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채우면 가족 굶는다"… 필리핀, 디젤 '세 자릿수' 시대에 비명

등록 2026/03/22 12:54:17

[케손시티=AP/뉴시스] 지난 19일(현지시각) 필리핀 케손시티의 한 주유소 게시판에 종이로 적은 디젤 가격이 붙어 있다. 이란 전쟁 여파로 가격이 세 자릿수를 돌파하자 두 자릿수용 디지털 게시판 대신 종이를 붙여 공지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2026.03.22.

[서울=뉴시스]서영은 인턴 기자 = 필리핀 디젤 가격이 사상 처음으로 '세 자릿수'를 돌파하며 유가 쇼크가 전방위로 확산하고 있다.

21일(현지시각)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필리핀 메트로 마닐라의 일부 주유소는 디지털 게시판 대신 종이에 손글씨로 가격을 적어 내걸기 시작했다.

기존 게시판이 두 자릿수만 표기하도록 설계된 탓에 리터당 114페소(약 2700원)까지 치솟은 가격을 표시하지 못한 것이다. 이는 필리핀 비농업 부문 일일 최저임금의 약 6분의 1에 달하는 금액이다.

연료비가 폭등하면서 필리핀의 상징적 대중교통인 '지프니' 운행도 급감했다.

51세 운전사 마리오 오라인은 "예전엔 1000페소로 18리터를 채웠지만 지금은 5리터가 전부"라며 "기름을 넣으면 가족을 먹일 돈이 남지 않아 운행을 포기했다"고 전했다.

정부가 5000페소(약 12만 원)의 긴급 보조금을 내놨지만 현장에서는 "한 달 연료비 9만 페소에 비하면 생색내기"라는 비판이 거세다.

전문가들은 필리핀의 '석유산업 규제 완화법(1998년)'이 지정학적 리스크에 무방비한 구조를 만들었다고 분석한다. 정부의 가격 통제권이 없는 상황에서 중동 긴장이 실시간으로 현지 물가를 타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페소화 가치가 역대 최저 수준(1달러=60페소)으로 추락하며 달러 결제 기반인 연료 수입 비용 부담을 더욱 키웠다.

연료비 상승은 쌀, 전기, 수도료 등 기초 생필품 가격으로 전이되는 양상이다. 필리핀 의회는 석유 제품에 대한 소비세 일시 중단 등 긴급 법안을 검토 중이다.

다만 이란 당국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위협하며 유가가 배럴당 2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경고함에 따라, 현지에서는 기초 생활비 부담 증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youngs@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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