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중박에 스며든 블랙핑크 분홍빛 시간…K-팝이 증명한 '힙트레디션'
등록 2026/02/27 02:08:45
블랙핑크, 미니 3집 '데드라인' 발매와 함께 국립중앙박물관과 손
제니·지수·로제·리사, 반가사유상 등 소개하는 오디오 도슨트로 활약
[서울=뉴시스] 한이재 기자 =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이 K-팝 간판 걸그룹 '블랙핑크' 상징색인 분홍빛으로 물들어 있다. 2026.02.26. nowone@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한이재 기자 = 박물관이라는 공간은 본래 시간이 정지된 무덤이자, 기억이 영원을 사는 신전이다.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1층 로비 '역사의 길'은 그 정지된 시간의 축이 찬란하게 요동치는 진원지가 됐다.
8미터 높이로 솟아오른 디지털 광개토대왕비가 1600년의 묵직한 침묵을 품고 서 있었고, 그 위로 동시대 가장 예민한 찰나를 타격하는 블랙핑크의 신곡 '고(GO)'의 거대한 파동이 쏟아졌다. 적막이 밀려난 자리에 옅은 분홍빛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을 때, 비석을 중심으로 원형을 이루고 선 50여 명의 관객은 목격했다. 영원이라는 이름의 과거와 팝(pop)이라는 이름의 현재가 기꺼이 서로를 끌어안으며, 30분간 시공간이 뒤섞이는 낯설고도 아름다운 경이를 말이다.
그룹 '블랙핑크(BLACKPINK)'가 27일 오후 2시 미니 3집 '데드라인(DEADLINE)' 발매를 앞두고 한국 미학의 정점인 국립중앙박물관(이하 국중박)과 손을 잡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외부 브랜드와 협업해 박물관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중심축인 '역사의 길'을 개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선공개 곡 '뛰어(JUMP)'부터 타이틀곡 '고'까지 '데드라인'에 실린 5곡의 신곡이 울려 퍼진 사전 청음회는, 단순한 신보 홍보를 넘어 문화유산과 대중음악이 교감하는 상징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안팎 곳곳은 블랙핑크를 상징하는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뿅봉(블랙핑크 응원봉)을 든 블링크(블랙핑크 팬덤명)들이 그런 국립중앙박물관을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촬영하는 모습은 흡사 콘서트장 주변을 방불케했다.
특히 이번 협업의 백미는 블랙핑크 멤버들이 직접 참여한 오디오 도슨트다. 지수, 제니, 로제, 리사가 다국어(한국어·영어·태국어)로 반가사유상, 백자 달항아리 등 8종의 국보급 유물을 해설하며, 글로벌 팬덤을 우리 전통 유산의 깊은 결 속으로 안내했다.
[서울=뉴시스] 한이재 기자 =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이 K-팝 간판 걸그룹 '블랙핑크' 상징색인 분홍빛으로 물들어 있다. 2026.02.26. nowone@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이번 프로젝트는 블랙핑크가 꾸준히 이어온 '문화유산의 대중화' 행보의 정점이다. 이들은 이미 세계적인 무대에서 한국적 미학을 강력한 시각적 선언으로 활용해 왔다.
대표곡 '하우 유 라이크 댓(How You Like That)' 뮤직비디오에서 한복 저고리를 크롭 티처럼 리폼해 입으며 전 세계적인 'K-한복' 열풍을 일으켰다. 2023년 미국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트 페스티벌'에서는 기와지붕 세트와 부채춤, 조선시대 무관의 의복인 '철릭(帖裏)'에서 영감받은 의상을 선보여 CNN으로부터 "한국 유산에 대한 경의"라는 찬사를 받았다.
지난해 말 '멜론 뮤직 어워드(MMA) 2025'에서 제니가 반가사유상과 석가탑의 미학을 녹여내고 가집 '청구영언'을 새긴 베일을 두른 것 역시, 한국적 요소가 아티스트의 정체성을 얼마나 우아하게 완성하는지 보여준 사례다.
이러한 블랙핑크의 행보는 최근 Z세대 사이에서 불고 있는 '힙트레디션(Hip Tradition·힙트래디션)' 현상과 궤를 같이한다. 전통을 '지루하고 낡은 것'이 아닌 '가장 새롭고 독보적인 개성'으로 수용하는 흐름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뮷즈(MU:DS)가 큰 인기를 끌고, '약케팅(약과+티케팅)'이나 '궁케팅(고궁 체험+티케팅)'이 아이돌 콘서트 예매만큼 치열해진 현상도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서울=뉴시스] 한이재 기자 =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이 K-팝 간판 걸그룹 '블랙핑크' 상징색인 분홍빛으로 물들어 있다. 2026.02.26. nowone@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K팝이 글로벌 주류 문화로 편입되면서, 전통을 다루는 방식과 주체 역시 변화하고 있다.
전통음악을 꾸준히 조명해 온 성혜인 음악평론가(한국대중음악상(한대음) 선정위원)는 "이제 K팝은 서구 음악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승인받아야 하는 위치가 아니라, 새로운 흐름과 트렌드를 만들어 가는 주체로 자리매김했다"고 톺아봤다. 이어 "이러한 시도를 통해 전통문화 전문가나 관련 기관이 주도해 온 방향이 아닌, 새로운 방향으로 (한국의) 문화적 상징이 만들어지고 또 정의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통은 박제된 채 머물러 있지 않고 끊임없이 재해석될 때 비로소 생명력을 얻는다. 블랙핑크와 국립중앙박물관의 협업 프로젝트는 내달 8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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