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칩 포스트 갱, 매끈한 알고리즘 찢는 파열음…불협이 빚어낸 가장 다정한 '우리'

등록 2026/09/15 08:28:00

수정 2026/09/15 08:38:16

첫 정규 '우리가우리라고부르는것들' 낸 3인조 밴드 인터뷰

74팀 운집한 신촌 '패치룸 페스티벌' 성료

종이 잡지와 신촌 클럽 엮어 세운 자생의 영토

"오차는 결함 아닌 필연의 궤적"

[서울=뉴시스] 칩 포스트 갱. (사진 = 밴드 제공) 2026.09.1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칩 포스트 갱. (사진 = 밴드 제공) 2026.09.14.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소리가 매끄럽게 보정될수록 세계의 결함은 쉽게 은폐된다. 오차를 결함으로 규정하고 불협을 제거하는 매끈한 디지털의 질서 속에서, 3인조 인디 록 밴드 '칩 포스트 갱(Chip Post Gang)'(오상욱·션·지수민)은 거친 파열음과 노이즈를 원시의 언어로 밀어 올린다. 스스로를 '케이브맨 노이즈 록'이라 부르는 이들의 음악은 세련된 규칙을 학습하기보다, 실수와 미숙함마저 존재의 필연적인 궤적으로 껴안는 태도에서 출발한다.

이들의 실천은 소리에 머물지 않고 활자의 물성(物性)으로 육화된다. 알고리즘의 간택을 기다려야 하는 디지털 플랫폼의 휘발성을 거스른 채, 멤버들이 직접 손으로 깁고 인쇄해 공간에 부려놓은 무료 계간지 '패치룸(PATCHROOM)'이 그 증좌다. 홍대와 신촌 일대 인디 밴드들의 미시문화를 종이 위에 묵직하게 새겨 넣는 이 아날로그식 기록은, 자본의 논리가 닿지 않는 주변부의 작은 목소리들을 흩어지지 않게 붙잡는 단단한 지반이 됐다. 손때 묻는 종이를 매개로 형성된 이 실체적인 유대는 곧 음악인과 관객을 물리적으로 엮어내는 힘으로 작동했다.

최근 신촌의 오래된 골목과 클럽들을 깨워 74팀의 동료들과 함께 일궈낸 '패치룸 페스티벌' 역시 이 종이 잡지가 품어온 온기가 공간으로 고스란히 확장된 현장이었다. 타인을 배제함으로써 안온해지는 '우리'가 아니라, 서로 다른 불협이 끝없이 부딪히고 마찰하며 매 순간 경계를 넓혀가는 환대의 자리. 최근 발매한 정규 1집 '우리가우리라고부르는것들'과 사흘간의 축제는, 종이와 무대라는 가장 원초적인 통로를 통해 일궈낸 자생적 생태계의 증거다.

'2회는 없다'는 무심한 선언 뒤에는, 스스로 판을 꾸릴 수 있는 힘을 다음 세대에 온전히 물려주겠다는 단단한 부채 의식과 신뢰가 깃들어 있다. 멈추지 않는 합주처럼 어긋남을 동력 삼아 앞으로 나아가는 세 청년의 목소리는, 지금 우리가 디디고 선 인디 신의 가장 정직하고 다정한 지반을 가리킨다. 다음은 축제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날, 서울 종로에서 칩 포스트 갱과 만나 나눈 이야기다. 다음은 오상욱(기타), 션(드럼), 지수민(베이스) 칩 포스트 갱 세 멤버와 나눈 일문일답.

-칩 포스트 갱이 주최한 패치룸 페스티벌이 성료됐습니다. 최근 몇 달간 숨 가쁘게 달려왔는데 각자 소회가 어떤가요.

오상욱 "어느 정도 바쁘면 임계점이 넘어가 버립니다. 셋 다 바빴고 특히 션은 '릴리 잇 머신' 2집 작업과 일정이 겹쳐 거의 6개월 동안 뭘 했는지 모를 정도로 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임계점을 넘어서니 그 모든 일들이 마치 없었던 일처럼 느껴져 버리는 상태까지 와버렸습니다. 일은 아직 남아 있는데 큰불들은 끝나버려서 오히려 지금이 이상한 기분입니다. 정산은 완전히 끝났고 1집 일정들만 남았는데, 페스티벌보다는 작은 일들이라 바쁘지만 약간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지수민 "살짝 허전한 마음까지 듭니다. 페스티벌 직전처럼 정신없이 바쁘고 그러지 않으니까요. 사실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이번에 운영이 매끄러웠던 점은 좋았지만, 배리어 프리(Barrier-free)처럼 저희가 좀 더 신경 쓰고 싶었던 지점들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하지만 이제 지나간 일들에 크게 연연하지 않으려 하고 있고, 직전까지 바쁘던 일들이 싹 사라져서 지금은 약간 허무한 기분이 들 정도입니다."

션 "소회라고 한다면, 제가 보고 자란 무대들이 있잖아요. 예전 잔다리 페스타,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 같은 흐름을 제 손으로 직접 구현해 냈다는 사실이 아직도 얼떨떨합니다. 안 믿기고 꿈을 꾼 것 같고 실제로 일어난 일 같지가 않습니다. 다들 고생했다고 말씀해 주시는데 뭔가 순식간에 지나간 것 같아서 기분이 참 묘합니다."

오상욱 "진행 중에는 당장 눈앞에서 처리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별생각이 없었습니다. 행사 당일들은 더더욱 그랬고요. 끝나고 나서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이걸 어떻게 다루고 이야기하는지를 보면서 '생각보다 더 컸구나, 생각보다 더 오래 이야기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희끼리는 행사에 돌입하기 전 이미 내부적으로 '2회는 하지 않겠다'는 결론을 어느 정도 내려놓은 상태였습니다. 그 결론을 내려놓고 문장들을 다듬은 뒤 발표를 한 건데, 막상 끝나고 나서 모든 감각들이 돌아오니 그 결론을 정해놓은 입장에서는 사람들의 이 기분과 열기에 찬물을 끼얹는 기분이 들어서 마음이 조금 아팠습니다."

-인지도가 높은 밴드부터 '고슴도치클럽'처럼 낯선 신생 팀까지 74팀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타임테이블과 라인업을 짤 때 어떤 원칙이 있었나요.

션 "라인업을 통해 인디 신의 흐름을 선형적으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대형 페스티벌들을 보면 낮 시간대에는 덜 유명한 밴드들을 세우고 뒤 타임일수록 유명한 밴드들을 배치하잖아요. 오직 인지도만으로 줄을 세우는 방식이 좀 싫었습니다. 우리가 보고 자란 사람들, 지금 우리와 함께 부딪히는 동료들, 바로 윗세대와 아랫세대, 그리고 지금 시작하는 신진 음악인들까지 하나의 선형적인 흐름으로 엮어보고자 했습니다. 다행히 제가 두 팀을 병행하며 개인 통산 공연을 100번쯤 하게 되면서 만난 팀들이 많았습니다. 통영프린지 같은 곳에 가서 단편선순간들 같은 분을 뵙고 '이거 어때요?'라고 제안할 수도 있었고, 신진 팀들에게도 '우리 이런 거 하는데 같이하자'고 말할 수 있는 중간 사다리 역할이 가능한 입장이다 보니 이런 큐레이팅이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오상욱 "큐레이팅의 기본 골자는 션이 주도했습니다. 이야기를 조금 더 보태자면 칩 포스트 갱이라는 팀이 음악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신촌의 하드코어 신과 클래식한 인디펜던트 밴드 문화 그 사이 어디쯤에 위치한 팀입니다. 종종 '문화적 디아스포라'에 놓여 있다고 농담 아닌 농담을 하곤 했는데, 오히려 그런 팀이다 보니 흐름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다른 팀들에게 "우린 이런 걸 하고 싶다"는 뜻을 온전히 전달하기에 참 좋았던 것 같습니다."

션 "그런 디아스포라적인 위치가 라인업을 짜는 데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베뉴가 5개이다 보니 공연 시간이 겹칠 수밖에 없었는데, 공연이 겹치면 비슷한 결을 가진 팀들을 동일 시간대에 배치하거나 이 밴드를 좋아할 관객이 좋아할 만한 밴드를 다른 베뉴의 같은 시간대에 배치했습니다. 저희가 회색지대에서 지켜본 많은 것들을 기반으로 관객들이 새로운 음악을 자연스럽게 '발견'하기를 의도했습니다."

지수민 "생각보다 정교하게, 마치 미술관의 전시 동선이나 산업디자인의 공식들처럼 논리적으로 짜인 라인업이었습니다. 74팀이나 나오면 인지도가 없는 팀들은 덜 보지 않겠느냐는 질문도 받았지만, 기획 초기 단계부터 이렇게 동선을 짜면 관객들이 볼 수밖에 없다는 확신과 계산이 있었습니다."

오상욱 "그래서 소개 글 하나하나 멤버들이 직접 쓰며 공을 들였습니다. 예산이 넉넉하지 않은 독립 기획에서 기댈 것은 진심으로 부딪히는 것밖에 없었고, 관객들이 오고 싶어지는 구조를 초기 단계에서부터 미리 만들어 뒀습니다. 끝나고 돌아보니 베뉴들이 이른 시간부터 꽉 차던 현상들은 단순한 운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런 마음을 가지고 촘촘하게 쌓아 올린 의도이자 결과였다고 생각합니다."

[서울=뉴시스] 칩 포스트 갱 1집 '우리가우리라고부르는것들' 커버. (사진 = 밴드 제공) 2026.09.1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칩 포스트 갱 1집 '우리가우리라고부르는것들' 커버. (사진 = 밴드 제공) 2026.09.14.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10대 청소년 관객도 유독 많았습니다. 티켓 가격 책정부터 세심하게 신경 쓴 인상이 듭니다.

오상욱 "이것 역시 아예 가격부터 그렇게 설계한 것입니다. 처음에 수민이가 1만5000원 선으로 훨씬 낮은 가격을 제시했었는데, 그 정도면 제작비 적자가 심각해질 수 있어서 책임 질 수 있는 금액으로 타협한 것이 3만원이었습니다."

션 "제가 처음으로 갔던 라이브 클럽 공연이 16살 때 바다비에서 열린 레코드폐허였습니다. 당시 김사월·김해원이 앨범을 내기 전 첫 순서로 올랐고 쾅프로그램, 파블로프 등이 나왔습니다. 경의선 숲길이 생기기도 전의 바다비였는데, 그때의 기억이 대단히 강렬했어요. 사실 이런 '인디 음악'을 듣는 청소년들은 학교에서 이방인 같은 느낌을 많이 받거든요. 저 혼자 이런 음악을 들었는데, 바다비에 들어선 순간 처음으로 집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 그해 김밥레코즈에서 처음 주최한 세인트 빈센트(St. Vincent) 내한 공연에 갔을 때도 청소년 할인을 받아 현장 구매로 입장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패치룸 페스티벌을 준비하며 검색해 보니 여전히 '혼자 라이브 클럽 가기 무섭다'고 느끼는 분들이 꽤 계시더라고요. 저 역시 직접 공연을 하게 되면서 그 장벽이 많이 허물어졌던 만큼, 진입 장벽을 낮춰드리고 싶었습니다."

지수민 "션의 말처럼 연결되는 감각을 느끼는 일에 진입 장벽을 세우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가장 컸습니다. 사실 일반 티켓 가격대도 저희가 책임질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저렴하게 만들었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소년 가격 정책을 따로 두고 명시하여 청소년들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와도 괜찮다는 신호를 더 뚜렷하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오상욱 "저는 대안학교를 다니면서 붕가붕가레코드 같은 독립 음악의 흐름들을 글로 읽고 또 들으며 동경했습니다. 그러다 대안학교 학생들을 모아 직접 홍대에서 공연을 꾸려보자는 생각에 첫 무대를 옛 DGBD에서 올렸는데요, 이후 다른 공연을 만들고 싶어 클럽 사장님들께 전화를 돌렸는데, 많은 어른들이 학생의 기획 자체를 좀 미덥지 않아 하셨습니다. 이해는 되고, 또 당시 홍대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다소 불친절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유일하게 바다비 사장님께서 '어, 그거 진짜 재밌겠다!' 라고 말씀해 주셨던 게 지금까지도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학교 밖 청소년으로서 좀 의심받고, 스스로를 굳이 설명해야 하는 일에 지쳐있는 와중 저를 친절하게 맞아 준 첫 어른이었습니다. 저희의 정책은 제가 10대 때 바다비 사장님께 받았던 배려를 갚는 동시에 다음 세대로 물려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찾아온 청소년 관객이나 청소년 아티스트들이 훗날 공연을 하게 되었을 때도 청소년 티켓 등 다양한 방식으로 즐거웠던 기억을 다음 세대에 계속 전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과거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중심지였던 신촌을 거점으로 택했습니다. 이 지역 클럽들과는 어떻게 교감했나요.

오상욱 "클럽 섭외는 제가 대부분 진행했습니다. 애초에 베이비돌과 인피니티 클럽 사장님들께서 '신촌 베뉴들을 중심으로 한 서킷 페스티벌을 한번 해보면 좋겠다'고 넌지시 말씀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다들 생업이 바빠 생각만 품고 있던 차에 저희가 생각 난 김에 실행에 옮기게 됐습니다. 신촌에 있는 공연장들이 정말 자기 일처럼 크게 협조해 주시고 도와주셨습니다. 딥퍼플 같은 오래된 베뉴의 사장님은 행사 3일 내내 아침 일찍 문을 열고 저희와 함께하시는 스탭 분들도 많이 챙겨주셨고, 인피니티클럽은 내부 장비를 다른 공연장에 빌려주시기도 하셨습니다. 베이비돌 역시 옛 합정·문래 GBN 라이브하우스의 정신을 이어받은 공간이기도 하고, 스핀앤그라인드처럼 독립 문화의 오랜 가치를 공유하는 사장님들이 저희 일을 자기 일처럼 아끼며 도와주셔서 여전히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션 "어떤 우연과 흐름이 맞물렸던 것 같습니다. 인디 신의 무게중심이 홍대·합정으로 쏠리면서, 그곳의 대형 공연장들은 어느정도 자리가 잡힌 팀들이 주로 서게 됐잖아요. 벨로주(현 벨르) 같은 곳에 이제 막 시작하는 팀들이 당장 서기는 어려운 것처럼요. 반면 신촌은 학령인구 감소와 상권 이동으로 공실이 늘어나는 일종의 '역젠트리피케이션'을 겪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덕분에 인피니티 클럽이나 베이비돌 같은 새로운 공간들이 신촌에 둥지를 틀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30년 역사의 딥퍼플이나 20년 된 DND처럼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베뉴들이 있었고요. 저희가 판을 벌이니 정말 내 일처럼 잘해주셨습니다. 끝나고 나서 '오랜만에 정말 재밌는 일 했다'고 감사 연락까지 주셔서 무척 뿌듯했습니다."

지수민 "베이비돌 입구에 붙어 있는 '춤추지 마시오'라는 문구처럼, 신촌 공간들은 저마다의 개성과 다양성을 폭넓게 포용합니다. 베이비돌도 하드코어 공연장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하지만 어떤 문화든 열어두시거든요. 작년에 저희가 베이비돌에서 팔레스타인 연대 공연을 기획했을 때도, 사장님께서 공간에 남아 있던 대형 팔레스타인 국기를 선뜻 내어주셨습니다. 오랜 세월 자리를 지킨 분들이 품어온 열망과 꿈들이 이번 페스티벌을 통해 구현되면서, 저희도 의도하지 못했고 근사한 순간들이 연쇄적으로 피어났습니다."

-인디 록이 주축인 라인업에서 힙노시스 테라피(HYPNOSIS THERAPY)의 합류는 무척 이색적이었습니다. 어떻게 출연이 성사됐나요.

지수민 "다른 라인업은 상욱이와 션이 발로 뛰며 완성했는데, 힙노시스 테라피는 정말 예상 밖이었습니다. 트위터(X)에서 패치룸 페스티벌 소식을 리트윗하며 '이거 멋있다'고 게시글을 올리신 것을 봤습니다. 그래서 제가 곧바로 답글로 '일요일에 한 자리 남는데 공연하실래요?'라고 남겼는데, 진짜로 연락이 닿아 출연이 전격 결정됐습니다."

오상욱 "워낙 열정적인 라이브를 하시는 팀이라 베이비돌의 무언가가 부서지지 않을까 내심 걱정했습니다. 바로 다음 순서였던 단편선 님이 '힙노시스테라피가 무대 다 부수고 가면 나는 어떡하냐'고 걱정하셨을 정도였으니까요."

지수민 "전체 결로 보면 특이한 팀이었지만, 짱유와 제이플로우 두 분 모두 패치룸이 지향하는 자생적인 가치와 인디 문화의 힘에 깊이 공감하고 동참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다만 저희 페스티벌을 '기폭제'라고 표현해 주시는 것은 조금 과분합니다. 대단한 사명감을 품고 비장하게 판을 벌인 것이 아니라, 이 자생적인 문화를 사랑하고 현장을 지탱해 온 수많은 동료 음악가와 관객들이 모여 자연스럽게 만들어낸 연대의 장이었습니다."

-인디 신 내에서 특정 집단이나 인물을 중심으로 권력화되는 현상을 강하게 경계하는 태도가 읽힙니다.

[서울=뉴시스] 칩 포스트 갱 1집 쇼케이스 포스터. (사진 = 밴드 제공) 2026.09.1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칩 포스트 갱 1집 쇼케이스 포스터. (사진 = 밴드 제공) 2026.09.14.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션 "어렸을 때부터 그런 구조를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입니다."

오상욱 "중심에 갇히면 사람이 너무 빨리 늙고 고여버립니다. 그러면 음악인으로서의 수명도 자연스레 짧아지고요. 보고 듣는 것에만 안주하지 않으려 의식적으로 부단히 경계합니다. 라인업을 90% 이상 채워둔 상태에서 수많은 밴드에게 참여 요청 연락을 받았는데, 그분들의 진심을 알기에 일일이 정중히 거절하는 과정이 인간적으로 몹시 괴로웠습니다."

션 "이미 탄탄한 팬덤과 수익 구조를 갖춘 팀들은 다른 무대에서도 충분히 잘 해나가고 있습니다. 반면 음악이 멋져도 자본이나 권력이 전혀 쳐다보지도 않을 법한 팀, '무시해도 되겠다' 싶을 만큼 주변부에 놓인 이들을 더 악착같이 무대 위로 끌어올려 소개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저 역시 릴리 잇 머신으로 펜타포트 슈퍼루키에 나가고 여러 경연을 치르면서, 기획사를 등에 업은 팀들이 스태프를 대동하고 대형 밴을 타고 올 때 우리는 빨간 버스 타고 악기를 짊어진 채 대기실에 앉아 있던 괴리감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남의 손을 빌려 올라오는 방식이 과연 인디 밴드로서 지속력을 가질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끊임없이 품게 되더라고요."

오상욱 "기성 권력의 바깥에 있는 팀들을 향한 일종의 '심술'이었습니다. 라인업이 거의 확정됐을 무렵 크고 작은 회사들로부터 제안이 쏟아졌습니다. '광고와 프로모션 지원을 해줄 테니 소속 아티스트 슬롯 하나만 껴달라'는 식이었죠. 돈을 받고 팔 수 있는 슬롯이 서너 개는 족히 생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셋 다 동시에 고집이 발동했습니다. '우리가 쓴 기획 글조차 읽지 않고 보낸 연락이다,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끼어드느냐'는 분노가 일었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를 비워두고 바닥부터 디깅해 신생 밴드 '복숭아를 던져라'와 '원형' 같은 팀들을 중요한 골든 타임에 꽂아 넣었습니다. 전자음악 라인업은 저희가 잘 모르는 영역도 많아 또다른 좋은 뮤지션인 기나이직에게 귀한 추천을 받아 완성했습니다."

션 "셋 중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절대 추진하지 않는 만장일치 원칙이 확고합니다. 2 대 1이어도 진행하지 않습니다. 셋이기에 이 타협 없는 고집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디지털 매거진과 소셜 미디어 숏폼이 범람하는 시대에, 종이로 인쇄되는 무료 계간지 '패치룸(PATCHROOM)'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오상욱 "역설적으로 종이 잡지가 인스타 매거진보다 더 오래갈 것이라 믿습니다. 플랫폼에 기댄 매체들은 늘 알고리즘의 변화를 불안해하잖아요. 어떤 기준인지도 명확히 모른 채 알고리즘의 간택을 기다려야 합니다. 하지만 종이 매체는 알고리즘과 무관합니다. 저희가 의도한 공간에 실물로 갖다 놓으면 관객이 직접 손으로 집어 가 읽습니다. 품과 제작비가 많이 드는 만큼 거대 자본이 쉽게 침투하지 못한다는 점도 매력적입니다. 순수한 애정과 시간을 쏟아야만 만들 수 있는 영역이니까요. 무료 배포 기조는 앞으로도 변함없이 유지할 것입니다."

지수민 "종이 매체가 지닌 '물리적 제약'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무기입니다. 인디 문화는 라이브 공연을 중심으로 작동하고, 라이브 공연은 필연적으로 홍대와 신촌이라는 물리적 공간에 발을 딛게 됩니다. 온라인의 알고리즘이나 피드를 거치지 않고, 실제로 공연장을 찾고 연주하는 이들의 손에 직관적으로 닿을 수 있다는 물리적 실체성이야말로 패치룸의 가장 강력한 힘입니다."

-스스로를 '케이브맨 노이즈 록(caveman-noise rock)'으로 명명했습니다. 어떤 맥락에서 출발한 이름인가요.

지수민 "상욱이가 제안한 표현인데, 전략 게임 '도타(DOTA)'의 프로팀에 붙은 별명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규칙이나 정형화된 틀에 기대지 않고, 변칙적이고 직관적인 움직임으로 상대를 당황시키는 플레이를 뜻합니다. 의도하지 않은 소리와 파열음을 가감 없이 넣으며 직관적으로 부딪히는 우리의 음악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션 "사실 결성 초기에는 원시인(Caveman)이라 불러도 할 말이 없을 만큼 멤버 모두 악기 연주가 미숙했습니다."

오상욱 "주변에서 하도 연주를 못한다고 하니 '그럼 원시인처럼 밀어붙이자'는 자조 섞인 캐치프레이즈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연주도 늘고 나름의 철학이 생겼습니다. 오차나 실수조차 실패로 치부하지 않고 음악의 본질적인 요소로 포용하겠다는 태도, 정해진 규칙을 벗어나도 상관없다는 당당함이 지금의 케이브맨 노이즈 록을 규정하는 핵심이 됐습니다."

-정규 1집 '우리가우리라고부르는것들'을 스튜디오 라이브 원테이크로 녹음했다고 들었습니다.

오상욱 "AFM 래버러토리의 트왱(Twang) 프로듀서, 엡마·소진 엔지니어와 프리 프로덕션을 오랜 시간 거쳤습니다. 거대한 노이즈와 거친 파열음 속에서도 사람을 품어주는 따뜻함과 다정함이 사운드의 핵심으로 살아 있어야 한다는 심상을 공유했고, 스튜디오에서 이를 구현할 수 있는 환경을 완벽히 만들어 주셨습니다. 상호 간의 절대적인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한 방식이었습니다."

[서울=뉴시스] 칩 포스트 갱. (사진 = 밴드 제공) 2026.09.1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칩 포스트 갱. (사진 = 밴드 제공) 2026.09.14.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션 "릴리 잇 머신 2집 작업과 칩 포스트 갱 1집 녹음이 완전히 겹쳤습니다. 릴리 잇 머신은 트랙별로 파트를 하나씩 정밀하게 쌓아 올리는 멀티트랙 방식을 썼지만, 칩 포스트 갱은 전 곡 합주 라이브 레코딩이었습니다. 기타든 드럼이든 한 명이 틀리면 전원이 처음부터 다시 가야 했습니다. 일정 상 사흘 안에 8곡을 끝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을 때 '이건 100% 펑크 나고 연장된다'고 확신했는데, 기적처럼 사흘 만에 원테이크로 끝났습니다. 카지노에서 잭팟을 터뜨린 듯한 희열이 있었습니다."

지수민 "저는 처음부터 될 거라고 생각어요. 오차도 음악의 일부이고 실수란 없다는 전제를 세웠기에, 중요한 것은 '어떤 기준으로 좋은 테이크를 골라낼 것인가'였습니다. 프로듀서, 엔지니어와 모니터링하며 가장 많이 나눈 말이 '이건 말이 되는 연주다'였습니다. 연주가 예정보다 더 벗어났든, 틀렸든 상관없이, 이 소리가 왜 나왔는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지, 즉 '말이 되는 연주'인가만을 기준 삼아 테이크를 골랐습니다."

오상욱 "라이브 연주의 본질은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누군가 엇나가면 다른 연주자가 그것을 받아들이며 전체의 흐름을 만들어가는 포용력이 중요했습니다. 정밀하게 깎아내는 방식이었다면 성립할 수 없었던 녹음입니다. 오차를 오답으로 보지 않고, 어긋남까지 음악의 유기적인 일부로 흡수하는 것이 칩 포스트 갱의 방식입니다."

-전작 EP '케이브퀘이크(CAVEQUAKE)'가 내부 에너지를 응축해 터뜨린 구심력이었다면, 이번 1집은 외부 세계와 동료들을 향해 뻗어가는 원심력처럼 느껴집니다.

오상욱 "EP 때는 션의 주도로 우리가 어떤 태도로 사는 음악인인지 증명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사실 저는 '이 앨범이 받아들여지기 어렵겠다'고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씬은 많은 음악인들과 평론가들께서 좋게 평가해 주셔서 놀랐습니다. 그러면서 저희에게도 변화가 생겼구요. 패치룸을 발행하며 수많은 동료를 만나고 인디 신 전반을 의식적으로 바라보다 보니, 역설적으로 '싫은 것들'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인간관계, 음악적 태도, 일하는 방식 등에서 환멸을 느끼는 동시에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누구를 친구로 부르고 어디까지를 우리로 포용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시작됐습니다. 그 치열한 마찰과 충돌의 과정을 통과하며 다다른 제목이 '우리가우리라고부르는것들'이었습니다."

지수민 "EP를 들으신 분들이 가장 많이 써주신 표현이 '폭발력'과 '파괴'였습니다. 1집을 준비하며 던진 질문은 '그 폭발과 파괴 뒤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였습니다. 무엇을 위해 충돌했고 부서졌는가. EP가 멤버 개인들의 내면적 폭발을 날 것으로 쏟아낸 결과물이었다면, 정규 1집은 그 파편들을 딛고 확장되어 나와 타인, 개인과 개인이 관계를 맺으며 비로소 '우리'라는 테두리를 형성해 나가는 군상극을 그리고자 했습니다."

-페스티벌 직후 '2회는 없다, 너희가 만들어라'는 선언을 남겼습니다. 일각에서는 기획·행정·디자인 능력을 모두 갖춘 칩 포스트 갱이기에 가능했던 것 아니냐는 반응도 있었는데요.

션 "실제로 그런 피드백을 들었습니다. '너희니까 한 거지 우리가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는 반응이었습니다. 충분히 공감합니다. 저 역시 과거 릴리 잇 머신 초기에는 디자인적 역량이 전무해 많은 고충을 겪었습니다. 인디 신은 매우 좁으면서도 파편화 되어 있습니다. 베이비돌만 해도 한 공간에서 둠 메탈, 하드코어 펑크, 스크리모 등 공연하는 팀들이 방향성들이 정말 제각각입니다. 이런 다양성이 살아있는 환경에서 저희가 특정 권력 집단이나 어떠한 중심으로 굳어지는 것을 경계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인가 하면 이제 막 시작하는 아무런 연고가 없는 신생 팀들, 가령 결성 후 두 번째 공연이었던 '넥스트 서머 마이트 비 굿(next summer might be good)' 같은 팀들을 무대로 끌어올려 무대를 준비하는 절차, 아티스트 라운지, 백스테이지 등의 작동 방식을 직접 경험하실 수 있도록 돕는 일입니다."

오상욱 "저희처럼 거대한 규모로 판을 만들어 보시라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대단한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마음 맞는 팀들이 모여 작은 파티를 열든 대관 공연을 열든, 각자의 원칙과 가치를 세워 일단 부딪혀보라는 메시지였습니다. 소비자주의적 태도에서 벗어나 무대 위와 아래가 하나로 뒤섞이는 순수한 해방감을 74팀과 관객 모두가 이번에 확인했잖아요. 패치룸 페스티벌의 역할은 우리 안에 이런 열망이 살아 숨 쉰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게 도운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이제 각자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움직임이 촉발되기를 바랍니다."

션 "실제로 칩 포스트 갱과 릴리 잇 머신을 지켜보던 관객 두 세 분이 직접 기획 단체를 꾸려 디제잉과 디자인을 시작하시고 공간을 대관해 릴리 잇 머신을 섭외해 주셨습니다. 그냥 즐겁게 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해볼까'라며 스스로 움직이는 모습을 볼 때, 우리가 벌인 일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실감합니다."

-베뉴 사이의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 관객들의 만족도가 높았습니다.

션 "기존 도심형 페스티벌들은 공연장 간 거리가 너무 멀어 이동하다 지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번엔 인피니티 클럽과 베이비돌을 축으로 걸어서 오갈 수 있는 동선에 집중했습니다. 릴리 잇 머신으로 일본의 '뮤직 브릿지 도쿄'라는 DIY 서킷 페스티벌에 참가한 적이 있습니다. 대형 합주실 방 세 개를 각각 공연장 1, 2, 3으로 쪼개고 위층 바와 옆 건물 공간을 연계해 열었는데, 30명 남짓 들어가는 좁은 공간이었지만 관객의 접근성과 몰입도가 대단히 뛰어났습니다. 거기서 힌트를 얻어 공간 밀집형 서킷 페스티벌을 설계했습니다. 박정용 대표님(전 벨로주 사장·라이브클럽협동조합장)께서 직접 표를 예매하고 찾아와 따뜻한 글을 남겨주셨을 때, 그리고 많은 동료들이 현장에 함께해 주셨을 때 깊은 울림을 받았습니다."

-정규 1집 발매 이후 이어질 하반기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오상욱 "10월3일 신촌 모래내극락에서 패치룸 페스티벌을 함께했던 밴드 '복숭아를 던져라'와 함께 1집 쇼케이스를 엽니다. 이어 10월10일에는 모보 페스티벌(MOBBO FESTIVAL) 무대에 오릅니다. 내년 초중순을 목표로 신촌 일대 공실을 살펴가며 작은 레코드 숍을 오픈하기 위한 준비도 차근차근 병행하고 있습니다."

션 "개인적으로 1월부터 준비해 온 릴리 잇 머신 2집이 10월27일 발매됩니다. 2022년 10월 이태원 현장에 머물렀던 개인적 기억과 트라우마, 그리고 그 이후의 삶을 버텨내는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냈습니다. 멤버들과 치열한 조율을 거치며 마무리 단계에 와 있습니다. 11월까지 릴리 잇 머신과 칩 포스트 갱의 라이브 무대를 쉼 없이 이어갈 예정입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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