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해 보이지만…하태임 컬러밴드는 ‘겹쳐진 시간의 층’

등록 2026/04/14 08:51:49

Un Passage No. 268007, 100x100cm, Acrylic on Canvas, 2026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미술계에서 익숙한 하태임의 ‘컬러 밴드’는 쉬워 보인다. 그러나 그 단순함은 반복과 기다림으로 축적된 시간의 결과다.

작업은 한 번의 붓질로 완성되지 않는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색을 쌓고, 일정 시간의 건조 과정을 거친 뒤 다음 색띠를 덧입힌다. 약 두 시간의 간격을 두고 이어지는 이 반복 속에서 이전의 흔적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채 화면에 스며들고, 색과 색 사이에는 자연스러운 전이와 투명성이 형성된다.

겉으로는 일필휘지의 제스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의 방식이다. 하나의 컬러 밴드가 완성되어야만 다음 행위로 나아갈 수 있으며, 최소 7~8회 이상의 반복적 붓질과 건조 과정을 거친다. 이로 인해 작품 한 점이 완성되기까지는 수주에서 수개월의 시간이 소요된다.

이러한 작업 방식에 대해 정연심 홍익대 교수는 고대 필사본의 기록 방식에서 유래한 ‘팔림프세스트(palimpsest)’ 개념으로 설명한다. 이전의 흔적을 지우고 그 위에 다시 쓰면서도 과거의 층위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하는 구조처럼, 하태임의 회화 역시 지움과 생성이 공존하는 다층적 시간의 공간으로 읽힌다는 것이다.

Un Passage No. 268013, 100x100cm, Acrylic on Canvas, 2026 *재판매 및 DB 금지

이 중첩의 회화는 작가의 삶과도 맞닿아 있다.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축적된 경험과 기억, 관계의 변화는 색의 층위로 화면에 스며든다. 서로 겹치고 어긋나는 색띠들은 관계망처럼 교차하며 고유한 리듬을 형성한다.

하태임에게 색은 시각적 요소를 넘어 감정의 흔적이자 존재의 기록이다. 신작 컬러 밴드를 선보이는 하태임의 개인전 ‘PALIMPSET_겹쳐진 시간의 층’이 부산 해운대 OKNP에서 23일부터 5월 17일까지 열린다.

◎공감언론 뉴시스 hyun@newsis.com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