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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업 필름]'호프'를 이해하기 위하여

등록 2026/07/23 05:30:00

수정 2026/07/23 06:17:15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영화 '호프'를 향한 볼멘소리는 대체로 이렇다. "서사가 없다" "원인도 없고 결과도 없다" "설명도 없다" 등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이 작품은 심플한 서사를 가지고 있고, 난데 없이 시작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끝을 맺으며, 손도 내밀지 않는다. 적절히 굴곡 있는 이야기가 딱 맞아떨어지는 인과관계 속에서 이어지다가 온전히 귀결되는 영화에 익숙한 관객에게 '호프'는 이상하고 불편하다. 이상하고 불편한 걸 반기는 사람은 많지 않은 법이고 이런 작품에 혹평이 쏟아지는 건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관객이 거북해 한다고 해서 다시 말해 불호가 다수라고 해서 특정 영화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는 건 아니다. 관객이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어떤 영화가 이뤄낸 성취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서사가 없어 보이고 원인과 결과가 없어 보이며 설명이 없어 보인다고 해도, 이상하고 불편하다고 해도, 그것이 치밀하게 의도되고 철저히 통제됐으며 그로 인해 이미지와 텍스트 양쪽 모두에서 충격을 준다면, 그런 영화를 빼어난 작품이라고 평가하는 것 역시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호프'는 장르영화다. 한 가지 장르만 있는 게 아니라 온갖 게 뒤섞여 있다. 핵심 장르는 일단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액션, 크리처, SF. 이 세 가지는 '호프'의 외면이다. 눈에 보이는 것들이다. '호프'는 러닝타임 156분 간 액션을 펼쳐놓는다. 크리처를 등장시켜 액션을 이어간다. SF 요소를 연달아 쏟아내며 액션과 크리처를 변주한다. 다만 액션·크리처·SF는 발현된 것들, 다시 말해 표현 방식이다. '호프'엔 이 영화 세계관을 규정하는 장르가 하나 더 있다. 코스믹호러. 나홍진 감독은 코스믹호러라는 내면을 액션·크리처·SF라는 외면으로 드러낸다.

코스믹호러(cosmic horror)는 1890년대~1900년대 초반 앨저넌 블랙우드, 로버트 W 체임버스 등의 소설에서 시작됐으며, 미국 작가 러브크래프트가 사실상 정립한 장르다. 호러는 호러인데 귀신이나 살인마 혹은 괴물이 등장하지 않는 호러물이다. 이 장르 핵심은 극도의 공포를 유발하는 어떤 사건이 발생하는데, 이 사건의 주체를 알지 못한다는 데 있다. 인간 이해가 닿지 않는 곳, 불가해한 존재의 힘에 의해 발생하는 사고들을 어쩌지 못하고 그저 감당해야 할 때 발생하는 공포를 다루는 게 바로 이 장르다. 그래서 코스믹(cosmic)이란 단어가 붙는다.

영화계에선 1960년대부터 이 장르를 활용한 영화가 만들어졌으나 당시엔 크게 주목 받지 못했다. 사실상 처음 성공했다고 볼 수 있는 작품은 리들리 스콧이 1979년에 내놓은 '에일리언'이다.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알 수 없고 선악을 구분할 수 없는 괴생명체가 난데 없이 튀어나와 인간을 학살한다는 내용이 코스믹호러와 공명한다. 이후 존 카펜터의 '더 씽'(1982) 등을 거쳐 가장 가까운 사례는 조던 필의 '놉'(2022)이다. '놉'에서 언급되는 "나쁜 기적"이 바로 코스믹호러의 다른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도대체 이유를 알 수 없고 해석되지 않는 사건들이 바로 그 우주적 공포다.

'호프'는 명백한 코스믹호러물이다. 호포항은 어느 날 갑자기 초토화됐다. 누가 그런 것인지, 왜 그런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범석(황정민)은 어쩔 줄을 모른다. 그는 이게 다 무슨 일인지, 누가 그런 것인지 캐묻고 확인하러 다니지만 어디에서도 답을 얻지 못한다. 범석은 무기력하다. 이때 그가 할 수 있는 건 탄식하는 것 뿐이다. "세상에" "X발". 그러니까 '호프'에서 서사 없이, 원인과 결과 없이, 설명 없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건 코스믹호러라는 장르 문법에 충실한 전개 방식이다.

이 장르적 세계관은 나홍진 영화에서 이미 한 차례 드러난 적이 있다. 전작 '곡성'(2016)에서 말이다. 종구(곽도원)의 딸(김환희)은 어느 날 갑자기 이상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딸의 기행은 종구의 삶을 초토화한다. 종구의 딸이 왜 그렇게 돼버린 것인지 그리고 왜 하필 종구의 딸이 그렇게 돼야 했는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 종구는 이 사태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기에 발악하다 울부짖는다. '곡성'은 이 우주적 공포를 낚시에 비유했다. 말하자면 '곡성'은 코스믹호러가 안에서 흐르며,오컬트가 밖으로 보여지는 영화였다.

나 감독은 '곡성'에서 출발시킨 코스믹호러 세계관을 '호프'에서 계승·발전한다. '곡성'은 불가해한 세상 앞에서 고꾸라지고마는 한 인간을 그렸다면, '호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뎌내려는 이들을 보여준다. '호프'엔 '곡성'의 종구와 유사한 캐릭터인 범석 외에도 성애·성기·낙연이 있다. 범석은 종구가 그랬던 것처럼 이 사태를 확인하고 규정해보려는 자다. 그리고 그는 일단 쉬지 않고 달린다. 성애는 맞서 싸우려는 자다. 성기는 어떻게든 생존하려는 자, 낙연은 자꾸 숨으려는 자다. '호프'는 이들이 연대해 의미를 알 수 없는 그 사태를 버텨볼 수 있게 한다.

만약 '호프'가 여기서 그쳤다면 코스믹호러의 정석을 잘 밟아간 평범한 영화가 됐겠지만, 나 감독은 후반부에 이르러 이 장르의 전형을 전복함으로써 코스믹호러 세계관을 새로 개척한다. 이를테면 '호프'는 코스믹호러에서 리버스 코스믹호러가 된다는 것. 이 전환은 무의미의 상징으로 남아 있어야 하며 인간 이해가 닿지 않는 곳에 머물러야 하는 외계생명체들에게 서사가 부여되면서부터 시작된다. 이때 인간은 이 세계관의 무고한 피해자이자 동시에 무심한 가해자가 되고, 외계생명체는 무심한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무고한 피해자가 된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호포항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외계생명체 역시 서사가 없고, 원인과 결과가 없으며, 설명이 없는 일을 당했다. 리버스 코스믹호러의 전조를 보여주는 사건은 마을에 나타난 외계인 바미기르의 죽음이다. 바미기르는 범석과 성애가 사냥한 게 아니다. 물론 그들에 의해 많이 다치고 다리가 잘리기까지 했으나 그는 살아 있었다. 바미기르는 사냥당해 죽은 게 아니라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바미기르가 도망치는 길에 대형트럭이 지나는 중이었고 그는 피하지 못하고 치였다. 우연히 죽어버린 것이다.

관객이 바미기르 죽음 뒤에 목도하는 건 아기 외계인 칼리의 죽음이다. 칼리는 양배(음문석)가 쏜 총에 맞아 죽었다. 양배는 숲에 갔다가 우연히 괴물을 봤고, 아무 생각 없이 칼리를 사살했다. 바미기르의 죽음과 칼리의 죽음은 다른 것 같지만 다르지 않다. 그 모든 게 의미를 알 수 없는 우연이었다는 것. 이들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지구에 불시착 한 것으로 보이고 의문의 행성에서 무의미하게 죽었다. 외계생명체 시각에서 이 모든 일련의 사건들은, 그리고 총을 들고 달려드는 인간은 우주적 공포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호프'에서 펼쳐지는 인간과 외계생명체 간 다툼은 카오스 그 자체다. 이 무의미한 세계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이 아무런 목적도 목표도 없이 그저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향해 달려드는 아수라장다.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악다구니를 쓰는 성기를 바라보는 마베이요의 그 이상한 눈을 보면 어쩌면 그가 이 싸움엔 어떤 의미도 없는 것 같다고 짐작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마베이요를 이겨냈다고 환호하던 성기가 양배의 운전 실수 하나에 나가떨어져버리는 건 이 대결의 무의미함을 상징한다.

갈 때까지 가버린 나 감독과 '호프'는 이제 폭주한다. 코스믹호러의 주체와 객체를 뒤집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상대에게 주체이면서 객체이고 객체이면서 주체인 인간과 외계인 모두를 피해자로 전락시키는 우주적 공포를 선사하는 것이다. 바로 쿠얼의 전함의 추락. 인간이 이 사태를 이해할리 만무하고, 조르와 마베이요 역시 이 사태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들 모두 이 재난 상황 앞에서 무기력하다. '호프'는 코스믹호러에서 리버스코스믹호러로 갔다가 이 지점에서 다시 한 차원 높은 코스믹호러로 변신한다. 이게 다 뭐란 말인가.

앞서 '호프'는 '곡성'과 달리 무의미와 불가해를 견디는 이들의 얘기라고 말했다. 이제 이들은 이 대재앙을 견뎌야 한다. 견디는 방법이 달리 있는 게 아니다. 이 무의미하고 불가해한 일들은 결국 의미가 있는 일이고 해석할 수 있게 될 거라고 믿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호프'는 마베이요를 통해 신약성서 11장1절을 가져온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다(Faith is confidence in what we hope for and assurance about what we do not see)." 그리고 범석과 성애와 낙연은 달린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지만 어딘가로 달린다. 성기도 계속 가야 한다. 그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말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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