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었다던 딸은 미국 입양"…친모는 33년째 기록도 못 봤다
등록 2026/05/31 09:00:00
수정 2026/05/31 09:13:39
30여년 전 죽었다던 아이가 미국에…서류엔 '가출 미혼모'
당사자만 기록 열람 가능…친생부모는 입양 경위도 몰라
![[서울=뉴시스]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이애리라나씨가 취재진과 이야기 나누고 있다. 2026.05.29. photo@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6/05/29/NISI20260529_0002148550_web.jpg?rnd=20260529152729)
[서울=뉴시스]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이애리라나씨가 취재진과 이야기 나누고 있다. 2026.05.29.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조성하 기자, 유지담 인턴기자 = "아이한테 연락이 올까 봐 20년 넘게 같은 번호를 썼어요. 죽도록 미운 마음이라도 갖고 살아있으면 싶었는데…"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애리라나(52)씨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한 채 눈가를 훔쳤다. 1993년 경기 성남의 한 병원에서 첫 딸을 출산했지만, 아이를 품에 안아보지도 못한 채 헤어져야 했다.
당시 병원과 입양기관 동방사회복지회(동방) 측은 "아이에게 심각한 기형이 있어 정밀 검사가 필요하다"며 아이를 데려갔고, 며칠 뒤 "아이가 숨졌다"고 통보했다. 스무살이었던 이씨는 그 말을 믿고 살아왔다.
하지만 14년 뒤 이씨는 전혀 다른 사실을 알게 됐다. 2007년 동방에 연락해 아이의 장례 장소를 묻던 이씨는 딸이 죽지 않았고 미국으로 입양됐다는 설명을 들었다. 입양 서류에는 자신이 '아픈 아이를 버리고 가출한 미혼모'로 기록돼 있었다.
그는 "어떤 엄마가 아이가 아프다고 버리고 가출하겠냐"며 "그렇게 아이를 버린 사람이라면 같은 남자와 결혼해 아이 둘을 더 낳았겠냐"고 울먹였다.
![[서울=뉴시스] 해외입양된 딸 박미애씨의 어린 시절 모습. (사진=이애리라나씨 제공) 2026.05.29. photo@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6/05/29/NISI20260529_0002148557_web.jpg?rnd=20260529152906)
[서울=뉴시스] 해외입양된 딸 박미애씨의 어린 시절 모습. (사진=이애리라나씨 제공) 2026.05.29. [email protected]
"묻힌 곳이라도 알고 싶었다"…14년 뒤 알게 된 해외입양
아이를 잃은 뒤에도 죄책감과 상실감은 오랫동안 이씨를 따라다녔다. 특히 아이 생일이 있는 6월만 되면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감과 무기력증이 반복됐다.
그는 "건강하게 낳지 못해 아이가 죽었다는 자책을 눌러 담고 살았다"며 "남편에게도 힘든 내색을 제대로 못 했다"고 말했다. 동방에 전화를 걸어 "어디에 묻혔는지라도 알려달라"고 묻기도 했다.
그러나 동방 측 설명은 이씨가 알고 있던 내용과 전혀 달랐다. 아이가 죽지 않고 미국 미네소타주로 입양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뉴시스] 이애리라나씨가 딸의 생존 소식을 들은 뒤 작성한 일기 일부. 일기에는 딸과 함께 하고 싶은 일상에 대한 바람이 담겨 있다. (사진=이애리라나씨 제공) 2026.05.29. photo@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6/05/29/NISI20260529_0002148575_web.jpg?rnd=20260529154015)
[서울=뉴시스] 이애리라나씨가 딸의 생존 소식을 들은 뒤 작성한 일기 일부. 일기에는 딸과 함께 하고 싶은 일상에 대한 바람이 담겨 있다. (사진=이애리라나씨 제공) 2026.05.29. [email protected]
친부 성 '박(Park)' 되찾은 딸…"한국 갈래" 꿈 남기고 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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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이씨는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날을 기다리며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널 버린 게 아니다"라는 말 만큼은 꼭 전하고 싶어서였다.
가방 속 파일에는 딸에게 닿기 위한 여정이 빼곡했다. 동방과 미국 입양기관을 거쳐 양모에게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받기까지는 2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그 과정에서 그는 딸이 논바이너리 성 정체성과 종교 문제로 양부모와 갈등을 겪었고, 성인이 된 뒤 집을 떠나 미국 횡단 여행을 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박씨는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캘리포니아 고등법원에 성씨 개명 신청을 했고, 2023년 4월 친부 성인 '박(Park)'으로 개명 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틀 뒤 그는 "한국에 가는 꿈은 이루지 못할 것 같다"는 말을 남긴 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유품으로 남겨진 메모장에는 "나의 진짜 자아를 찾은 것 같다", "한국 가는 티켓 비용을 마련하겠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
![[서울=뉴시스] 조성하 기자 = 이애리라나씨 등 해외입양 피해 어머니들이 어버이날인 8일 오후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앞에서 자녀 사진을 들고 국가 차원의 진상규명과 전수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2026.05.08. create@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6/05/08/NISI20260508_0002130746_web.jpg?rnd=20260508161046)
[서울=뉴시스] 조성하 기자 = 이애리라나씨 등 해외입양 피해 어머니들이 어버이날인 8일 오후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앞에서 자녀 사진을 들고 국가 차원의 진상규명과 전수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2026.05.08. [email protected]
"죽은 딸이 와야 기록 공개?"…친생부모는 여전히 배제
이씨는 지금도 딸이 어떤 과정을 거쳐 해외로 입양됐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현행 입양특례법상 친생부모가 입양 기록에 접근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아동권리보장원과 국민권익위원회, 국무총리 비서실 등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고 했다.
이씨는 "죽은 아이가 직접 와야만 기록을 볼 수 있다는 말을 반복해서 들었다"며 "내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로 만들어진 서류인데 친모인 내가 아무것도 확인할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토로했다.
현행 입양특례법은 입양인의 알 권리를 중심으로 설계돼 있어 친생부모의 기록 접근은 제한적이다. 해외에서 사망한 입양인의 경우에도 친생부모가 관련 기록을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관계자는 "아동권리보장원 등에 정보공개를 청구하더라도 개인정보보호를 이유로 입양인에 대한 자료 제공이 안 될 가능성이 크다"며 "(입양인이 사망한 경우에도) 친생부모가 관련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마땅치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씨를 포함한 과거 해외입양 과정에서 자녀를 강제로 빼앗겼다고 주장하는 여성 5명도 지난 8일 진실화해위에 진상규명을 요청했다. 이들은 입양기관이 친모의 서명을 위조한 서류를 이용해 아이들을 해외로 입양 보냈다고 주장하며 기록 접근권 보장과 국가 차원의 전수 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배진시 몽테뉴해외입양연대 대표는 "과거 조산소와 입양기관, 브로커가 결탁한 불법 입양이 성행했던 시기가 있었다"며 "지금은 당사자가 사망해 법적으로 밝히기 어려운 만큼 양부모 측 자료 확보 등이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시행된 '국제입양에 관한 법률'로 해외입양 절차는 국가 책임 체계로 전환됐지만, 기록 공개와 정보 제공 기준은 기존 입양특례법과 큰 틀에서 달라지지 않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진실화해위 관계자는 "이전 법에 비해선 조금 확대된 부분이 있긴 하지만 (기록 접근 문제는)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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