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C 미래상 김영은 “115개 스피커로 결국 남기고 싶은 건 사람의 목소리”
등록 2026/09/05 11:29:51
근세~20세기 옛 시 9편 재구성…아시아 ‘이동과 이주’ 60분 사운드로
25×60m·층고 15m 전시장 가득 채운 115개 스피커…“걸을 때마다 다른 소리”
“과거와 현대의 이주 경험이 어떻게 공명할지 궁금했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복합전시1관에서 열린 ‘ACC 미래상 2026: 김영은-미래의 청취자들에게: 이동하는 소리’ 전시 전경. . 2026.09.05. hyu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09/05/NISI20260905_0002231009_web.jpg?rnd=20260905103314)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복합전시1관에서 열린 ‘ACC 미래상 2026: 김영은-미래의 청취자들에게: 이동하는 소리’ 전시 전경. . 2026.09.05.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광주=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소리가 떠돈다. 속삭임 같다가 노래가 되고, 손뼉 소리가 되어 사라진다. 어디서 시작됐는지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머리 위를 지나 등 뒤로 이동한다.
천장과 벽을 에워싼 115개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다. 정면과 양옆의 대형 스크린에는 오래된 시구가 떠오른다. 어둑한 공간에 놓인 의자에 앉아 있으면 오래된 극장에 들어온 듯하다. 그러나 한곳에 앉아 있을 필요는 없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들리는 소리가 달라진다.
김영은이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 펼쳐놓은 거대한 ‘소리의 극장’이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복합전시1관에서 열린 ‘ACC 미래상 2026: 김영은-미래의 청취자들에게: 이동하는 소리’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09/05/NISI20260905_0002231030_web.jpg?rnd=20260905111709)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복합전시1관에서 열린 ‘ACC 미래상 2026: 김영은-미래의 청취자들에게: 이동하는 소리’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ACC 문화창조원 복합전시1관에서 열리고 있는 ‘2026 ACC 미래상: 김영은’은 아시아의 ‘이동과 이주’를 소리로 풀어낸 전시다. 대표작 ‘미래의 청취자들에게: 이동하는 소리’를 선보인다.
가로 25m, 세로 60m, 층고 15m의 전시장에 115개의 스피커를 설치했다. 음파 파면 합성(WFS) 기술을 활용해 소리가 한곳에 머물지 않고 공간을 입체적으로 이동하도록 했다.
115라는 숫자에 특별한 상징이 있는 것은 아니다. ACC 전시장의 크기와 층고에 맞춰 결정됐다.
김영은은 5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보다 규모와 층고가 낮은 공간이라면 스피커 숫자가 줄어들 수 있고 더 큰 공간이라면 늘어날 수도 있다”며 “이 공간에 특정된 스피커 숫자”라고 설명했다.

세계적인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가 2년 만에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을 찾아 김영은의 개인전을 관람했다. *재판매 및 DB 금지
이 전시에는 ‘명당’이 없다
일반적인 멀티채널 사운드 작업에는 가장 이상적으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스위트 스폿(sweet spot)’이 있다. 이 작품도 사운드를 믹싱할 때는 기준점이 있지만 관객에게는 ‘가장 좋은 자리’를 지정하지 않는다.
“자리를 옮겨서 들을 때마다 다른 소리가 들리고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어요. 소리의 움직임도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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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앉아 있어도 되고 걸어 다녀도 된다. 오히려 이동할수록 115개 스피커가 만드는 공간을 입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소리만 있는 것도 아니다. 3채널 영상과 조명, 진동이 함께 움직인다. 김영은은 이를 서로 돕되 방해하지 않는 ‘트라이앵글’에 비유했다. 우선순위는 분명하다. 소리, 영상, 조명 순이다.
작품은 근세부터 20세기까지 전쟁과 피난, 징집과 망명, 이별과 이동을 담은 옛 시에서 출발했다.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 카자흐스탄어, 태국어, 인도네시아어와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인도의 옛 언어 등 여러 언어가 등장한다.
연구팀은 각 시가 과거에 어떻게 발음되고 낭송됐는지 전문가 자문과 자료를 통해 추정했다. 전문가가 직접 녹음하기도 했다. 이렇게 모은 자료를 해당 언어권 출신 작곡가들에게 전달해 음악으로 다시 만들었다.
9개의 곡은 약 60분 동안 이어진다. 어떤 곡에서는 목소리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속삭임처럼 울린다. 다른 곡에서는 손뼉을 치며 노래하고, 남녀 가수가 서로 다른 창법으로 부른다. 아시아 각지의 전통 악기도 등장한다.
김영은이 과거의 시를 불러낸 이유는 현재와 과거의 이주 경험이 만나는 지점을 찾기 위해서다.
그는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 계속 이주의 경험을 겪어왔다”며 “전쟁과 피난이 있었고 국가에 의한 징집, 망명, 거리로 인한 이별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이주 경험과 과거의 시에 나타나는 경험들이 어떻게 공명할 수 있을까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이번 작업에서 ‘디아스포라’라는 개념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근대 이후의 개념으로 한정하기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이어져온 인간의 ‘이동과 이주’를 바라본다.
“빈 벽보다 벽 뒤에서 들리는 소리가 궁금했다”
![[광주=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5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 열린 ‘2026 ACC 미래상: 김영은’ 전시에서 관람객이 소리를 진동으로 전달하는 햅틱 조끼를 착용하고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2026.09.05. hyu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09/05/NISI20260905_0002231036_web.jpg?rnd=20260905112352)
[광주=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5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 열린 ‘2026 ACC 미래상: 김영은’ 전시에서 관람객이 소리를 진동으로 전달하는 햅틱 조끼를 착용하고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2026.09.05.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김영은에게 소리는 단순히 선택한 작업 매체가 아니다. 세상을 감각하는 방식에 가깝다.
조소를 전공한 그는 학부에서 나무와 쇠, 석고와 흙 등 전통적인 조각 재료를 다뤘다. 이후 재료 선택이 자유로워지자 소리를 녹음해 들려주는 설치 작업을 시작했다.
“집에 빈 벽이 있으면 그 벽에 어떤 그림을 걸까, 벽지를 어떻게 할까를 생각하기보다 그 벽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더 관심이 있어요.”
천장을 바라볼 때도 형태보다 위아래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김영은은 “주위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항상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미래의 청취자들에게’라는 제목도 여기서 이어진다. 이번에 처음 사용한 제목이 아니다. 과거의 녹음이나 자료를 현재의 오디오 기술로 재구성해온 연작의 제목이다.
과거의 소리를 오늘 다시 듣는 우리부터 이미 ‘미래의 청취자’인 셈이다. 지금 만든 작품이 10년, 20년, 30년 뒤에도 보존되고 다시 전시된다면 다음 세대가 또 다른 미래의 청취자가 된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김영은 개인전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09/05/NISI20260905_0002231033_web.gif?rnd=20260905111933)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김영은 개인전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
15m 층고에 당황한 작가…공간이 작품을 바꿨다
이번 작품은 ACC 공간과 만나 규모가 커졌다.
대부분 화이트큐브에서 전시해왔다는 김영은은 복합전시1관을 처음 접했을 때 “굉장히 당황했다”고 털어놨다.
“층고도 너무 높고 공간도 거대하고 특이했어요. 기존의 전형적인 전시 공간과 너무 달랐기 때문에 건축가와 긴밀하게 작업했습니다. 이 공간에 대해 제가 배워야 하는 시간이 상당히 길었어요.”
115개의 스피커는 높이에 따라 3단으로 펼쳐졌다. 김영은은 일반적인 화이트큐브였다면 스피커를 더 낮게 설치하거나 2단 정도로 줄였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5일 김영은 작가가 기자들과 만나 작품 설명을 하고 있다.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09/05/NISI20260905_0002231034_web.jpg?rnd=20260905112116)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5일 김영은 작가가 기자들과 만나 작품 설명을 하고 있다. *재판매 및 DB 금지
다만 ACC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일회성 작품으로 만든 것은 아니다. 처음부터 다른 미술관이나 기관으로 이동할 가능성을 염두에 뒀다. 공간에 따라 스피커 숫자와 설치 규모는 달라질 수 있지만 작품의 기본 구조는 유지된다.
화려한 음향 기술과 거대한 공간을 동원했지만 김영은이 끝내 들려주고 싶은 것은 기술의 소리가 아니었다.
115개의 스피커와 거대한 전시장, 아시아 각지의 전통 악기까지 모두 걷어낸다면 어떤 소리 하나를 남기고 싶은지 묻자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사람의 목소리요.”
김영은은 “악기 소리도 아름답고 중요하지만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람의 목소리”라며 “단 하나의 소리를 남겨야 한다면 사람의 목소리를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전시는 2027년 2월14일까지. 관람은 무료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복합전시1관에서 열린 ‘ACC 미래상 2026: 김영은-미래의 청취자들에게: 이동하는 소리’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09/05/NISI20260905_0002231005_web.jpg?rnd=20260905102515)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복합전시1관에서 열린 ‘ACC 미래상 2026: 김영은-미래의 청취자들에게: 이동하는 소리’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복합전시1관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09/05/NISI20260905_0002231039_web.jpg?rnd=20260905112944)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복합전시1관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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