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젤리츠는 100% 예술가…매일 마지막 날처럼 그렸다”[박현주 아트클럽]
등록 2026/08/29 18:57:30
수정 2026/08/29 19:24:38
장남 다니엘 블라우 인터뷰
‘거꾸로 화가’ 그 너머…아들이 본 아버지 바젤리츠
“세화미술관 마지막 전시실 감동…아버지를 위한 채플”
재단 설립설엔 선 그어…“생전 작품·유산 관리 체계 이미 구축”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장남 다니엘 블라우(Daniel Blau)가 29일 서울 중구 세화미술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바젤리츠 전시를 돌아보고 있다. 2026.08.29 2026.08.29. pak7130@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6/08/29/NISI20260829_0021415523_web.jpg?rnd=20260829184040)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장남 다니엘 블라우(Daniel Blau)가 29일 서울 중구 세화미술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바젤리츠 전시를 돌아보고 있다. 2026.08.29 2026.08.29.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마지막 전시실은 바젤리츠를 위한 채플(예배당) 같습니다.”
지난 4월 세상을 떠난 독일 현대미술의 거장 게오르그 바젤리츠(1938~2026)의 장남 다니엘 블라우(64)가 서울 광화문 세화미술관 전시의 마지막 공간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블라우는 게오르그 바젤리츠 사무국·아카이브(Büro & Archiv Georg Baselitz) 대표를 맡고 있다.
금빛 화면 위에 거꾸로 매달린 늙은 육체. 선은 가늘어지고 형상은 희미해졌다. 평생 그림을 뒤집고 부수고 다시 시작했던 화가가 마지막에 도달한 것은 뜻밖에도 ‘하나의 선’이었다.
29일 뉴시스와 만난 블라우는 “아무런 기대나 선입견 없이 전시를 봤는데 뜻밖에 굉장히 훌륭했다”며 “특히 마지막 전시실은 정말 가슴이 아플 정도로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그곳에는 바젤리츠가 생의 마지막 시기에 그린 ‘골드 페인팅’이 펼쳐져 있다. 블라우에게 아버지의 마지막 그림은 죽음을 앞둔 노화가의 쇠잔한 그림이 아니었다. 평생 덜어내고 또 덜어낸 끝에 남은 회화의 정수였다.
블라우는 마지막 그림을 물에 떨어뜨린 라임 시럽 한 방울에 비유했다.
“물에 라임 시럽 한 방울을 떨어뜨리면 라임 주스가 됩니다. 마지막 그림도 그런 에센스와 같습니다. 한 방울만 남겨 놓으면 나머지 공간은 우리의 상상력이 채우는 것이죠.”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세화미술관 게오르그 바젤리츠(Georg Baselitz) 회고전에 선보인 '골드 페인팅 연작' 전시 전경. 2026.08.12. pak7130@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6/08/12/NISI20260812_0021396525_web.jpg?rnd=20260812141425)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세화미술관 게오르그 바젤리츠(Georg Baselitz) 회고전에 선보인 '골드 페인팅 연작' 전시 전경. 2026.08.12. [email protected]
“매일 그날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그렸다”
바젤리츠는 죽기 직전까지 붓을 놓지 않았다.
무엇이 그를 88세까지 계속 그리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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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우의 대답은 단순했다.
“바젤리츠는 100% 예술가였습니다. 그것은 매일, 매일 작업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죽음을 의식했느냐는 질문에도 주저하지 않았다.
죽음과 삶의 유한성은 말년에 갑자기 등장한 주제가 아니었다.
블라우는 ‘바니타스(Vanitas)’와 독일어 ‘Vergänglichkeit’를 언급했다.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진다는 삶의 덧없음과 유한성이다.
어린 시절 전쟁이 끝난 뒤 목격한 패잔병의 모습부터 말년 거울 속 자신의 늙은 몸까지, 죽음과 소멸은 바젤리츠의 작업을 평생 관통했다.
젊은 시절에는 미술사와 외부 세계에서 죽음의 형상을 끌어왔다. 88세가 된 뒤에는 거울만 봐도 그것이 눈앞에 있었다.
주제는 평생 이어졌다. 그러나 그림은 끊임없이 변했다.
두꺼운 물감과 거친 붓질에서 출발해 마지막에는 하나의 선까지 덜어냈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장남 다니엘 블라우(Daniel Blau)가 29일 서울 중구 세화미술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6.08.29 2026.08.29. pak7130@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6/08/29/NISI20260829_0021415512_web.jpg?rnd=20260829184040)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장남 다니엘 블라우(Daniel Blau)가 29일 서울 중구 세화미술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6.08.29 2026.08.29. [email protected]
“내가 세뇌돼서 좋은 건가, 정말 좋은 그림인가”
세계적인 거장의 아들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일이었을까.
블라우는 “바젤리츠의 아들로 태어난 것은 순전히 행운이었다. 복권과도 같았다”고 웃었다.
그러나 행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강렬한 예술가, 강한 인물과 매일 함께하고 작업실에서 자란다는 것은 어느 정도 ‘세뇌’와도 비슷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그림을 볼 때마다 자신을 의심했다.
‘내가 이 그림을 좋아하는 것은 세뇌됐기 때문인가. 아니면 정말 좋은 작품이기 때문인가.’
1980년대 결혼해 집을 떠난 뒤에도 그는 아버지의 작업실을 자주 찾았다. 갈 때마다 새로운 작품이 기다리고 있었다.
“항상 놀랐습니다. 바로 판단할 수 없었어요. 며칠 동안 곱씹고 소화한 뒤에야 작품의 질을 제대로 알 수 있었습니다.”
블라우는 바젤리츠가 하나의 성공한 방식에 안주하는 작가가 아니었다고 했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장남 다니엘 블라우(Daniel Blau)가 29일 서울 중구 세화미술관에서 인터뷰에 앞서 바젤리츠 전시를 돌아보고 있다. 2026.08.29 2026.08.29. pak7130@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6/08/29/NISI20260829_0021415521_web.jpg?rnd=20260829184040)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장남 다니엘 블라우(Daniel Blau)가 29일 서울 중구 세화미술관에서 인터뷰에 앞서 바젤리츠 전시를 돌아보고 있다. 2026.08.29 2026.08.29. [email protected]
“세상의 오해보다 그림이 막히는 게 더 힘들었다”
바젤리츠는 생전 숱한 논쟁의 중심에 섰다.
하지만 아들이 본 아버지는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괴로워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예술가는 사회의 바깥에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관객이 자신이 하는 일을 모두 이해하기를 기대하지 않았어요. 열린 마음으로 작품과 관계를 맺는 사람이 몇 명만 있어도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논쟁과 충돌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토론을 시작하게 만드는 계기로 받아들였다.
정작 바젤리츠를 괴롭힌 것은 자기 그림이었다.
바젤리츠가 평생 싸운 상대는 세상이 아니라 자기 그림이었다.
그 스트레스를 덜어내는 방법도 미술이었다. 옛 거장의 판화와 아프리카 미술을 수집하고 바라보며 자신의 작업에서 잠시 벗어났다.
다섯 살 아들의 우주는 ‘커피 한 잔’
미술사에서 1969년은 바젤리츠가 형상을 거꾸로 그리기 시작한 해로 기록된다.
하지만 다섯 살 아들에게 그것은 사건이 아니었다.
당시 가족은 U자 형태의 농가에 살았다. 주거 공간에서 아버지의 작업실까지 가려면 계단을 내려가 마당을 건너고 다시 바깥 나무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어머니 엘케는 어린 블라우에게 종종 아버지에게 가져다줄 커피를 맡겼다.
“그때 내 모든 세계, 내 우주는 컵 안의 커피를 쏟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가득 찬 컵을 들고 출발했지만 추운 마당을 지나 작업실에 도착하면 커피는 절반밖에 남지 않았다.
그곳에서 아버지는 절편 회화를 그리고 형상을 거꾸로 그리고 있었다.
세상은 훗날 그 그림을 파격이라고 불렀지만 어린 아들에게는 그냥 아버지의 그림이었다.

전쟁의 폭력을 담은 바젤리츠의 초기작 ‘나뉜 소 두 마리 I’(1966). 세화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는 어린 시절 봤던 ‘나뉜 소 두 마리’도 기억했다.
“나는 소를 좋아했어요. 그래서 그냥 소 그림이 좋았습니다. 왜 이렇게 분절돼 있는지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았죠.”
블라우는 바젤리츠의 ‘거꾸로’를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기발한 장치나 단절로 보지 않았다.
“아주 자연스럽고 논리적인 전개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전시장에 걸린 한 작품을 예로 들었다. 처음 눈에 들어오는 것은 검정과 흰색, 빨강이다. 한참 들여다본 뒤에야 그 속에서 인물이 나타난다.
“처음에는 색만 보입니다. 그것만으로 이미 훌륭한 그림이에요. 나중에 형상을 발견하지만 사실 그 형상이 없어도 그림은 훌륭합니다.”
무엇을 그렸느냐보다 그림 자체를 먼저 보게 하는 것.
바젤리츠에게 형상은 어쩌면 그림을 시작하기 위한 ‘구실’이었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장남 다니엘 블라우(Daniel Blau)가 29일 서울 중구 세화미술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바젤리츠 전시를 돌아보고 있다. 2026.08.29 2026.08.29. pak7130@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6/08/29/NISI20260829_0021415515_web.jpg?rnd=20260829184040)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장남 다니엘 블라우(Daniel Blau)가 29일 서울 중구 세화미술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바젤리츠 전시를 돌아보고 있다. 2026.08.29 2026.08.29. [email protected]
“충격은 ‘거꾸로’가 아니라 바젤리츠의 미술 자체”
그렇다면 블라우는 언제 세상 사람들이 아버지의 거꾸로 그림을 파격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알았을까.
답은 예상 밖이었다.
“사람들이 충격을 받은 것은 거꾸로 그림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바젤리츠의 미술 자체가 논쟁적이었습니다.”
성공은 늦게 찾아왔다.
“오랫동안 아버지의 미술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일해서 돈을 벌었죠.”
엘케는 1970~80년대 독일 보름스에서 여성 패션 매장을 운영했다. 당시 지역에서는 흔치 않았던 프랑스 디자이너의 옷 등을 소개한 아방가르드한 가게였다.
엘케는 동시에 바젤리츠가 평생 가장 많이 그린 인물이기도 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것과 평생 아내를 그린 것이 관계가 있었느냐고 묻자 블라우가 웃었다.
바젤리츠가 아들에게 ‘내 그림에서 엘케는 이런 존재’라고 특별히 설명한 적은 없었다.
“아버지는 자기 작품에 대해 그렇게 많이 이야기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사랑을 설명하지 않았다. 그냥 평생 함께 살았고, 평생 그렸다.

게오르그 바젤리츠 '프랑스에서의 엘케 II'. 엘케는 바젤리츠의 부인으로 평생의 뮤즈였다.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세화미술관 독일 신표현주의 대표 작가 게오르그 바젤리츠(Georg Baselitz) 회고전 전시 전경. 2026.08.12. pak7130@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6/08/12/NISI20260812_0021396510_web.jpg?rnd=20260812141637)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세화미술관 독일 신표현주의 대표 작가 게오르그 바젤리츠(Georg Baselitz) 회고전 전시 전경. 2026.08.12. [email protected]
그림 뒤집기 전에 이미 ‘영웅’을 뒤집었다
이날 인터뷰에 함께한 세계적인 갤러리스트 타데우스 로팍은 ‘거꾸로 그린 화가’라는 수식어만으로 바젤리츠를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그보다 훨씬 많은 것이 있습니다.”
로팍이 꺼낸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의 ‘제로 아워(Zero Hour·Stunde Null)’다.
바젤리츠가 화가로 출발한 독일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이었다. 건물만 무너진 것이 아니었다. 정신과 가치, 기존 질서까지 무너졌다.
아도르노가 ‘아우슈비츠 이후 시를 쓰는 것은 야만적’이라고 말할 만큼 예술의 존재 이유 자체가 근본적으로 질문받던 시대였다.로팍은 “바젤리츠는 그 ‘제로 아워’에서 독일 미술이 어디로 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 작가 가운데 하나”라고 평가했다.
그가 특히 중요하게 꼽은 것은 거꾸로 회화보다 앞서 등장한 ‘영웅들(Heroes)’ 연작이다.
전쟁 직후 독일에서 ‘영웅’은 쉽게 꺼낼 수 있는 단어가 아니었다. 나치와 전쟁, 국가주의의 기억이 달라붙어 있었다.
그런데 바젤리츠는 ‘영웅’을 그렸다.
다만 그의 영웅은 승리자가 아니었다. 병들고 망가졌다. 누더기를 걸쳤다. 황폐한 땅 위에 선 패잔병 같은 인간이었다.
로팍은 이를 “자신이 속한 나라, 그 시대의 인간적 조건에 대한 정치적 발언”이라고 표현했다.바젤리츠는 그림을 거꾸로 뒤집기 전에 이미 ‘영웅’이라는 관념부터 뒤집고 있었던 셈이다.
로팍은 “기존의 영웅주의를 의심하고 뒤집으면서 폐허 속에서도 예술이 다시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인간의 조건과 예술의 조건을 다시 정의한 화가”라고 평가했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장남 다니엘 블라우(Daniel Blau)가 29일 서울 중구 세화미술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바젤리츠 전시를 돌아보고 있다. 2026.08.29 2026.08.29. pak7130@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6/08/29/NISI20260829_0021415516_web.jpg?rnd=20260829184040)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장남 다니엘 블라우(Daniel Blau)가 29일 서울 중구 세화미술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바젤리츠 전시를 돌아보고 있다. 2026.08.29 2026.08.29. [email protected]
“바젤리츠 재단 설립 계획 없다”
바젤리츠 사후 별도의 재단이 설립될 것이라는 관측에는 선을 그었다.
재단 설립이 어느 정도 진행됐느냐는 질문에 블라우는 “금시초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아버지가 생전에 자신의 작품과 유산을 관리하는 체계를 이미 정리해 놓았기 때문에 별도의 재단을 새로 설립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대신 가족은 바젤리츠가 생전에 구축한 조직과 아카이브를 이어받아 관리하고 있다. 법적인 형태의 재단은 아니지만 작품의 제작 기록과 소장 이력, 프로비넌스(소장 경로) 등을 관리하고 관련 문의에 대응하는 등 사실상 재단이 담당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설명이다.
카탈로그 레조네 작업도 주요 과제다. 바젤리츠는 생전 아카이빙에 강한 관심을 갖고 이를 담당할 인력과 조직까지 갖춰 놓았다고 전했다.
작가는 떠났지만 자신의 작품이 어떻게 기록되고 관리될지까지 준비해 놓은 셈이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세화미술관 독일 신표현주의 대표 작가 게오르그 바젤리츠(Georg Baselitz)의 전시 전경. 2026.08.12. pak7130@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6/08/12/NISI20260812_0021396534_web.jpg?rnd=20260812141559)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세화미술관 독일 신표현주의 대표 작가 게오르그 바젤리츠(Georg Baselitz)의 전시 전경. 2026.08.12. [email protected]
그림은 미술사에, 버섯 사랑은 아들에게
미술사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아들만 기억하는 바젤리츠의 모습을 하나만 들려달라고 했다.
블라우는 1970년대 기숙학교 시절로 돌아갔다. 아버지가 자신을 데리러 왔다. 당시 동독에서 휴가를 받아 서독을 방문한 할아버지도 함께였다.
그런데 아버지가 아들을 만나자마자 꺼낸 이야기는 그림이 아니었다.
“트러플을 찾았다. 우리 찾으러 가자.”
집으로 돌아온 이들은 곧장 근처 숲으로 향했다.
바젤리츠는 나무 아래로 몸을 낮추고 들어가 냄새를 맡으며 트러플과 버섯을 찾아다녔다.
세계적인 화가가 아니라 버섯을 찾아 숲을 헤집는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버섯을 정말 좋아했습니다.”
그 취향은 아들에게 이어졌다.
“저도 버섯과 트러플을 좋아합니다.”
블라우가 웃었다. 미술과는 아무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더 오래 남았다.
그림을 뒤집는 법을 물려받은 것은 아니다. 버섯을 좋아하는 마음을 물려받았다.
세계는 게오르그 바젤리츠를 ‘거꾸로 그린 화가’로 기억한다.
아들에게 그는 추운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던 아버지였고, 숲바닥을 헤집으며 트러플을 찾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죽는 날까지 자기 그림보다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가려 했던 ‘100% 예술가’였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장남 다니엘 블라우(Daniel Blau)가 29일 서울 중구 세화미술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바젤리츠 전시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다니엘 블라우(Daniel Blau)와 부인 마리아 헤이스팅스-컨(Maria Hastings-Kern), 안미희 세화미술관 관장. 2026.08.29 2026.08.29. pak7130@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6/08/29/NISI20260829_0021415513_web.jpg?rnd=20260829184040)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장남 다니엘 블라우(Daniel Blau)가 29일 서울 중구 세화미술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바젤리츠 전시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다니엘 블라우(Daniel Blau)와 부인 마리아 헤이스팅스-컨(Maria Hastings-Kern), 안미희 세화미술관 관장. 2026.08.29 2026.08.29. [email protected]
한편 19년 만의 한국 미술관 개인전이자 바젤리츠 사후 첫 한국 전시인 세화미술관의 바젤리츠전은 하루 평균 500~600명이 찾고 있다. 전시는 12월27일까지 열린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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