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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화해 상징 '北해금강 호텔' 역사 속으로…"다 뜯어내라" 고철 엔딩

등록 2026/02/23 16:39:00

수정 2026/02/23 17:14:24

【금강산=뉴시스】 제15차 남북이산가족 상봉 2회차 개별상봉이 진행된 13일 오전 금강산 해금강호텔에 도착한 북측 이산가족이 호텔로 들어서고 있다. /허상욱기자 wook@newsis.com

【금강산=뉴시스】 제15차 남북이산가족 상봉 2회차 개별상봉이 진행된 13일 오전 금강산 해금강호텔에 도착한 북측 이산가족이 호텔로 들어서고 있다. /허상욱기자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박영환 기자 = 1980년대 호주에서 첫 등장해 베트남을 거쳐 남북 화해와 교류의 상징인 금강산 관광의 중심축 역할을 했던 세계 최초의 부유식 호텔 '해금강'이 철거로 그 파란만장한 역사를 마감했다.

22일(현지시간) 영국의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이 수상 호텔은 이탈리아계 개발자 더그 타르카(Doug Tarca)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그는 호주 퀸즐랜드 인근 대산호초(Great Barrier Reef)를 상시 조망할 수 있는 숙박 시설을 기획했고, 1986년 약 4500만 호주 달러를 투입해 1만t급 선박 형태의 호텔을 완공했다. 176개의 객실과 테니스장, 클럽 등을 갖춘 이 호텔은 당시 '포시즌스 배리어 리프'라는 이름으로 화려하게 개장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화려한 출발과 달리 운영은 순탄치 않았다. 거친 바다 날씨로 인해 교통편이 자주 끊겼고, 투숙객과 직원들이 겪는 심한 배멀미가 고질적인 문제로 부상했다. 결국 경영 악화로 1년 만에 폐업한 호텔은 베트남 호찌민의 사이공 강변으로 매각되어 '호텔 사이공'으로서 약 10년간 운영을 이어갔다.

호텔의 가장 극적인 변화는 북한 정부가 관광 지구 조성을 위해 이를 인수하면서 발생했다. '해금강 호텔'로 개명된 이 시설은 1998년부터 시작된 금강산 관광의 핵심 숙소로 활용되며 남북 화해와 교류의 상징물 역할을 했다. 2008년까지 약 100만 명 이상의 한국 관광객이 이곳을 이용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2008년 한국 관광객 박왕자 씨 피격 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이 전면 중단되면서 호텔의 운명도 기울었다. 이후 북한 고위 간부들의 숙소로 간간이 사용되던 시설은 관리 부실로 노후화되었다. 결국 2019년 현지 시찰에 나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노후화된 외관을 지적하며 철거를 지시했고, 한때 세계적인 혁신의 아이콘이었던 수상 호텔은 고철로 분해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고 매체는 전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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