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냉전기 72차례 '정권 교체' 시도…"40%만 성공, 그 뒤 혼란과 불안"

등록 2026/03/04 16:40:04

수정 2026/03/04 18:44:24

이라크·리비아·아프간 등 장기적으로 불안 남긴 사례도

카다피 후세인 탈레반 축출후 여전히 분열 불안 계속

마두로 납치 이어 이란 공습까지 이어져

[테헤란=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에 대한 대규모 공습을 단행한 가운데, '정권 교체'가 공습의 핵심 배경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사진은 2일(현지 시간) 이란 테헤란의 한 건물에서 연기가 치솟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지난달 28일부터 이란에 대한 공습을 이어오고 있다. 2026.03.04.

[서울=뉴시스] 박미선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에 대한 대규모 공습을 단행한 가운데, '정권 교체'가 공습의 핵심 배경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핵·미사일 위협 제거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이번 군사 행동이 단순한 억제를 넘어 체제 전환을 겨냥한 전략적 공세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역사적으로 미국이 군사 개입을 통해 정권 교체 작전을 벌인 사례는 적지 않다. 2019년 연구에 따르면 냉전 기간(1947~1989년) 동안 미국은 해외에서 권력 균형을 자국에 유리하게 바꾸기 위해 72차례 정권 교체를 시도했다. 이 중 64건은 정보기관이 수행한 비밀 작전이었고, 성공률은 약 40%였다.

1953년 이란 총리 모하마드 모사데그 축출

대표적인 사례가 1953년 이란 쿠데타다. 당시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영국 정보기관 MI6는 협력해 이란 총리 모하마드 모사데그를 축출했다. 이후 집권한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 국왕은 점차 "미국의 꼭두각시"라는 비판을 받았고, 결국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쫓겨났다. 이때 등장한 신정 체제가 현재 공습 대상이 된 이란 정권이다.

3일(현지 시간)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DW)는 미국의 정권 교체 작전이 단기적으로는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새로운 불안정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카다피 축출 15년…여전히 분열된 리비아

2011년 '아랍의 봄'이 북아프리카 전역으로 확산되자 리비아에서도 장기 집권 지도자 무아마르 카다피에 대한 반대 움직임이 확산됐다.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반군 세력인 국가과도위원회(NTC)를 지지했고, 미국·프랑스·영국은 공습에 나섰다.

이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통합 수호 작전'으로 확대됐고, 같은 해 10월 카다피는 공습 과정에서 붙잡혀 사망했다. 그러나 약 1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리비아는 정치적으로 분열된 상태이며 극심한 불안정이 이어지고 있다.

후세인·탈레반 축출 이후…남은 것은 장기 불안

2003년 이라크 전쟁에서 사담 후세인 정권이 붕괴된 지 몇 주 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임무 완료"를 선언하며 민주주의 정착을 자신했다. 그러나 이후 권력 공백 속에서 극심한 내전이 이어졌고, 이슬람국가(ISIS)의 부상하면서 중동 전역은 혼란에 빠졌다.

역사학자 조지프 스티브는 "당시 미국은 자유민주주의 가치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을 것이라고 오판했다"며 "이라크 같은 정권은 무너뜨리기만 하면 비교적 쉽게 대체될 것이라고 믿었다"고 지적했다.

아프가니스탄 역시 마찬가지다. 부시 대통령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4주 만에 '항구적 자유 작전'으로 탈레반을 축출했으나, 미국이 지원한 새 정부는 오래 유지되지 못했다.

국제군이 2014년 이후 병력을 줄이자 탈레반은 다시 세력을 확장했다. 2020년 트럼프 행정부는 탈레반과 협상해 미군 철수에 합의했고, 이후 2021년 조 바이든 대통령이 마지막 미군을 철수시키자 탈레반은 다시 권력을 장악했다. 결과적으로 미국 침공 이전과 유사한 정치 체제가 복원됐다.

파나마·그레나다·도미니카…냉전기 美 군사 개입

1980년대 파나마를 통치했던 독재자 마누엘 노리에가는 한때 CIA와 협력했지만, 이후 마약 밀매 조직과의 연루 의혹이 커지면서 미국과 관계가 악화됐다.

1989년 5월 대선에서 야권의 기예르모 엔다라 후보가 승리했지만 노리에가는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은 같은 해 12월 약 3억3100만 달러의 군사 비용이 투입된 '저스트 코즈 작전'을 통해 노리에가를 축출했다. 노리에가는 이후 미국과 프랑스 등을 전전하며 수감 생활을 하다 2017년 사망했다.

1979년 이후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 그레나다는 소련과 밀착 행보를 보이다 미국의 타깃이 됐다. 관계 개선을 시도하던 모리스 비숍 당시 총리가 강경 군부 세력에 의해 암살당하자, 1983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카리브 국가들의 지지를 명분으로 침공을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영국 정부는 영연방 국가인 그레나다가 영국 영향권에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후 미군 철수 후 영국 총독이 과도 정부를 감독했고 1984년 선거가 실시됐다.

최대 규모 병력이 투입된 사례 중 하나는 1965년 도미니카공화국 개입이다. 잇따른 쿠데타로 내전 위기에 처하자 린든 B. 존슨 대통령은 미주기구(OAS)의 승인을 얻어 무려 4만4400명의 병력을 투입했다.

미국이 내세운 공식 명분은 '미국 시민 보호'였지만, 실질적인 목표는 냉전의 파고 속 인접국에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는 것, 즉 '두 번째 쿠바'의 탄생을 막는 것이었다.

2026년 베네수엘라, 그리고 이란

가장 최근의 사례는 지난 1월 초 발생한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납치 작전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두로를 '마약 테러' 혐의로 뉴욕 법정에 세웠다. 마두로의 측근이었던 델시 로드리게스가 권력을 잡았고, 트럼프는 그와 협력하겠다고 밝혔으며, 그 대가로 미국은 베네수엘라의 막대한 석유 자원 접근권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2025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트럼프 지지자인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는 베네수엘라로 돌아가 민주주의를 회복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이란을 향한 군사 작전 '에픽 퓨리(Operation Epic Fury)'를 단행했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펜타곤 브리핑을 통해 이번 충돌이 "이른바 정권 교체 전쟁은 아니다"라고 주장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공습 직후 이란 국민을 향해 "우리가 끝내면 당신들이 정부를 장악하라"며 정권 교체 의욕을 드러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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