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풀이되는 의료진 폭행…"보호대책 실효성 없어"(종합)
등록 2026/11/05 15:53:52
병원서 의료진 흉기 난동 사건 잇따라
흉기 난동 막을 근본적 대책 마련 필요

[서울=뉴시스] 류난영 기자 = 고(故)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사망한 후 의료인 폭행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임세원법'이 통과됐지만 세브란스병원에서 또다시 흉기난동으로 의사가 크게 다치는 등 의료진에 대한 범행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의료계는 그동안 의료진을 겨냥한 흉기난동 사태가 거듭됐음에도 진료 현장의 안전을 실질적으로 담보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보호 대책이 마련되지 않았다며 의료진 폭행에 대한 처벌 강화와 안전장치 마련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5일 경찰에 따르면 전날 50대 여성 A씨는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이 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B씨에게 칼을 휘두른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평소 이 병원 의료진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에서 의료진이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다치는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8년 12월 31일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진료 도중 환자 C모씨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졌다. 임 교수는 당시 C씨의 공격을 피해 빠져 나온 후 의료진에게 '도망가'를 외치며 피신했지만 끝내 목숨을 잃었다.
이후 2019년 4월에 안전한 진료환경 구축을 위해 병원에 보안 인력을 배치하고 비상벨 설치를 의무화 하는 등 이른바 '임세원법'(의료법 개정안)이 제정돼 의료인에게 상해를 입히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도록 했지만 이번에도 환자의 공격을 막진 못했다.
또 2008년 6월 충남대병원에서 환자가 치료 결과에 불만을 갖고 퇴근하던 담당 교수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2009년 11월에는 강원 원주시의 한 비교기과 의원에서 외래환자가 간호사 2명에게 흉기를 휘둘러 모두 숨지는 일도 있었다.
지난 2015년 10월에는 소방대원 출신 D모씨가 한 대학병원의 병원장실에 들어가 껌 제거용 칼로 병원장에게 휘둘러 손목을 크게 다쳤다. 당시 D씨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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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는 이번 세브란스 병원 사건을 계기로 병원에서 같은 사건이 반복되지 않도록 의료진에 대한 보호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보호 대책과 더불어 폭력에 대한 처벌도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응급실 폭력의 경우 최근 법 개정으로 처벌 대상 장소가 확대되고 별도의 양형기준안도 마련됐다. 반면 외래와 병동에서의 폭력은 상대적으로 낮은 처벌 기준에 머물러 있다.
이의주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은 "병동에서의 폭력에 대한 실제 판결 역시 벌금형이나 집행유예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며 "정부와 국회는 처벌 강화의 범위를 진료가 이루어지는 모든 공간으로 확대해야 하며, 수사기관과 법원은 의료인에 대한 폭력이 다른 환자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중대한 범죄임을 고려해 엄중히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근호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회장은 "2018년의 임세원 교수 사망 사건 이후 의사자 지정 및 임세원법 발의에 의한 의료현장 안전을 위한 조치가 마련됐지만 비상벨 의무설치나 대피로 확보 등은 실제적인 효과가 없었다"며 "고위험 정신질환에 대해 사람이 죽고나서야 수습하는 이제까지의 방식을 넘어선 대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의료 행위에 대해서 직접적인 방해나 의료진에 대한 협박 등이 있을 경우 단지 심신미약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강력한 처벌이 동반돼야 한다"며 "버스기사에 대한 폭행을 가중처벌하는 이유는 그것이 기사 본인 뿐만 아니라 승객의 안전과 직결돼 있기 때문인데, 의료진의 안전이 곧 환자의 안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규석 서울특별시의사회 회장은 "진료실은 생명을 살리는 공간이지, 의료진이 자신의 생명을 걸어야 하는 공간이 아니다"며 "정부와 국회에 의료기관 내 폭력 예방을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국가 차원의 의료진 보호 종합대책을 즉각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 회장은 "의료기관 특성에 맞는 출입 통제와 위험 상황 대응체계를 마련하고, 흉기 반입과 폭력행위에 대응할 보안 인력 배치, 비상신고체계 구축, 신속한 경찰 출동을 위한 연계 체계 마련을 해야한다"며 "정부와 의료계, 시민사회가 함께 의료현장 폭력 근절 대책을 추진해야 한다"고밝혔다.
대한병원협회는 정부와 사법 당국에 실효성 있는 안전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의료기관 내 흉기 반입과 폭력 행위를 사전 차단 대책 마련 ▲의료진에 대한 폭행에 대해 무관용 원칙으로 엄정하게 대응 ▲국가 차원의 지원체계 구축 ▲피해 의료진에 대한 보호와 지원 강화 등을 요구했다.
유경하 대한병원협회 회장은 "지난 2018년 고 임세원 교수가 사건 이후 의료인 폭행 방지를 위한 법률과 각종 안전대책이 마련됐지만 의료진을 대상으로 한 폭언과 폭행, 흉기 난동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며 "법과 제도가 존재하지만 진료 현장의 안전을 실질적으로 담보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성근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이른바 '임세원법'이 제정됐지만 여전히 가해자에 대한 사후 처벌 강화에 치중된 나머지 진료 현장의 안전을 근본적으로 지켜내지 못하는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며 "사후 처벌 위주의 땜질식 대응에서 벗어나, 의료현장이 위축되지 않고 온전히 유지될 수 있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브란스병원 의료진 피습 사건 이후 병원들도 혹시 모를 모방 범죄가 있을 수 있는 만큼 경비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는 모습이다. 병원들은 반복되는 흉기난동 사건을 계기로 환자 난동이나 폭행 우려가 큰 정신건강의학과나 응급실 등의 보안 인력을 늘리는 등 전반적으로 보안을 강화해 왔다.
세브란스병원측은 현재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정상적으로 진행중이며, 평소보다 보안 인력을 더 늘리는 한편 추가 대책 마련에도 나설 예정이다.
서울성모병원은 2018년 강북삼성병원 의료진 사망 사건 이후 뒷문, 콜 벨 등을 마련했고 상주 안전요원 등을 두고 있다. 이번 사건 이후 혹시 모를 모방범죄에 대비해 내부적으로 경계 강화 요청을 내렸다. 또 순찰 인력을 정신건강의학과 등을 수시로 돌도록 하는 등 내부 대책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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