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호황이 내 지갑까지 닿으려면…정부가 답할 차례 [기자수첩]
등록 2026/10/23 14:43:47
수정 2026/10/23 15:38:25
반도체 수출·투자 훈풍에도 가계 체감은 아직
늘어난 곳간, 내수·고용 이어질 정책 내놔야

[세종=뉴시스]임하은 기자 = "시간이 지나면 그 성장세가 소비 쪽으로도 전이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형일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지난 16일(현지시간) 태국 방콕에서 열린 동행기자단 간담회에서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투자 주도 성장세를 평가하며 한 말이다. 수출과 투자에서 시작한 회복이 흐르면 소비로도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담겼다.
재정경제부를 출입하며 반복해서 듣는 말이 'K자형 경제'다. 반도체를 비롯한 수출기업의 호황을 누리는 반면, 내수와 민생의 회복은 더딘 상황을 가리킨다. 방콕에서 들은 성장에 대한 기대는 반가웠지만, 동시에 한가지 의문이 남았다. 그 온기가 가계까지 전달되기까지 얼마나 기다려야할까.
반도체 호황은 한국 경제에 분명한 기회다. 수출이 늘고 기업의 투자가 확대되면 성장의 기반도 튼튼해질 수 있다. 주요 선진국의 성장세가 둔화하는 가운데 한국의 성장 전망과 재정 여력이 개선되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역시 한국의 성장세와 재정 여력 개선에 주목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을 두고 '역사적 전환점'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화려한 거시 지표들의 속내는 여전히 암울하다. 반도체 이외 분야의 경기침체가 이어지면서 자영업자 연체율은 13년3개월 만에 최고를 찍었고, 빚을 내 버티다 폐업한 자영업자의 대출금은 21조원을 넘어섰다. 청년고용률은 29개월째 하락 중이다. 구직활동조차 하지 않은 '쉬었음' 청년은 줄었지만, 이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실업자로 이동하는 착시가 나타나고 있다.
경제가 성장하는 것과 가계가 그 성장을 체감하는 것 사이에는 여러 단계가 있다. 반도체 기업의 실적 개선이 국내 투자 확대로 이어지고, 그 투자가 일자리와 임금 상승으로 연결돼야 비로소 가계의 소비 여력도 커진다.
또 하나는 호실적을 낸 기업들이 납부한 세금이 국가 재정을 통해 약하고 필요한 곳에 흘러들어가는 것이다. 정부의 재정 투입은 적재적소에 쓰인다면 훨씬 강력하고 직접적이다. 정부도 이같이 내년도 예산을 역대 최대인 821조원으로 꾸렸고 100조원의 비상금인 미래대응기금도 신설했다.
관건은 속도와 지속가능성이다. 독주하는 반도체가 만들어낸 재정 마중물을 어떤 방식으로 효과적으로 흘려보낼지가 과제다. 재정은 내수로 통하는 정책적 지름길이지만, 어떻게 지속가능하게 쓸 것인가가 다음 남은 숙제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역시 최근 기준금리 동결 후 재정지출의 지속가능성을 강조했다. 일시적 재정지원이 지속적인 지출로 굳어진다면 후에 되돌리려 할 때 어려울 수 있는 만큼 엄격한 심사와 재정건전성이 고려돼야 한다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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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형일 부총리가 언급한 "시간이 지나면"이라는 설명에는 세밀한 정책의 구체성이 더해져야 한다. 세계가 괄목할 만한 성장 과실을 우리 국민들도 동의하고 체감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성장의 효과가 어떤 경로로 전달되고 있는지, 어디에서 더디게 흐르는지 점검해야 한다. 지금 가계에 필요한 것은 높은 성장률 숫자가 아니라 당장 내 주머니의 소득과 안정적 일자리다.
정부의 역할도 여기에 있다. 기업의 투자가 국내 고용과 산업 전반의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질 여건을 만들고, 회복에서 뒤처진 부문의 그늘을 살펴야 한다. 호황으로 확보한 재원 역시 당장의 내수를 뒷받침하면서 지속적인 소득 기반을 넓힐 수 있도록 써야 한다.
반도체가 끌어올린 성장세는 반갑다. 이제는 그 성장이 얼마나 오래 이어질지와 함께 얼마나 넓게 퍼질지를 물어야 한다.
이형일 부총리는 최근 "수요가 공급을 압도하고 있어 반도체 호황은 적어도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라며 올해 성장률 3.5% 안팎 달성을 전망했다. 올해와 내년은 한국 경제가 외적인 성장을 넘어 내실 있는 성장 모멘텀으로 체질을 전환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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