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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도 마사히코, '어른의 미학'…'긴기라긴니 신드롬'부터 서킷의 철학까지

등록 2026/05/30 09:00:00

수정 2026/05/30 09:04:26

데뷔 47년 만에 첫 단독 내한 공연 앞두고 서울서 인터뷰

6월27일 서울 블루스퀘어서 '마사히코 곤도 ~오맛치합니다 2026!'

[서울=뉴시스] 곤도 마사히코. (사진 = 주식회사 커튼콜 제공) 2026.05.3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곤도 마사히코. (사진 = 주식회사 커튼콜 제공) 2026.05.3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1980년대 일본 대중음악의 황금기를 상징하는 아이콘 곤도 마사히코(62·近藤真彦·콘도 마사히코)가 데뷔 47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 무대에 오른다. 오는 6월27일 서울 블루스퀘어에서 열리는 첫 단독 내한 공연 '마사히코 곤도 ~오맛치합니다 2026! 스페셜 인 서울'은 단순한 과거의 재현이 아니다. 국경을 넘어 한 시대의 청춘들을 매료시켰던 '긴기라긴니 신드롬'의 열기가, 40여 년의 세월을 건너 새로운 세대의 목소리로 다시 피어오르는 경이로운 문화적 순환의 현장이다.

우상이라는 존재는 필연적으로 세월의 풍화 작용 앞에서 시험대에 오른다. 10대의 나이에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섰던 소년은, 타인이 만들어준 가마 위에 안전하게 머무는 대신 기꺼이 거친 현실의 땅에 두 발을 딛는 길을 택했다. 서킷이라는 냉혹하고도 솔직한 세계로 뛰어들고, 값비싼 슈트에 '입혀지지' 않기 위해 자신만의 안목을 벼려온 47년의 궤적. 그것은 부여받은 화려한 환상의 껍질을 걷어내고, 삶의 무게와 흠결마저 생의 나이테로 긍정하는 단단한 '어른'이 돼가는 치열한 투쟁기였다.

그의 대표곡 ' '긴기라긴니 사리게나쿠(ギンギラギンにさりげなく·킨기라긴니 사리게나쿠)'(화려하지만 자연스럽게)는 어쩌면 그가 평생을 바쳐 도달하고자 했던 삶의 예언이었을지도 모른다. 50세를 넘겨서야 비로소 인위적인 힘을 빼고 온전한 자신을 표현할 수 있게 됐다는 그의 고백은 깊고 묵직하다. 자연스러움이란 단지 꾸미지 않은 태초의 상태가 아니라, 숱한 인위와 작위의 강박을 깨고 나온 자만이 비로소 획득할 수 있는 생의 가장 성숙한 질감이기 때문이다.

1979년 배우로 데뷔한 곤도는 이듬해 발표한 '스니커 블루스(スニーカーぶる〜す)'로 오리콘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이어 1981년 제23회 일본 레코드 대상에서 '골든 아이돌상'을 수상했다. 1987년 제29회 일본 레코드 대상에서는 '오로카모노(愚か者)'로 영예의 '대상'까지 거머쥐며 톱스타 반열에 올랐다. '긴기라긴니 사리게나쿠'는 1981년 발매 당시 일본은 물론 한국 청년층까지 사로잡으며 신드롬급 인기를 누렸다. 이 곡은 2024년 MBN '한일가왕전'에서 스미다 아이코의 무대로 재조명됐다. 해당 영상은 현재까지 조회수 1300만 회를 돌파하는 등 식지 않는 인기를 얻고 있다.

곤도는 2024년 MBN '한일톱텐쇼'를 통해 한국 방송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이듬해인 2025년에는 일본 후지TV '한일가왕전 재팬라운드'와 MBN '2025 한일가왕전' 심사위원으로 잇따라 활약했다. 같은 해 니혼TV '더 뮤직 데이 2025'에서는 그룹 '투어스(TWS)'와 '긴기라긴니 사리게나쿠' 합동 무대를 꾸몄다.

정신적 스승이었던 재일 교포 작가 이주인 시즈카가 남긴 "순풍에 서지 말고 역풍에 맞서라"는 가르침을 나침반 삼아, 그는 여전히 자신만의 속도로 인생이라는 레이스 트랙의 반환점을 질주하고 있다. 고급 프라이빗 룸의 고립된 위안보다 동네 중화요리집의 소박하고 왁자지껄한 온기를 사랑하게 된 예순둘의 사내. 시대의 거품이 걷힌 자리에는 오직 시간만이 빚어낼 수 있는 담백한 품격이 남았다.

이제 꾸밈없는 목소리로 47년을 기다려 온 한국 팬들 앞에 서는 곤도와 최근 서울에서 만나 나눈 다음의 대화는 화려했던 어제의 영광을 되새김질하는 향수가 아니라, 치열하게 삶의 궤도를 이탈해 본 자만이 들려줄 수 있는 '어떻게 나이 들어갈 것인가'에 대한 유려하고도 진실한 대답이다.

-이전에 한국 방송엔 출연하셨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단독 공연을 하시게 됐습니다. 각오나 현재 소감이 어떠신가요?

"40년 전쯤 한국에서 유행했던 '긴기라긴니 사리게나쿠'가 최근 젊은 친구들의 힘으로 다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이 인기 덕분에 한국에서 처음으로 콘서트를 할 수 있게 돼 무척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긴기라긴니 사리게나쿠'라는 노래가 다시 유행하게 된 흐름이 굉장히 재미있는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역시 제 힘이라기보다는 그 노래가 가진 힘 덕분에 노래가 국경을 넘어가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기세를 더욱 북돋우기 위해 이번 라이브가 좋은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오전에 MBC FM4U '오늘 아침 윤상입니다'에 출연하셨죠. '긴기라긴니 사리게나쿠'가 송출됐는데 지상파 라디오에서 일본어 노래의 완곡이 선곡된 건 특별한 일입니다.

"오늘 라디오가 생방송이어서 청취자분들의 생생한 메시지를 바로 화면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를 떠올리며 빨래를 하다가 무심코 춤을 췄어요' 같은 여러 댓글이 쫙 올라오는 것을 보고, 이런 분들이 라이브에 와주시면 정말 기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스니커 블루스'를 부르시던 소년 시절에서 지금은 조금 차분한 어른의 모습이 되셨습니다. 47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는데, 그럼에도 지금과 공통된 부분이나 그때와 지금의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스니커 블루스'를 부르던 시절에는 요령 있게, 기교를 부려 노래하지 못했습니다. 어렸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 기교 없는 모습이 오히려 '곤도 마사히코의 노래'라는 말을 여러 사람에게 듣게 했고, 그래서 저답지 않게 기교를 부려 부르는 것을 그만뒀습니다. 저답게 부르기로 한 것이죠. 지금도 저답게 노래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윗세대 분들이 선생님의 모습을 예전부터 보며 '멋있다'며 동경의 시선으로 바라보셨을 텐데, 그때 본인께서도 주변의 동경 어린 시선을 느끼고 계셨나요?

"특별히 느끼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조금 부자연스럽게, 멋있게 불러야 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그건 아주 한순간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렇고 예전에도 어쨌든 '나답게'라는 것을 가장 먼저 생각하며 노래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나이키 스니커즈가 유행하게 된 계기가 선생님이라고 들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어릴 때 선배들이 신발을 끈으로 묶어 목에 거는 것을 무심코 따라 했었는데,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음악뿐만 아니라 패션을 포함해 정말 시대의 아이콘 같은 상징이셨습니다.

"일본에 아직 나이키가 들어오지 않았을 때, 회사 사장님이 로스앤젤레스에서 검은색 나이키를 선물로 사 오셨습니다. 그걸 TV 의상으로 사용했는데, 젊은 사람들이 '저게 뭐냐'고 하면서 인기를 끌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첫 앨범 표지 사진을 보면 나이키 신발을 목에 걸고 있습니다."

-다양한 활동과 도전을 하고 계신데, 레이싱 쪽도 깊이 있게 하시는 것으로 압니다. 레이싱에 입문하게 된 계기와, 음악과 레이싱 이 두 가지의 공통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서울=뉴시스] 곤도 마사히코. (사진 = 주식회사 커튼콜 제공) 2026.05.3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곤도 마사히코. (사진 = 주식회사 커튼콜 제공) 2026.05.3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레이스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닛산 '마치' 광고였습니다. 닛산 홍보팀에서 서킷에 데려가 주셨는데, 거기서 자극을 받아 레이스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수많은 스태프가 있지만 무대에 올라가 승부를 내는 건 역시 혼자라는 점입니다. 스태프들의 엄청난 지원을 받는 직업이라는 것이 공통점이겠네요. 그리고 '비일상'이라는 점입니다. 비일상을 찾아오는 음악 관계자들이 많습니다."

-그 비일상적인 것이 보는 사람에게 판타지가 되는 것인가요, 일상으로부터의 해방인가요?

"둘 다입니다. 관객 입장에서는 직접 맛볼 수 없는 스피드, 냄새, 박력 같은 것들이죠. 관객의 일상에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보며 스트레스를 발산하기도 하고 새로운 발상으로 전환하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음악 관계자들이 종종 자극을 구하러 옵니다."

-가수도 레이스도 혼자 이겨내야 하는 부분이 있어 힘드실 것 같습니다. 본인의 페이스 조절, 즉 속도 조절을 굉장히 잘하시는 것 같은데, 의식하신 점이나 어떤 과정을 거쳐 그렇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속도 조절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부분이었기에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다만 계산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여기선 달려야겠다', '여기선 쉬어야겠다'라는 게 몸에 배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계산해서 할 수 있는 타입이 아닙니다."

-평소 책도 꽤 읽으시는 것으로 아는데, 작가 이주인 시즈카 선생님을 동경하신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동경하게 된 계기나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 끌리셨나요?

"'스니커 블루스'의 B면에 '혼모쿠 랫(ホンモク·ラット)'(이주인 시즈카의 작사가 필명은 '다테 아유미(伊達歩)'다.)라는 곡이 있었습니다. 그 곡을 이주인 선생님이 써주셨는데, 16살에 스튜디오에서 처음 뵈었을 때 그 남자의 아우라랄까요. 어린 저에게 '어른이 되면 이런 모습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든 첫인상이었습니다. 말수도 별로 없으시고 미소도 적으셨죠. 거기까지도 좋았는데, 제가 갖고 싶었던 검은색 캐시미어 코트를 입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원했던 그 코트를 데뷔하고 조금 지나서 샀습니다."

-경제적 여유는 인생 경험을 쌓아가며 생기고 비싼 옷도 살 수 있겠지만, 비싸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죠. 진짜 좋은 것인지 자신의 눈으로 판단하는 안목이 어른이 되면서 필요해지는데, 사물을 보는 눈을 기르기 위해 노력하신 적이 있나요, 아니면 자연스럽게 생기셨나요?

"노력은 했다고 봐야겠네요. 예를 들어 멋진 슈트를 입고 싶을 때, '슈트에 입혀져 있다'라는 표현이 있지 않습니까. 저는 슈트를 제대로 소화해 내야 한다는 것을 굉장히 의식했습니다. 비싼 슈트를 샀는데 '쟤는 슈트에 입혀져 버렸네'라는 말을 듣는 게 너무 싫어서, '저 녀석은 이 슈트를 입으니까 멋있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이주인 선생님이 재일교포이신 것으로 압니다. 그런 면에서 꼭 이주인 선생님 관련이 아니더라도 한국에 대해 특별한 정 같은 것이 솟아나거나 하시나요?

"이주인 선생님은 평소 저에게도, 주변 사람들에게도 '편하게 살려 하지 마라'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편하게 살지 말라는 건 요컨대 '순풍에 서지 말고 역풍에 맞서라'라는 뜻인데, 그런 말씀도 자주 해주셨기 때문에 '아, 그런 부분은 일본 사람들의 일반적인 사고방식과는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적은 있습니다."

-한국 내에서 일본 대중문화를 다루는 방식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윗세대는 일본 음악을 숨어서 듣거나 엑스재팬, 안전지대 노래, 영화 '러브레터'도 꽤 늦게 들어오던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젊은 세대는 J-팝도 즐겨 듣고 라디오나 TV에서 일본 노래를 접하는 것도 당연해졌습니다. 마쓰다 세이코 님도 내한 공연을 하시는 등 한일 문화 교류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문화적 변화의 상징적인 인물로서 이런 흐름을 어떻게 보시나요?

"아마 언젠가는 이렇게 될 거라는 시대의 흐름이었을 겁니다. 누군가가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고 움직인 게 아니라 정말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이렇게 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 '긴기라긴니 사리게나쿠'가 그 흐름의 일부분에라도 힘이 될 수 있다면 좋겠고, 어쩌면 조금이나마 힘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긴기라긴니 사리게나쿠'는 가사처럼 '무심하게'나 '자연스러운 모습'을 강조한, 굉장히 영향력 있는 노래입니다. 버블 경제 시대에 인기 있던 노래가 지금 시대까지 이어지며 영향을 주는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처음 말씀드렸듯, 아마 노래 자체가 굉장히 큰 힘을 가지고 있었다는 뜻일 겁니다. 일본의 한 여성 아티스트가 커버해서 한국에서 새롭게 불렀고, 그 덕분에 한국의 젊은 사람들에게도 알려지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 라이브에서도 '긴기라긴니 사리게나쿠'를 정말 많은 분이 함께 따라 불러주셨으면 할 정도입니다."

-가사에 나오는 것처럼 '화려하지만 자연스럽게'라는 의미로 봅니다. 예전에 연극 '긴라쿠엔(은락원)'을 하실 때 가발을 쓰시는 등 파격적인 모습을 선보이기도 하셨죠. 예술가로서 지켜야 할 '품격'과, 반대로 틀을 깨는 파격적인 시도를 하는 것 사이의 밸런스는 어떻게 잡으시나요?

"그 부분은 아마 나이에 따라 변해왔던 것 같고, 앞으로도 변해갈 것입니다. 나이와 멋있음, 그리고 코믹함 사이의 밸런스를 지금 맞춰가는 것이 무척 즐겁습니다."

-잡지 '아에라(AERA)' 등의 인터뷰를 보니, 비싼 위스키보다 동네 중화요리집 같은 곳에서 즐기는 술을 더 좋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일상의 리듬을 유지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그러시는 건가요, 아니면 정말 개인적인 취향이신가요?

"'밥 먹으러 가자'고 하면 프라이빗 룸을 예약해 주시는 분들이 많긴 한데, 저는 그것보다 밖으로 나가서 다 같이 시끌벅적하게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는 편이 더 즐겁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평범한 가족들이 밥 먹으러 가는 동네 중화요리집에 가서 만두나 라면을 먹는 잡지 취재도 했었습니다."

-한일 양국을 아울러 진정한 '원조 아이돌'로 활약해 오셨습니다. 지금도 아이돌을 목표로 하는 이들이 많지만, 10대와 20대 시절 한순간의 활동에 머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가운데 47년이라는 긴 경력을 이어오셨습니다. 오랫동안 사랑을 받으며 힘든 일도 있으셨을 텐데, 그런 시기를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오래 활동하면서 항상 마음속에 뒀던 것은, 설령 TV나 라디오, 잡지에 나오지 않아도 항상 팬들은 존재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늘 팬들을 생각하며, '나에겐 팬이 있다, 나에겐 팬이 있다'고 되뇌고 팬들을 소중히 대하는 것을 항상 마음에 새기고 있었습니다."

[서울=뉴시스] 곤도 마사히코. (사진 = 주식회사 커튼콜 제공) 2026.05.3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곤도 마사히코. (사진 = 주식회사 커튼콜 제공) 2026.05.3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지금 아이돌이나 가수를 목표로 하는 이들에게 선배로서 조언이나 전하고 싶은 한마디가 있으시다면요.

"우리 시대의 아이돌은 남이 만들어준 가마에 올라타는 식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의 아이돌은 스스로 자신을 만들고, 음악을 만들고 춤을 추며 어떻게 보여야 할지를 알죠. 우리 때는 정말 '이거 불러라, 이거 입어라, 이거 춰라'였지만, 지금 친구들은 스스로 '이걸 입고 싶다, 부르고 싶다, 이런 춤을 추고 싶다'고 합니다. 그런 차이가 있어 시대가 바뀌었구나 싶습니다. 하지만 과거 '이것을 불러라, 입어라, 춰라'라고 지시받은 것들을 온전한 내 것으로 만드는 데 있어서는 엄청난 에너지를 쏟았습니다."

-그런 자연스러운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힘을 빼는 비결, 긴장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머물기 위한 비결이 있을까요?

"글쎄요. 다만 정말로 자연스러운 모습이 될 수 있었던 건 50살이 넘어서부터였고, 그 전에는 자연스러워지려고 노력은 했지만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50살을 넘기고 나서는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나 자신을 표현할 수 있게 됐는데, 나이와 관련이 있는 게 아닐까 싶네요."

-최근 한국 음악 프로그램에 심사위원으로 출연해 젊은 세대들을 지켜보셨을 텐데, 새롭게 느끼신 점이 있나요?

"지금 젊은 친구들의 가창에 대한 노력이 대단하더라고요. 우리 시대에는 자연스럽게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지금 친구들은 정말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내 자식뻘 정도로 나이 차이가 나지만, 그 친구들에게 자극을 받아 '나도 노래 공부를 훨씬 더 많이 해야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지금은 레이싱 감독으로서 스태프들을 관리해야 하는 입장이 되셨습니다. 예전에는 반대로 관리를 받는 입장이셨을 텐데, 그에 따른 마음가짐의 변화나 느끼시는 점이 있나요?

"그래도 관리받던 때가 편했구나 싶습니다. 하하. 관리하는 것이 이토록 힘든 일인 줄 몰랐지만, 일이니까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이번 콘서트 세트리스트의 구체적인 방향성은 어떻게 구상 중이신가요? 한국어 노래도 생각 중이신가요?

"세트리스트에 관해서는 제가 지금까지 불러온 노래 중 일본에서의 히트곡을 전부 세팅했습니다. 아마 들어보시면 알 만한 곡도 많을 겁니다. 한국어 노래에 관해서는 지금 당장 생각하고 있진 않지만, 한국 팬들이 놀랄 만한 서프라이즈는 무언가 하고 싶다고 생각 중입니다."

-하이브 산하 K-팝 아이돌 그룹 '투어스(TWS)'가 '긴기라긴니 사리게나쿠'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런 젊은 친구들이 자신들 나름대로의 '긴기라긴니 사리게나쿠'를 부르는 것, 한국 사람이 한국에서 해도 좋고 일본 사람이 일본에서 해도 좋습니다. 어쨌든 젊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이 노래를 부르고 춤춰주는 것이 이상적이라 생각합니다."

-아주 추상적인 질문이 될 것 같은데, 지금 본인의 인생을 레이싱에 비유한다면 어느 정도 달리고 계신 것인가요?

"U턴은 했네요. 반환점은 돌았습니다. 거기서부터 결승점까지가 얼마나 길지가 문제인데, 조금 더 길게 달리고 싶습니다. 조금 더."

-꾸밈없는 목소리나 태도가 무기이실 텐데,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해나가고, 어떤 노래를 부르고 싶으신가요? 이 남은 시간 동안 전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요.

"글쎄요. 어쨌든 오늘 나눈 이야기의 테마는 '자연스러운 모습'인 것 같습니다. 자연스러운 저를 보고 '저런 어른이 되고 싶다'고, 제가 어릴 때 이주인 선생님을 봤던 것처럼 젊은 친구들이 '저 아저씨처럼 되고 싶다'고 말해줄 수 있도록 조금 더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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