단독 과반을 달성했다. 사회적 혼란 속에서 유권자들의 표심이 개혁 요구보다 질서 회복에 기울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같은 해 미국에서는 베트남전 반대 시위와 인종 갈등에 마틴 루서 킹 목사와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 암살까지 겹쳤다. 공화당 리처드 닉슨 후보는 ‘법과 질서’를 앞세워 민주당의 휴버트 험프리 후보를 꺾었다. 사회를 바꾸려는 운동이 확산하는 가운데 불안과 혼란을 끝내겠다는 보수 정치인의 호소도 힘을 얻었다.

유럽 정치권의 시선은 이제 24일로 예고된 프랑스 등 유럽 주요국의 대규모 집회에 쏠려 있다. 가디언 등 주요 외신은 프랑스 당국이 폭력 사태를 막겠다며 리옹 지역의 집회를 전면 금지하고 병력 투입 가능성까지 열어둔 가운데, 이번 주말 시위가 유럽 선거판의 지형 변화 속도를 결정할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서울=뉴시스] 유럽 주요국 시위 현황과 선거 일정. (그래픽=전진우 기자) 618tue@newsis.com

[서울=뉴시스] 유럽 주요국 시위 현황과 선거 일정. (그래픽=전진우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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