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왕은 왜 황룡사 사리함에 기록을 남겼나…천년의 타임캡슐 '찰주본기'
등록 2026/06/13 14:00:00
수정 2026/06/13 14:14:24
경주박물관 특별전 '황룡사, 부처의 사리를 모시다'
금동 사리함 중심으로 '황룡사 찰주본기' 의미 조명
경문왕 황룡사 목탑 중수 사리함에 900자 명문 기록
![[서울=뉴시스] 황룡사 찰주본기가 새겨진 새겨진 금동 사리함(재현품)과 사리장엄 추정 봉안 모습 (사진=국립경주박물관 제공) 2026.06.12.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06/12/NISI20260612_0002159855_web.jpg?rnd=20260612182012)
[서울=뉴시스] 황룡사 찰주본기가 새겨진 새겨진 금동 사리함(재현품)과 사리장엄 추정 봉안 모습 (사진=국립경주박물관 제공) 2026.06.12.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수지 기자 = 872년 11월, 통일신라 경문왕은 중수 공사를 마친 황룡사 구층목탑의 중심 기둥인 찰주를 다시 들어 올리게 했다.
동북쪽으로 기울어 무너질 위기에 처했던 목탑을 대대적으로 수리한 직후였다. 왕이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탑 깊숙한 곳에 봉안된 부처의 사리였다.
심초석 아래 사리공이 열리자 금은고좌와 유리 사리병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경문왕의 눈길을 끈 것은 따로 있었다. 탑이 언제, 왜 세워졌는지 알려주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경문왕은 기존 사리를 그대로 두고 새로운 사리와 법사리를 추가로 봉안하기로 했다. 그리고 금동 사리함을 새로 제작해 그 표면에 74행, 900여 자에 이르는 글을 새겨 넣었다.
이 기록이 오늘날 보물로 지정된 '황룡사 찰주본기'다.
![[서울=뉴시스] 황룡사 찰주본기가 새겨진 금동 사리함 안쪽 면 (사진=국립경주박물관 제공) 2026.06.12.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06/12/NISI20260612_0002159851_web.jpg?rnd=20260612181653)
[서울=뉴시스] 황룡사 찰주본기가 새겨진 금동 사리함 안쪽 면 (사진=국립경주박물관 제공) 2026.06.12.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국립경주박물관이 황룡사지 발굴조사 50주년을 맞아 마련한 특별전 '황룡사, 부처의 사리를 모시다'는 이 찰주본기가 새겨진 금동 사리함을 중심으로 황룡사 구층목탑의 역사를 조명한다.
찰주본기에는 자장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선덕여왕에게 구층목탑 건립을 건의한 과정부터 백제 장인 아비지가 참여한 창건 이야기, 목탑이 기울게 된 경위, 경문왕 대의 중수 과정까지 담겨 있다.
특히 경문왕은 단순히 목탑을 고친 사실만 기록하지 않았다. 창건과 중수를 하나의 역사로 엮어 황룡사의 의미를 후대에 전하고자 했다.
찰주본기에는 "창건의 연원과 고쳐 세운 이유를 기록하여 만겁 이후의 사람들에게 보이게 하였다"는 내용이 나온다. 왜 탑을 세웠고 왜 다시 고쳤는지를 먼 훗날 사람들에게 전하려 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황룡사의 금동 사리함은 단순한 사리 봉안구를 넘어 일종의 '타임캡슐'로 평가된다. 일반적으로 탑의 내력을 적은 탑지는 별도의 금석문으로 남기는 경우가 많지만, 황룡사에서는 가장 성스러운 공간인 사리함 자체가 기록의 매체가 됐다.
![[서울=뉴시스] 황룡사 찰주본기가 새겨진 금동 사리함 뚜껑 안쪽 명문 (사진=국립경주박물관 제공) 2026.06.12.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06/12/NISI20260612_0002159853_web.jpg?rnd=20260612181827)
[서울=뉴시스] 황룡사 찰주본기가 새겨진 금동 사리함 뚜껑 안쪽 명문 (사진=국립경주박물관 제공) 2026.06.12.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사리함의 형태에도 이러한 의미가 담겨 있다. 앞면에는 실제로 열고 닫을 수 있는 문이 달려 있고, 문 바깥과 안쪽에는 부처의 사리를 지키는 금강역사상과 신장상이 새겨져 있다. 나머지 면에는 황룡사의 역사와 중수 과정을 기록한 명문이 빼곡히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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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주본기는 9세기 신라의 현실도 보여준다. 선덕여왕 때 세워진 황룡사 구층목탑은 신라 왕권과 호국불교를 상징하는 건축물이었다. 하지만 문성왕 대부터 탑이 기울기 시작했고, 여러 사정으로 30년 가까이 제대로 된 보수가 이뤄지지 못했다.
결국 868년 벼락을 맞는 사건까지 발생하자 경문왕은 대대적인 중수 공사에 착수했다. 그는 친동생 김위홍을 총책임자로 임명하고 별도 기구인 '황룡사성전'을 설치해 국가적 사업으로 공사를 추진했다.
흔들리는 목탑을 바로 세우는 일은 단순한 건축 공사가 아니었다. 경문왕에게 황룡사 구층목탑은 신라를 지탱하는 상징이었다. 그래서 그는 목탑을 다시 세우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의미까지 사리함에 새겨 후대에 남기고자 했다.
신명희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찰주본기는 단순한 공사 기록이 아니라 황룡사 목탑의 역사와 중수의 의미를 후대에 전하기 위한 의도적인 역사 기록"이라며 "왕실과 승려, 장인들의 이름을 함께 남김으로써 황룡사 구층목탑이 국가와 불교가 함께 만들어낸 신성한 기념물이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경주=뉴시스] 11일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에서 열리는 황룡사지 발굴조사 50주년 기념 특별전 '황룡사, 부처의 사리를 모시다_皇龍奉佛황룡봉불' 전시장 (사진=국립경주박물관 제공) 2026.06.11.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06/11/NISI20260611_0002158662_web.jpg?rnd=20260611151948)
[경주=뉴시스] 11일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에서 열리는 황룡사지 발굴조사 50주년 기념 특별전 '황룡사, 부처의 사리를 모시다_皇龍奉佛황룡봉불' 전시장 (사진=국립경주박물관 제공) 2026.06.11.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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