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와집 15채 값도 아깝지 않았다”…간송 전형필의 '문화보국'
등록 2026/04/13 13:12:00
수정 2026/04/13 14:20:24
간송미술관, 간송 탄신 120주년 특별전
국보 ‘백자'·추사학파 서화 등 46점 공개
1936년 경성미술구락부 경매에서 치열한 호가 경합끝에 간송이 사들인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 ⓒ 간송미술문화재단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기와집 15채 값이었다. 그래도 사야 했다.
1936년 경성미술구락부 경매장. 일본 거상 야마나카 상회와의 치열한 경합 끝에 간송 전형필은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을 1만4580원에 낙찰받았다. 당시 조선 유물 경매 사상 최고가였다.
이 사건은 같은 해 11월 23일자 ‘경성일보’에도 실렸다. 신문은 “이조염부란진사철사국문대병은 문양과 소성, 공합이 뛰어나 수집가들의 주목을 받았으며 결국 1만4580원이라는 전례 없는 고가에 낙찰됐다”고 전했다.
당시 이 작품은 모리 고이치가 480원에 들여와 애장하던 것으로, 경매를 통해 조선 유물 최고가 기록을 새로 쓴 사례였다.
이 병은 청화·철화·동화 세 가지 안료를 모두 사용한 조선 도자 기술의 정수로, 국화와 난, 그리고 그 사이를 노니는 벌레를 정교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참기름을 담던 생활 용기였지만, 점차 그 가치를 인정받으며 가격이 상승하던 작품이었다.
간송미술관 봄 전시에 선보인 백자 전시장 ⓒ 간송미술문화재단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은 간송 전형필(1906~1962) 탄신 120주년을 맞아 오는 15일부터 특별전 ‘문화보국: 신념으로 지켜낸 우리의 얼’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일제강점기 조선 문화유산이 일본으로 유출되던 경성 고미술 경매장에서 간송이 되찾아온 서화와 도자를 한자리에 모아 그의 수집 여정을 조명한다.
1922년 일본 골동상들이 설립한 경성미술구락부는 조선 최대 미술품 거래 기관이었지만, 동시에 문화유산 유출의 통로였다. 해방 전까지 260여 회의 경매가 열렸고, 낙찰 총액은 1935년 12만5000엔에서 1941년 37만5000엔으로 급증했다.
이 공간에서 간송은 일본인 중개인을 내세워 조용히 경합에 참여했다. 1930년 첫 낙찰을 시작으로 1944년까지 이어진 그의 수집은 ‘구매’가 아닌 ‘수호’의 기록이었다.
간송의 수집은 개인의 취향을 넘어 문화유산을 지키려는 실천이었다. 일제강점기라는 시대 속에서 그의 ‘수집’은 또 다른 형태의 독립운동이었다.
전인건 관장은 “이번 전시는 간송컬렉션이 어떤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형성됐는지를 돌아보는 자리”라며 “작품 뒤에 담긴 수집의 역사와 문화유산 수호의 의미를 함께 살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석사자상 앞 간송 전형필과 위창 오세창 ⓒ 간송미술문화재단 *재판매 및 DB 금지
전시에는 국보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을 비롯해 조선 회화와 백자, 추사 김정희 및 추사학파 서화 등 총 36건 46점이 공개된다.
특히 김명국의 ‘비급전관’, 심사정·강세황의 ‘표현연화첩’, 장승업의 ‘팔준도’, 김정희의 ‘침계’ 등 간송 컬렉션의 핵심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는 경매 도록을 1차 사료로 삼아 근대 미술시장의 유통과 수장 과정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심사정-계산행려 ⓒ 간송미술문화재단 *재판매 및 DB 금지
전시는 간송 전형필의 수집 활동을 네 가지 축으로 정리해 보여준다.
먼저 조선 회화 전 시기를 아우르는 통사적 수집이다. 간송은 스승 위창 오세창의 수집 철학을 이어 특정 화가나 시기에 치우치지 않고 서화를 폭넓게 모으며 조선 미술사의 흐름을 기록하려 했다.
이어 1930년대 근대 고미술 시장에서 주목받은 조선백자 수집이 있다. 경성미술구락부 경매를 통해 매입한 백자들은 오늘날 간송미술관 도자 컬렉션의 핵심을 이룬다.
김정희-침계 ⓒ 간송미술문화재단 *재판매 및 DB 금지
추사 김정희와 추사학파 관련 서화 수집도 중요한 축이다. 간송은 추사 계열 문인 서화를 집중적으로 확보해 조선 문인 문화의 계보를 보여주는 독보적인 컬렉션을 형성했다.
마지막으로 유실된 문화유산의 재입수 활동이다. 한국전쟁 이후 흩어진 유물을 다시 찾아오는 수집을 이어가며 문화유산을 지키려는 의지를 실천했다.
<백자화형향꽂이(白磁花形香串之)>1939년 3월에 개최된 경성미술구락부 경매회에 부내 도이 힌이치(府內土井賓一氏) 소장 이조도기(李朝陶磁) 공예미술품 가운데 하나로 출품되어 간송 전형필에게 낙찰되었다. *재판매 및 DB 금지
연적(硯滴) 컬렉션도 이번 전시의 숨은 볼거리다.
용이 여의주를 쥔 형상을 입체적으로 표현한 ‘백자청화철채반룡롱주형연적’을 비롯해, 전설 속 신수 해태를 형상화한 ‘백자해태형연적’과 ‘백자청화해태형연적’, 사자 모양의 ‘백자청화사자형연적’, 조선 기와집 형태의 ‘백자청화철채산수문가형연적’ 등 다양한 연적이 한자리에 모인다.
이와 함께 ‘백자석척뉴향꽂이’, ‘백자화형향꽂이’ 등 문방구로 사용된 생활 도자도 전시돼 조선 선비들의 서재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석호상 ⓒ 간송미술문화재단 *재판매 및 DB 금지
보화각 야외에는 1935년 경성미술구락부 경매를 통해 입수한 석호상 한 쌍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오는 6월에는 88년간 보화각을 지켜온 석사자상이 고향인 중국으로 돌아간다. 간송이 생전에 “제자리를 찾아주고자 했다”는 뜻에 따른 결정으로, ‘문화보국’의 정신이 타국 유산까지 존중하는 방향으로 확장됐음을 보여준다.
석사자상이 떠난 자리에는 석호상이 새롭게 놓인다. 몸을 곧게 세운 자세와 둥근 얼굴 등 독특한 조형미가 특징이다.
한편 간송미술관 소장품의 보존 관리는 국가유산청과의 협력 아래 복권기금 지원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번 전시 역시 보존 처리를 마친 작품들이 복권기금 지원을 통해 공개됐다.
전영우 이사장은 “문화유산은 누군가 그것을 귀하게 여기고 지키려는 의지가 있을 때 비로소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며 “간송의 수집 활동은 문화유산을 지켜낸 실천의 역사”라고 밝혔다.
간송미술관 전경 ⓒ 김용관 *재판매 및 DB 금지
이번 전시는 6월 14일까지 진행되며 사전 예약제로 운영된다. 도슨트 프로그램은 하루 2회(오전 11시, 오후 2시) 운영되며 회당 30명 선착순으로 참여할 수 있다. 전시 관람은 회당 100명으로 제한된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관람료는 성인 5000원, 만 65세 이상과 청소년은 3000원, 특별권은 20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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