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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는 우리 것이지만, 우리 마음대로 못 한다"…전봉희 위원장의 '원상 보존론'

등록 2026/05/26 08:00:00

국가유산청 통합 국가유산위원회 출범…초대 위원장 인터뷰

"개발 논리 아래 HIA 없이 개발하는건 거위의 배 가르는 격"

"복합유산 관리 체계 일원화…'원상' 개념 적용한 첫 위원회"

[서울=뉴시스] 황준선 기자 = 전봉희 국가유산위원장이 21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26.05.21. hwang@newsis.com

[서울=뉴시스] 황준선 기자 = 전봉희 국가유산위원장이 21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26.05.21.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수지 기자 =

세계유산 종묘는 우리 것이지만, 우리 마음대로 하겠다고 하면 그 지위를 반납해야 할 것입니다.

초대 국가유산위원장에 선출된 전봉희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종묘 인근 세운4지구 개발 문제를 두고 이같이 말했다. 세계유산은 국내 행정 절차만으로 판단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국제사회와 함께 보존 방향을 논의해야 하는 인류 공동의 자산이라는 뜻이다.

지난 21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 사무동에서 열린 전체회의에 앞서 만난 전 위원장은 인터뷰 내내 '원형(原形)'이 아닌 '원상(原狀)' 보존을 강조했다. 건물 형태 자체만 남기는 데 그치지 않고, 주변 경관과 환경, 해당 유산이 사용되고 향유되는 방식까지 함께 보존해야 한다는 의미다.

전 위원장은 "통합 국가유산위원회는 '원상'개념을 본격적으로 적용하는 첫 위원회가 될 것"이라며 "초대 위원회가 새로운 이정표의 초석을 제대로 놓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황준선 기자 = 전봉희 국가유산위원장이 21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26.05.21. hwang@newsis.com

[서울=뉴시스] 황준선 기자 = 전봉희 국가유산위원장이 21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26.05.21. [email protected]

"문화·자연·무형유산은 따로 볼 수 없다"

1962년 출범한 문화재위원회는 국가유산청 출범 이후 문화유산·무형유산·자연유산위원회로 나뉘었다가 최근 통합 국가유산위원회 체제로 재편됐다. 통합된 국가유산위원회는 건축문화유산, 동산문화유산, 사적, 세계유산 등 12개 분과위원회로 구성돼 국가지정유산 지정·해제와 역사문화환경 보호, 매장유산 발굴, 세계유산 등재 등을 조사·심의한다.

전 위원장은 이번 통합의 핵심을 "복합유산 관리 체계의 일원화"라고 설명했다.

"지리산과 화엄사, 안동 하회마을과 하회탈춤처럼 문화·자연·무형유산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어요. 온전한 보존을 위해서는 세부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논의해야 하는 거죠. 앞으로 복합유산 안건은 합동분과를 적극 구성해 중복 심의나 심의 결과 간 충돌을 줄여나갈 계획입니다."

전 위원장은 국가유산 지정 원칙 자체는 크게 변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역사성·예술성·학술성이라는 기본 틀은 유지되지만, 시대가 흐르며 역사성을 판단하는 기준 역시 점차 현대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현재 건축 분과의 가장 큰 과제로는 근대문화유산 지정 확대를 꼽았다.

그는 "시간이 짧더라도 예술성과 학술적 가치가 압도적으로 크다면 지정이 가능하다"며 "건축계에서는 김수근·김중업의 현대 콘크리트 건축까지 보물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고 말했다.

다만 "현대 건축물을 전통 목조 건축과 같은 방식으로 관리할 경우 현실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새로운 관리 지침과 프로토콜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뉴시스] 황준선 기자 = 전봉희 국가유산위원장이 21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26.05.21. hwang@newsis.com

[서울=뉴시스] 황준선 기자 = 전봉희 국가유산위원장이 21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26.05.21. [email protected]

"종묘는 세계에 단 하나뿐인 건축"

건축사 전문가인 전 위원장에게 종묘의 가치는 '세계에 단 하나뿐인 건축'이다.

그는 중국의 태묘(太廟) 등 유사한 기능의 건축물이 존재하지만, 조선은 고려 제도를 계승하면서도 독자적인 '방제(方制)'를 택해 세계 어디에도 없는 선형 공간을 만들어냈다고 설명했다.

특히 건물이 아닌 월대(마당)가 주인공이 되는 장엄한 수평적 공간을 종묘의 핵심 가치로 꼽았다.

"외국 유명 건축가들이 한국에 오면 반드시 종묘를 안내합니다. 비 오는 날 혼자 종묘 마당을 바라보는 경험은 다른 어떤 공간과도 비교하기 어렵답습니다."

그는 최근 논란이 된 세운4지구 개발 문제와 관련해서도 세계유산영향평가(HIA)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전 위원장은 "세계유산은 국내 유산이면서 동시에 인류 공동체가 함께 지켜야 할 유산"이라며 "국제적으로 구성된 평가단을 통해 HIA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반영해 사업 방향을 조정하는 것이 순서"라고 밝혔다.

이어 "당장 눈앞의 이익을 위해 수백 년간 지켜온 문화 자산을 서둘러 개발하는 것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격"이라며 "보존과 개발이 양립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전 위원장은 이런 '원상 보존' 개념이 종묘뿐 아니라 광화문 현판 논란, 기후위기 대응 등 앞으로의 국가유산 정책 전반에 적용돼야 한다고 봤다.

[서울=뉴시스] 황준선 기자 = 전봉희 국가유산위원장이 21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26.05.21. hwang@newsis.com

[서울=뉴시스] 황준선 기자 = 전봉희 국가유산위원장이 21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26.05.21. [email protected]

"개발보다 더 두려운 건 기후위기"

전 위원장은 보존과 개발의 균형 문제에 대해 "기술 발전이 새로운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황룡사터 초석 위에 실감 영상으로 과거 황룡사를 구현하는 사례처럼,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면 유산의 원상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충분한 향유와 활용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미디어 기술 발전으로 시공간을 초월한 스토리텔링이 가능해지고 있다"며 "현재 기술 수준으로 어려운 일도 앞으로는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큰 위협으로는 개발이 아닌 기후변화를 꼽았다.

"지난해 경북 산불로 보물 고운사 연수전과 가학루가 전소됐을 때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폭우와 산사태, 산불 같은 자연재해는 인간의 개발보다 훨씬 치명적일 수 있어요. 그래서 범정부 차원의 데이터 기반 재해 예측 시스템 구축이 필요한 겁니다."

"한글 현판만이 답인지 고민 필요"

광화문 한글 현판 설치 논란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전 위원장은 "국가유산의 현상 변경에 해당하는 사안인 만큼 궁능유산분과 규정과 절차에 따라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심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광화문 광장 일대를 상징 공간으로 조성하는 방식이 꼭 한글 현판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고민이 있다"며 "보다 폭넓게 시민사회 의견을 모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지금은 세 번째 문화 융성기"

전 위원장은 지금 한국 사회를 “역사상 세 번째 문화 융성기”라고 진단했다.

통일신라와 여말선초를 앞선 문화 전성기로 꼽은 그는 "세 시기의 공통점은 가장 개방적이었다는 점"이라며 "지금 한국 사회 역시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이 전례 없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유산은 역사와 문화를 집적한 장소이자 K컬처 활동의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라며 "이 흐름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앞으로 50~100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서울=뉴시스] 황준선 기자 = 전봉희 국가유산위원장이 21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26.05.21. hwang@newsis.com

[서울=뉴시스] 황준선 기자 = 전봉희 국가유산위원장이 21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26.05.21. [email protected]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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