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아랍 4개국 회담 개최 등 이란전쟁 중재자 부상 배경은?

등록 2026/03/30 09:21:57

수정 2026/03/30 10:02:24

무니르 참모총장, 위트코프 회사와 암호화폐 계약 체결 등 핵심 역할

이란과도 원만한 관계가 중재의 자산

파키스탄 미-중, 이란-사우디 사이 ‘줄타기’ 외교

[이슬라마바드=AP/뉴시스] 파키스탄 외무부 주재로 29일 이슬라마바드에서 열린 아랍 4개국 외무장관 회담 참석자들이 회의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왼쪽부터) 바드르 압델라티 이집트, 파이살 빈 파르한 알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이샤크 다르 파키스탄, 하칸 피단 튀르키예 외무장관. 2026.03.30.

[서울=뉴시스] 구자룡 기자 = 파키스탄은 29일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튀르키예·사우디아라비아·이집트 외무장관과 4자 회담을 갖고 이란 전쟁 중재 활동을 본격화했다. 4자 회담은 30일까지 열린다.

트럼프 1기와 달라진 미국-파키스탄 관계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는 23일에 이어 28일에도 이란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과 통화했다.

스티브 위트코프 중동 특사는 파키스탄 관리들을 통해 15개항 평화안을 이란에 전달했다.

이란 전쟁이 터지기 전 미국과 이란간 핵협상 과정에 나섰던 오만과 카타르는 중재는커녕 이번 전쟁에서 이란의 공격 대상으로 전락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28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첫 임기 동안 미국에 거짓과 기만만 일축하며 악의적인 행위자라고 파키스탄을 비난했으나 다시 신뢰를 회복해 중재자로 나선 것은 놀라운 일이라며 그 배경을 분석했다.

무엇보다 아심 무니르 육군 참모총장과 셰바즈 샤리프 총리가 미국 대통령 및 그의 측근들과의 관계 구축을 위해 긴밀히 협력해 온 점을 들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 측근, 암호 화폐, 핵심 광물 등을 포함한 거래를 통해 미국의 호감을 되찾았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무니르 참모총장, 위트코프 회사와 암호화폐 계약 체결 주재

무니르 총장은 올해 초 중동 특사인 스티브 위트코프의 회사와 파키스탄 정부간의 암호화폐 계약 체결을 주재했다. 그후 트럼프는 그를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파키스탄 육군 원수라고 불렀다.

4자 회담을 주선하는 파키스탄에 대해 후세인 하카니 전 주미 파키스탄 대사는 “파키스탄 입장에서 보면 협상이 성사되든 안 되든 양측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상황”이라며 “파키스탄이 이룬 것은 고립된 국가라는 인상을 벗어나 국제 무대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파키스탄에서는 이란의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를 제거한 후 시아파 무슬림 인구가 많은 파키스탄에서 격렬한 반미 시위가 발생했다. 이란 사태가 남의 일만은 아닌 것이다.

WSJ에 따르면 냉전과 테러와의 전쟁 기간 동안 미국은 파키스탄을 든든한 동맹국으로 여겼다.

중앙정보국(CIA)은 9·11 테러의 배후인 알카에다 조직원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파키스탄 군 및 정보기관과 긴밀히 협력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 파키스탄은 미국에 도달할 수 있는 미사일을 개발하려 한다고 주장하며 긴장 상태에 놓이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 2기 들어 파키스탄이 2021년 카불 공항 폭탄 테러의 배후를 찾아 달라는 요청에 응하면서 양국은 관계 개선의 계기가 됐다.

무니르의 파키스탄은 2021년 8월 미군의 카불 공항 철수 과정에서 미군 13명, 아프간 민간인 170명을 살해한 자폭 테러의 기획자를 지난해 3월 체포해 미국에 넘겨준 것이다.

파키스탄은 지난해 3월 이웃 숙적 인도와 분쟁에서 휴전을 이끌어낸 공로를 미국에 돌렸다. 파키스탄은 트럼프를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하기도 했다.

파키스탄, 트럼프 가족회사와 스테이블코인 협약 체결 

파키스탄 관리들은 트럼프 행정부 및 대통령 가족과의 접촉도 시도했으며 무니르 총장의 지휘 아래 이루어졌다고 정치 분석가들은 보고 있다.

파키스탄은 트럼프 일가의 암호화폐 회사인 ‘월드 리버티 파이낸셜’을 두 차례에 걸쳐 극진히 지원했다.

1월 무니르 총장은 이슬라마바드에서 월드 리버티 최고경영자(CEO)이자 중동 특사 스티브 위트코프의 아들인 잭 위트코프와의 회의를 주재했다.

이 회의에서 파키스탄 재무부와 스테이블코인 도입 방안을 모색하는 협약을 체결했다.

스테이블코인은 월드 리버티가 발행하는 달러 기반 암호화폐의 일종으로 월드 리버티가 외국 정부와 체결한 첫 번째 스테이블코인 계약이었다.

잭 위트코프는 지난해 4월 파키스탄 방문 당시 무니르 총장과 샤리프 총리를 만났다. 그를 위해 불꽃놀이까지 펼쳐지는 등 귀빈처럼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

파키스탄의 중재 역할은 지난해 9월부터 시작됐다고 WSJ은 전했다. 이란과 미국이 뉴욕 유엔 총회 기간 중 핵 협상을 재개하려던 시도에서 파키스탄이 양측에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것이다.

지난달 6일 미국과 이란의 협상이 오만의 무스카트에서 재개되었을 때 무니르 총장도 무스카트로 날아가 협상단장인 위트코프와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를 호텔에서 만나 협상에 대해 논의했다.

파키스탄, 트럼프의 국제평화위원회 가입

트럼프 대통령이 가자 전쟁 휴전과 함께 설립한 국제평화위원회에 가장 먼저 가입한 국가 중 하나도 파키스탄이었다.

2월 19일 워싱턴에서 열린 위원회 창립 회의에서 위트코프는 파키스탄의 적자 항공사가 소유한 뉴욕의 루즈벨트 호텔을 미국과 파키스탄이 공동으로 재개발하는 협약을 발표했다.

당시 트럼프는 무니르 총장을 강인한 사나이, 훌륭한 전사라고 칭찬한 것이 외신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파키스탄이 미국과 이란간 대화를 촉진하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정치 전문가들은 파키스탄이 복잡한 협상에 직접 참여하기를 원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 철수 문제를 놓고 탈레반과 협상했던 것처럼 파키스탄은 물밑 중재자 역할을 선호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란과도 원만한 관계가 중재의 자산

이란과 파키스탄은 1947년 8월 14일 파키스탄이 독립한 날에 관계를 수립했으며, 이란은 파키스탄을 최초로 인정한 국가였다.

이란과 약 900㎞ 국경을 공유하는 파키스탄은 전체 인구의 최대 20%인 2500만 명이 시아파 무슬림이다.

이란에 이어 세계 두번째 규모로 사우디아라비아를 종주국으로 하는 수니파와 맞서는 이란으로서도 소중한 이슬람 형제국이다. 

파키스탄은 사우디아라비아와의 또 다른 핵무장 경쟁을 우려하여 이란의 핵무기 획득을 반대하지만 경제 및 민간 인프라를 위한 핵 에너지 사용은 지지한다.

파키스탄에는 다른 걸프 국가들과 달리 미군 기지가 없다.

반이스라엘 성향의 튀르키예가 이란의 미사일 공격을 받은 것은 나토 회원국이자 미군 기지가 있기 때문이다.

파키스탄 미-중, 이란-사우디 사이 ‘줄타기’ 외교

버락 오바마 미국은 9·11 테러 발생 약 10년 뒤인 2011년 5월 ‘넵튠의 창 작전’으로 테러 주모자 오사마 빈 라덴을 파키스탄 북부 은신처 아보타바드에서 제거한 뒤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파키스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작전을 설명해줬다.

자국 영토에서 미군이 벌인 비밀 군사작전으로 주권을 침해 당한 상황이지만 연락을 받고 축하와 지지를 나타냈다고 오바마는 자서전 ‘약속의 땅’에서 소개했다.

서남아시아에서 인도와 경쟁하고 있는 파키스탄이 복잡한 강대국들의 역학 관계속에서 자신의 입지를 만들면서 줄타기 외교를 하는 것을 보여주는 한 사례다.

파키스탄은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의 대외경제 정책의 핵심인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에 가장 먼저 그리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과다르항을 잇는 도로, 철도, 에너지 동맥 건설 등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CPEC)’ 건설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9월 파키스탄은 이란과 중동에서 패권 경쟁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나토식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다.

하카니는 전 대사는 “중재자 역할을 하는 것은 사우디아라비아가 분쟁에 개입하려는 것을 막아내는 방법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kjdrago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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