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열하일기' 초고본 보물 됐다… 조선 불화·불상 3건도

등록 2026/02/26 09:48:13

가평 현등사 아미타여래설법도

임실 진구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양산 신흥사 석조석가여래삼존좌상

[서울=뉴시스] 열하일기 원·형·이·정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6.02.2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한이재 기자 =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이 조선 후기 5개월가량 청나라에 다녀온 후 작성한 견문록 열하일기(熱河日記)의 초고본 등이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지정됐다.

국가유산청은 26일 '박지원 열하일기 초고본 일괄'과 '가편 현등사 아미타여래설법도' '임실 진구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양산 신흥사 석조석가여래삼존좌상 및 복장유물' 등 총 4건을 각 보물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박지원 열하일기 초고본 일괄'은 단국대학교석주선기념박물관이 소장한 것으로 박지원이 청나라 북경과 열하 등지 방문 경험을 정리한 '열하일기'의 처음 제작 당시 모습을 담은 자료다.

청나라에서 귀국한 박지원이 친필로 쓴 원고로 만든 고본(稿本)으로, 이를 근본(저본, 底本)으로 삼아 다양한 형태의 전사본(傳寫本)이 국내외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다만 박물관에 소장된 초고본 자료 10종 20책 중 일부는 후손과 문인에 의해 첨삭·보완되는 등 친필 고본이 아닌 것으로 판단됐다.

이에 ▲정본에 존재하지 않는 서학(西學) 관련 용어와 새로운 내용이 수록된 연행음청(燕行陰晴) 건·곤(2책) ▲가장 초기 고본의 모습을 보이는 연행음청록(燕行陰晴錄) 4·연행음청기(燕行陰晴記) 3(1책) ▲서문과 단락을 갖춘 고본 열하일기 원·형·이·정(4책) ▲정본에 없는 내용을 다수 수록하고 있는 열하피서록(熱河避暑錄)(1책)까지 4종 8책이 보물로 지정됐다.

'박지원 열하일기 초고본 일괄'은 처음 제작 당시 형태와 저자인 박지원 및 그 후손 등에 의해 수정·개작(改作)된 과정을 살펴볼 수 있고, 조선 후기 대표적인 실학서로 당대 조선 사회에 끼친 영향력 등으로 가치가 크다고 평가됐다.

[서울=뉴시스] 가평 현등사 아미타여래설법도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6.02.2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가평 현등사 아미타여래설법도'는 아미타여래가 극락에서 여러 권속(眷屬)에게 설법하는 장면을 비단에 채색한 불화다.

중앙에 크게 배치한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나한, 팔금강, 팔부중 등 권속들이 짜임새 있게 배치됐다. 존상(尊像)의 위계에 따라 채색과 크기를 달리 표현하고 주존(主尊)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을 이루게 배치하여 40여 존상이 함께 그려져 있는데도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회화 작업에 종사하는 승려 중 으뜸인 수화승(首畵僧) 오관의 역량을 문양 등 섬세한 세부 표현, 깔끔하고 힘이 있는 필선 등에서 짐작할 수 있다.

불화 하단에 있는 화기(畵記)를 통해 1759년(영조 35년)이라는 제작 연대, 오관(悟寬) 등의 제작자, 현등사라는 원봉안처 등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서울=뉴시스] 임실 진구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6.02.2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임실 진구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불상과 받침(대좌, 臺座)의 형식, 조형미, 진구사지에 있는 석등과 비교 등을 통해 통일신라 하대인 9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불이다.

비록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성스러운 빛을 표현한 광배(光背)가 없어지고 왼쪽 손목 아랫부분이 일부 결실됐으나, 불신(佛身)과 대좌가 거의 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다.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비례와 섬세한 조각 수법에서 조형적 완성도가 높다고 평가받는다.

전라 지역에서 드물게 확인되는 9세기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자, 통일신라 하대 불교 미술과 불상 양식의 지역적 전파 양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실물 자료로 가치가 높다.

[서울=뉴시스] 양산 신흥사 석조석가여래삼존좌상 및 복장유물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6.02.2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양산 신흥사 석조석가여래삼존좌상 및 복장유물'은 불교조각을 전문으로 제작하는 승려 중 으뜸인 수조각승(首彫刻僧) 승호를 비롯해 수연, 보장, 인원, 처행 등의 조각승이 1682년(숙종 8년) 완성해 신흥사에 봉안한 작품이다.

본존불 우측에 있는 보살좌상(우협시, 右脇侍)에서 발견된 조성 발원문을 통해 제작 관련 정보를 알 수 있다. 발원문에는 이 불상이 '영산회(靈山會, 석가모니불이 영취산에 있으며 설법하던 때 회중) 삼존'으로 조성됐다고 적혀 있다.

17세기 이후 시왕상이나 나한상 등 수량이 많은 조각에 많이 사용된 불석(佛石)이 사용됐다. 승호는 1655년(효종 6년) 도우(道祐)를 도와 '칠곡 송림사 석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을 제작하기도 했는데, 이때 불석을 다루는 법을 익힌 것으로 추정된다.

경상도 지역에서 유행한 불석제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며, 승호의 작품 중 사찰 대표 건물인 주전각(主殿閣)에 봉안하기 위해 제작한 작품 중에서는 가장 이른 사례다.

조선 후기 경상 지역 조각과 조각승들의 활동상을 살필 수 있다는 점, 오늘날까지 원 봉안처에 남아 있다는 점 등에서 미술사적·역사적 가치가 높다.

또 오색 직물 등이 들어 있는 금속제 용기 후령통(喉鈴筒) 등 제작 당시 불상 안에 넣은 유물도 17세기 후반 복장 납입 의식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됐다. 존상 3구, 복장유물 6종 17점이 이번에 보물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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