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난화가 깨운 괴물…빙하 붕괴 홍수, '지구의 지붕' 흔든다[사이언스 PICK]
등록 2026/08/29 14:00:00
네팔-티베트 접경서 초대형 홍수 재난…트리슐리강 수위 30분 만에 9m 급등
온난화로 암반 묶던 얼음 녹아내려…고산 산사태 규모 30년 새 5배 폭증
"먼 미래 해수면 상승 국한 안 돼"…얼음사태·토석류 등 복합 감시체계 시급
![[누와코트(네팔)=AP/뉴시스]네팔 누와코트 지역에서 홍수가 발생한 뒤 불어난 트리슐리강의 잔해로 뒤덮인 강둑 인근에 파손된 주택들이 위태롭게 서 있다. 2026.08.26.](https://img1.newsis.com/2026/08/27/NISI20260827_0001526312_web.jpg?rnd=20260827003120)
[누와코트(네팔)=AP/뉴시스]네팔 누와코트 지역에서 홍수가 발생한 뒤 불어난 트리슐리강의 잔해로 뒤덮인 강둑 인근에 파손된 주택들이 위태롭게 서 있다. 2026.08.26.
[서울=뉴시스]윤현성 기자 = 빙하가 녹는다고 하면 흔히 해수면 상승을 떠올린다. 하지만 빙하 얼음이 사라지는 그곳에서는 또 다른 재난이 시작될 수 있다. 빙하가 후퇴하고 영구동토가 녹으면서 산비탈이 불안정해지고, 무너진 얼음과 암석이 강으로 쏟아져 토석류와 돌발홍수로 이어지는 '연쇄재난'이다.
지난 26일 네팔 북부 라수와와 중국 티베트 접경에서 발생한 대형 홍수가 이런 고산 빙권 재난의 위험성을 다시 드러냈다. 수백명이 숨지고 1000명 넘게 실종된 것으로 전해진 가운데 현지 수력발전소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한국인 9명도 연락이 끊긴 상태다.
빙하·바위가 강으로…30분 만에 수위 9m 뛴 급류
국제산악통합개발센터(ICIMOD)는 고지대에서 발생한 '빙하·암석 눈사태(ice-rock avalanche)'를 이번 홍수의 유력한 촉발 요인으로 보고 있다. 대량의 얼음과 암석이 렌데 콜라 지류로 떨어지며 물과 퇴적물, 거대한 바위를 한꺼번에 밀어냈다는 것이다. 다만 무엇이 빙하와 암석의 붕괴를 촉발했는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급류의 위력은 수위 기록에서도 드러났다. 트리슐리강 갈치 지점에서는 불과 30분 만에 수위가 최대 9m, 말레쿠에서는 7m가량 상승한 것으로 파악됐다.
단순히 물만 불어난 홍수와 달리 토사와 암석이 섞인 흐름은 이동하면서 하천 바닥과 제방의 흙·자갈까지 끌어들여 몸집과 파괴력을 키운다. 건물과 교량, 도로, 발전시설이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는 이유다.
이번과 닮은 참사는 이전에도 있었다. 2021년 인도 차몰리에서는 거대한 암석과 얼음 덩어리가 리시강가 계곡으로 떨어진 뒤 고속 토석류로 바뀌어 수력발전소와 교량을 휩쓸었고 200명 넘게 숨졌다.
올해 3월 국제학술지 '커뮤니케이션스 지구·환경'에 실린 논문은 차몰리 참사를 사례로 들어 기후가 따뜻해지는 히말라야에서 빙하·암석 눈사태가 어떻게 연쇄재난으로 번질 수 있는지를 짚었다.
연구진은 빠른 빙하 후퇴와 극한 강수, 영구동토 약화 등으로 가파른 산악 사면이 불안정해지면서 이같은 얼음·암석 눈사태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빙하가 녹으면 산도 약해진다…고산 산사태 규모 30년 새 5배
지구온난화가 위험을 키우는 방식은 단순히 '얼음이 녹아 물이 많아지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빙하가 물러나면 그동안 얼음과 추운 기후에 묶여 있던 급경사 지형이 노출된다.
영구동토가 녹으면 암반 틈을 붙들던 얼음도 사라진다. 기온 상승으로 눈 대신 비가 내리는 비율이 커지는 변화도 산비탈 안정성을 흔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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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국제학술지 '내셔널 사이언스 리뷰'에 발표된 연구는 1987~2020년 동부 히말라야에서 발생한 기후 관련 산사태 8607건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해발 3000m 이상 고지대에서 발생한 산사태의 연간 부피가 약 30년 사이 5배 늘었다. 산사태 발생 지역도 후퇴하는 빙하와 녹는 영구동토를 따라 점차 더 높은 곳으로 이동하는 양상을 보였다.
빙하 자체의 감소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지난해 '네이처'에 발표된 국제 공동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 빙하는 2000~2023년 매년 평균 2730억톤의 얼음을 잃었다. 2012~2023년의 연평균 손실 속도는 2000~2011년보다 36% 빨랐고, 2000년 이후 전 세계 빙하 얼음의 약 5%가 사라졌다.
녹은 물이 빙하 앞에 고여 만들어지는 빙하호도 또 다른 위험원이다. 지난해 12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연구진이 1900~2020년 전 세계 빙퇴석댐 빙하호 붕괴홍수(GLOF) 609건을 분석한 결과 GLOF의 연평균 발생 빈도는 1981~1990년 5.2건에서 2011~2020년 15.2건으로 약 3배 증가했다.
연구진은 장기적인 발생 추이가 세계 평균기온 변화와 밀접하게 움직였다고 분석했다. 다만 기온이 오르자 곧바로 홍수가 늘어난 것은 아니었다. 온난화로 빙하가 후퇴하고 빙하호가 커지는 한편 주변 산비탈까지 불안정해지는 데 시간이 걸리면서 약 20년의 시차를 두고 GLOF가 증가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라다크(인도)=AP/뉴시스] 인도 카슈미르 지역의 히말라야 산맥의 한 산정이 만년설과 빙하로 뒤덮였던 과거 모습과 달리 지난해 9월 빙하 한조각만이 산꼭대기에 남아있는 모습. 히말라야 빙하의 80%가 금세기 안에 소멸할 것이라는 최근 논문은 이 지역의 식수난과 삶의 파괴를 예고하고 있다. 2023.06.20.](https://img1.newsis.com/2022/11/02/NISI20221102_0019419053_web.jpg?rnd=20221102115809)
[라다크(인도)=AP/뉴시스] 인도 카슈미르 지역의 히말라야 산맥의 한 산정이 만년설과 빙하로 뒤덮였던 과거 모습과 달리 지난해 9월 빙하 한조각만이 산꼭대기에 남아있는 모습. 히말라야 빙하의 80%가 금세기 안에 소멸할 것이라는 최근 논문은 이 지역의 식수난과 삶의 파괴를 예고하고 있다. 2023.06.20.
'네팔 홍수=기후변화 탓' 단정은 아직…위험 커지는 흐름은 뚜렷
그렇다고 이번 네팔 참사를 곧바로 지구온난화가 일으켰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빙하와 암석이 왜 무너졌는지, 지진 활동이나 최근 기온·강수 등 각각의 요인이 얼마나 영향을 줬는지를 따지는 정밀한 '귀인 분석'이 필요하다.
ICIMOD 역시 기후변화가 히말라야의 빙하와 눈, 영구동토, 산비탈을 변화시키고 있지만 이번 사건에서 어느 정도 역할을 했는지를 판단하기에는 이르다고 밝혔다.
진경 극지연구소 정책협력부장도 한국과학기술미디어센터(SMCK)를 통해 "이번 재난의 직접적인 원인을 기후변화와 곧바로 연결 짓기에는 정밀한 원인 규명과 귀인 분석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전 지구적 온난화와 빙하 후퇴로 빙하호 붕괴홍수와 대규모 얼음사태, 빙하성 토석류 같은 위험이 새로 발생하거나 기존 위험이 증폭되는 현상에는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대로 빙하가 줄어든다고 모든 빙하발 홍수가 갈수록 거대해지는 것도 아니다. 올해 '네이처 워터' 연구에서 1990~2023년 전 세계에서 보고된 1686건의 빙하호 붕괴홍수 사례를 분석한 결과 전체 빙하호 면적과 잠재적 위험은 커졌지만, 홍수가 발생하기 직전 빙하호의 크기는 지역에 따라 거의 변하지 않거나 오히려 작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위험원이 늘고 일부 홍수의 발생 빈도가 높아지는 것과 개별 홍수의 규모가 일률적으로 커지는 것은 별개라는 의미다.
학계 전문가들은 고산지대에서 한 가지 재난만 예측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상류의 빙하와 빙하호, 급경사지를 위성·드론과 수위계·지반변위계·진동센서 등으로 함께 감시하고 이상 신호가 나타나면 정확한 원인이 파악되기 전이라도 하류 주민의 대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남극·북극에 이어 이른바 '제3의 극지'로 불리는 히말라야·티베트고원 빙하 지대에서 시작되는 하천들은 약 20억명에게 물을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빙하의 변화는 먼 미래 해수면 상승에만 머무는 문제가 아니다. 산 위에서 시작된 변화가 얼음사태와 산사태, 토석류와 홍수로 이어져 수십㎞ 아래 마을과 도로, 발전소까지 덮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번 참사가 다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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