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 연쇄살인'인데 신상 비공개…'고무줄 잣대' 논란
등록 2026/02/23 15:13:24
수정 2026/02/23 15:18:21
경찰, '모텔 연쇄 살인범' 신상공개 않기로
이미 SNS선 실명, 얼굴, 계정, 나이 등 확산
'잔혹성·국민의 알 권리' 판단은 수사기관 재량
"살인은 공개 원칙 필요" vs "일률 적용은 위험"
[서울=뉴시스] 조수원 기자 = 12일 오전 서울북부지법에서 열리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는 피의자. 2026.02.12. tide1@newsis.com
[서울=뉴시스]신유림 기자 = 향정신성의약품을 이용한 '모텔 연쇄 살인' 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피의자 신상을 공개하지 않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 사건의 특수성과 연쇄성으로 사회적 파장이 커지며 이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실명과 얼굴 등 신상 정보가 확산된 상황에서 내려진 결정이다.
하지만 이번 결정을 계기로 신상 공개의 구체적 기준과 적용 범위를 둘러싼 '고무줄 잣대'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어 명확한 기준을 정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23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경찰청은 최근 살인 및 특수상해,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향정) 혐의를 받는 20대 여성 김모씨에 대한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를 열지 않기로 했다. 현재로서는 신상 공개 재검토 가능성도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온라인에선 이미 '신상 털기' 확산…파장 방증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으나, 이미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는 김씨의 실명과 사진, 나이, 출신 학교, SNS 계정 등 상세 정보가 빠르게 퍼진 상태다. 이는 사적 제재에 따른 2차 피해 우려를 낳는 동시에, 해당 사건에 대한 대중의 높은 공분과 사회적 관심을 방증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2020년대 들어 상대적으로 드문 연쇄살인 사건이라는 점에서 이목을 끌었다. 여성 피의자에 의한 범행이라는 점, 범행 동기가 아직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는 점 등도 주목 요인으로 꼽힌다.
특히 피의자가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추가 피해자가 확인된 점, 명백한 독극물이 아닌 향정신성의약품을 이용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도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모호한 '잔혹성·공익' 기준…'고무줄 잣대' 되풀이
현행 특정중대범죄피의자등신상정보공개에관한법률(중대범죄신상공개법)에 따르면 검찰 또는 경찰은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경우 ▲피의자가 범행을 저질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는 경우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이나 재범 방지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피의자의 얼굴·이름·나이를 공개할 수 있다.
하지만 '잔혹성'이나 '공익'에 대한 판단이 수사기관의 주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 매번 형평성 논란의 불씨가 되고 있다. 유사한 무게를 가진 사건임에도 수사 주체의 성향이나 당시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공개 여부가 널뛰는 등 적용의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살인 사건의 경우 원칙적으로 신상 공개를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며 "기준이 애매하다 보니 사건마다 공개 여부를 두고 논란이 반복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이어 "미국 등 해외에서는 비교적 폭넓게 신상이 공개되는 편인데, 우리나라는 범죄자 인권 보호에 상대적으로 무게를 두는 경향이 있다"며 "범죄 예방과 공공의 이익 차원에서 일정 부분 확대 적용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공익과 인권 사이 딜레마…'언론이 척도'인가
반면 일률적 기준 적용에 대한 신중론도 있다. 김상운 대구가톨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신상 공개는 무죄 추정의 원칙, 가족의 2차 피해 가능성과 충돌하는 양날의 검"이라며 "공익과 인권을 정교하게 비교 형량해야 하기에 일률적 기준을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신상 공개가 언론에 의해 좌우되는 구조를 꼬집는 목소리도 있었다. 조세희 목원대 경찰행정학부 교수는 "언론 보도의 파급력이 사실상 사회적 파장의 척도로 작용하면서, 국민 정서와 수사기관 판단 사이에 간극이 생길 수 있다"고 짚었다.
약물 연쇄 살인이라는 특수성 속에서도 경찰이 피의자에 대한 신상 비공개 방침을 택하면서, 이번 사건은 다시 한번 '국민의 알 권리'와 '피의자 인권 보호' 사이의 균형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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